[이재구코너]'알수 없는 종류의 빛'-X레이

일반입력 :2009/11/05 10:32    수정: 2009/11/08 12:10

이재구 기자

뢴트겐, X선 발견-1895년11월8일, 인체 내부를 투시하다

■'새로운 과학의 승리'

1895년 크리스마스 사흘 전. 새로이 발견된 방사선으로 찍은 반지낀 자신의 손 사진을 본 안나 베르타 부인은 놀란 나머지 “죽음을 보았다”고 소리쳤다. 인체의 내부를 찍은 인류최초의 사진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 사진에는 안나 자신의 손뼈와 반지의 윤곽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뼈는 살이 썩어 남는 것인 만큼 그 한 장의 사진은 그녀의 죽음을 말해주는 상징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인 빌헬름 뢴트겐 뷔르츠부르크대학 교수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지난달 8일 밤 자신이 연구하던 빛의 성질을 분석하다가 발견한 이 ‘새로운 광선’의 성질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은 물체의 표면을 반사해 보여주는 일반 가시광선과는 달랐다. 직진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물체의 표면을 투과하는 ‘알 수 없는’ 광선이었다.

그가 방전관(음극선관) 내부의 유도코일에 고전압을 가하면 발생하는 이른 바 ‘음극선’의 성격을 조사하던 중에 발견한 것이었다.

이 놀라운 ‘새로운 광선’에 대한 소문은 정식발표가 되기도 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1896년 1월 9일 독일황제 빌헬름 2세는 “인류를 위한 커다란 축복이 될 새로운 과학의 승리를 안겨준 하느님을 찬양합니다”라는 축전을 보냈다.

■“음극선관에서는 X선도 함께 나온다.“

뢴트겐은 이 광선에 대해 ‘알수없는 빛’이란 의미로 ‘X선’이라고 이름붙였다.

X선의 존재는 ‘크룩스관’에서 음극선의 성질을 실험하는 도중에 발견됐다. 크룩스관은 공기 중, 또는 진공상태에서의 방전현상을 실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표적 음극선관(Cathode Ray Tube)의 하나로서 음극선을 방출한다.

음극선관은 1752년 어느 밤 벤자민 플랭클린이 번개치는 야외로 나가 연을 날리며 번개의 성질을 실험하던 야외환경의 인위적 축약판이라 할 수 있었다.

1895년 11월 8일 밤. 뢴트겐은 크룩스관 안에 얇은 알미늄 창을 덧붙였다.또 크룩스관에서 나오는 음극선에 미칠 외부의 영향(자기장)을 차단하기 위해 검은색 마분지를 둘렀다. 그리고 난 후 방을 어둡게 했다.

그럼에도 뢴트겐은 음극선관에서 좀 떨어진 반대편에서 나는 희미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 여러번 같은 방출실험을 했지만 매번 똑같은 곳에서 빛이 비쳤다.

이를 통해 그가 알아낸 것은 '음극선관에서는 음극선 뿐만 아니라 X선도 함께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마분지를 뚫고 건너편 백금시안화바륨스크린에 도달해 빛을 내게 하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불투명한 물체까지도 찍다.

뢴트겐은 1896년 ‘새로운 종류의 광선에 대하여’라는 공식 보고서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미 소문이 공식 발표와 출판을 앞질러 온 유럽을 들끓게 하고 있었다.

뢴트겐이 사람을 해부하지 않고서도 살아있는 사람의 뼈를 보았다는 소문이 날개를 달았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사진이 찍히는 것조차 이해하기 힘든 판에 불투명한 물체를 투과해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X선에 대한 두려움은 오늘날 공항에 설치된 알몸투시카메라에 대한 두려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근거없는 두려움은 사라졌고, X선을 의료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병원을 찾은 사람들을 통해 그 유용성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베를린의 한 의사는 손가락에 꽂힌 유리파편을 X선으로 찾아냈고, 뉴햄프셔의 한 병원은 골절환자를 진단하는데 활용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수는 손에 박힌 산탄총의 위치를 확인하는 등 X선의 주가는 상승했다.

하지만 X선이 과도하게 조직을 투과할 때 인체에 해를 입힌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만이었다.

뇌의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하던 발명왕 에디슨의 조수는 머리털이 빠지고 피부궤양에 걸려 연구를 중단했다. 그는 1904년 39세로 사망한다. 사람들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지속적인 X선 노출을 달가와 하지 않게 됐다.

■X선 연구과정이 전자산업의 토대

이런 가운데 우리 일상속에서 X선은 쇼킹하게 등장했던 초기와 달리 광범위한 활용도를 과시하고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접하는 부분만 보더라도 당장 공항세관 물품검사,미술품 진위 감정 등이 꼽힌다.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에는 원래 이런 밑그림이 있었더라는 뉴스도 따지고 보면 다 뢴트겐 덕분이다. 드물게는 우주에서 오는 X선 양으로 찍은 사진을 보는 접하는 경험도 하게 된다. 노벨상 수상자인 왓슨과 크리크는 X선 현미경분석을 통해 DNA 구조 발견에 결정적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산업계의 제조라인의 제품 구성 이나 구조물의 결함 등을 확인할 때 구조변경없이 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X선의 덕이다.

당초 의료진단용으로 시작했던 X선 영상촬영기술은 약 80년만인 지난 1972년 컴퓨터기술과 결합한 3차원 컴퓨터단층촬영(CT)기술로 도약했다. 의료진단 수준이 크게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X선의 또다른 진가는 그것이 발견되기까지의 과정에 들인 노력과 노하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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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극선 연구를 통해 쌓인 기술적 성과는 이후 진공관,브라운관, 모니터,레이더,통신분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는 전파의 실용화와 맞물리면서 50~60년간 세계 전자통신 산업을 견인한다. 또한 노벨상물리학상 1호 수상자인 뢴트겐의 뒤를 이어 마르코니를 비롯한 쟁쟁한 수상자들을 대거 배출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하게 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