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폴라로이드 시대의 종언

일반입력 :2009/10/08 10:16    수정: 2010/02/16 08:23

이재구 기자

[이재구코너] 폴라로이드 시대의 종언

-2001년 10월 11일 폴라로이드 파산 신청

즉석카메라 신화의 시작

1947년 2월21일 광학자인 에드윈 랜드는 기존방식과 전혀 다른 새로운 카메라를 들고 나와 공개시연회를 가졌다. 스스로 필름인화지를 빛에 노출하고 현상해 즉석에서 보여주는 카메라였다. 즉석카메라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핵심은 확산 전사기술을 이용해 감광도 높은 편광성 네가티브필름을 포지티브로 전환시켜 주는 데 있었다. 이 카메라는 촬영 직후 롤러를 통해 내부에서 정리된 포지티브필름을 치약짜듯 피사체 쪽으로 밀어 냈다.

1826년 니에프스가 사진을 찍기 위해 몇시간이고 태양광 아래 있었던 옛 일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었다. 1888년 등장해 ‘찍기만 하세요. 나머지(현상‧인화)는 저희가 합니다’란 광고를 내건 코닥과도 또 달랐다.

촬영하고 나면 바로 눈앞에서 찍은 사진의 모습이 천천히 나타났다. 90초면 모든 게 끝났다. 그것은 이전과 다른 신통한 기술이었으며 말그대로 ‘순간을 영원히’ 잡아내는 카메라 미학의 절정이었다.

에드윈 랜드는 폴라로이드 발명 이듬 해인 1948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60대의 ‘모델 95’를 생산했다. 보스턴의 조던 마시백화점에 57대의 카메라가 납품됐다. 제품은 첫날 몽땅 다 팔렸다.

■ 경이적 초고속 성장

이 신기한 카메라는 이후 수십년간 랜드의 회사의 고속성장을 이어가는 자부심이자 원동력이었다.

미국인들은 이 혁신적인 즉석 카메라기술에 열광했다. 특히 미국 베이비 붐 소비 세대는 폴라로이드의 경이적인 성장세를 견인한 주역이었다.

'파괴적 혁신기술’에 기반한 폴라로이드 즉석카메라 신화는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었다.

70년대 팝아트의 선두주자 앤디 워홀은 뉴욕거리를 누비며 만나는 사람마다 폴라로이드를 들이댔고 왼손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치켜 든 워홀의 즉석사진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1948년부터 78년까지 30년간 폴라로이드사는 연평균 23%의 매출성장률을 기록했고 연평균 17% 이익이라는 경이적 실적으로 세계 기업사의 새장을 기록했다.

이 놀라운 성공은 기술혁신에 의한 것이었다. 스스로 500개가 넘는 특허를 가지고 있는 에드윈 랜드의 폴라로이드를 누를 기술은 더 이상 수 없는 듯 보였다.

폴라로이드의 신화는 카메라 산업계의 또다른 맹주 코닥이 이 영역에 진출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86년 폴라로이드는 특허침해 소송끝에 코닥의 즉석카메라를 시장에서 쫓아낸다.

이제 시장경쟁의 최대 걸림돌은 제거됐고 폴라로이드 중심의 즉석카메라 시장은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535개의 특허로 무장한 에드윈 랜드는 자신의 혁신적 기술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영광 뒤의 급격한 추락

그러나 50년 이상 타오르던 폴라로이드 영광의 불꽃은 급격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2001년 10월 11일. 지난 수년간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내놓으면서 마지막까지 아날로그 형태의 즉석카메라 왕국을 고수하던 폴라로이드는 결국 법원에 파산신청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즉석카메라 왕국의 붕괴는 80년대 중반에 등장한 디지털카메라의 새별 소니의 침공으로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소니는 이미 81년 플로피디스크에 영상을 담는 ‘마비카’라는 실험적 카메라로 디지털사진 혁명의 씨앗을 키워왔다.

폴라로이드만이 갖고 있던 즉석카메라의 기능이 디지털카메라의 이미징기능을 통해 실현되자 폴라로이드는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에서 거인의 몰락은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1997년 주당 60달러였던 주가는 2001년 0.28달러로 떨어졌고 결국 10억 달러의 빚을 안은 채 2001년 10월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 교차하는 영욕의 세월

폴라로이드는 2005년 워크아웃 상태에서 피터스그룹에 인수돼 LCD TV, DVD플레이어 생산 등에 주력하면서 재기를 노리지만 화려한 전성시대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즉석카메라의 몰락은 69년 뉴욕 머레이 힐 벨연구소의 반도체이미지센서 발명으로부터 아주 천천히 시작됐다.

피사체를 순식간에 그리고 단한번에 한해서 영상을 재현하는 기술은 디지털카메라 앞에서 무력했다. 사람들이 70년대에 폴라로이드에 바쳤던 찬사는 이제 디지털카메라의 것이었다.

폴라로이드는 면돗날 판매로 이익을 보는 질레트처럼 카메라와 함께 필름을 파는 전략으로 성공을 구가해 왔다. 하지만 이 비즈니스 모델은 '필름이 필요없는' 디지털카메라가 인기를 얻으면서 맥없이 무너졌다.

아날로그 즉석카메라의 부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폴라로이드사는 창업 61년 만인 지난해 11월 또다시 파산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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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 화학 기술로 50년 이상 산업계를 풍미하던 폴라로이드가 고체물리학 신기술에 자리를 내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사진산업계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디지털카메라의 원천기술(CCD)을 발명한 윌러드 보일과 조지 스미스는 어찌 됐을까? 그들은 기술발명 40년 만인 지난 6일 2009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지명되는 영광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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