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시장 성장이 한계점에 도달함에 따라, 관련업계는 새로운 사업모델 발굴과 융합서비스와 같은 신성장동력 모색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또 정부도 이에 걸 맞는 정책마련에 고심 중이다.
국내 통신시장은 정부의 설비중심정책 기조 아래 90년대 이후 급성장하며 국민경제의 핵심 성장동력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90%를 훌쩍 뛰어넘은 이동통신(93.8%, 08년 기준) 및 초고속인터넷(92.8%, 08년 기준) 가입률과 유선전화 사용량의 감소로 점차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및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KAIT)에 따르면, 국내 통신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90년대에 21.5%였지만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7.4%로 급속하게 감소했다.
이는 주요 통신서비스의 포화라는 문제점 외에도 고도화된 네트워크 발전에 비해 저조한 콘텐츠 및 애플리케이션 부문, 그리고 각 시장별로 업체간 경쟁구도가 고착화된 점 등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발전을 위한 건전한 경쟁이 사라진 지금, 업계에 남은 경쟁은 가입자 뺏기 정도의 마케팅 경쟁 정도"라고 주장했다.
■정부-통신사, 시장 활성화 노력 중
이에 따라 최근 주요 통신업체들은 계열사를 통한 콘텐츠/애플리케이션 부문 강화에 힘쓰고 있다. 특히 All-IP 환경의 차세대 통신서비스로 각광받고 있는 인터넷전화(VoIP), IPTV 등이 가미된 결합상품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융합'이라는 통신 트렌드를 쫓음은 물론, 기존의 고착화된 시장 경쟁구도를 융합환경으로 옮김으로써 새로운 경쟁유도와 시장발전을 이루겠다는 자발적 움직임이다.
KISDI의 염용섭 박사는 14일 개최된 중장기 통신정책방향 공청회에서 "현재 통신시장에서의 추가적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기존 네트워크보다는 이종 네트워크를 통해 주로 발생된다"고 설명했다.
즉 유선전화 대 인터넷전화, 2세대/3세대 이동전화 대 와이브로/4세대 이동전화의 경쟁구도에서 시장발전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는 중장기 통신정책방향을 KISDI에 의뢰해 향후 정책방안을 마련 중이다. 특히 현재 시장상황에 따라 융합환경에 적합한 '수평규제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초고속인터넷, 이동통신, 인터넷전화, 유선전화, IPTV 등의 개별시장에 국한됐던 수직적인 규제의 벽을 허물고, 이를 총괄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수평적 규제로 확립한다는 것이 이번 정책방안의 핵심이다.
■방통위, 융합시대에 맞는 '수평규제 정책' 제시
그 주요 정책 방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체망간 경쟁을 통한 네트워크 진화의 촉진이다. 통신사업자들은 융합시대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All-IP망, 유무선통합망, 4세대 이동망 등을 통해 상대방 시장에 교차진입이 예상된다.
이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가 KT-KTF 합병이며, SK텔레콤의 SK브로드밴드 인수 및 SK네트웍스의 두루넷망 인수추진이다. 또한 LG데이콤의 LG파워콤 합병추진도 빼놓을 수 없다.
둘째, All-IP 환경에 적합한 선진 규제체계 정립이다.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종 플랫폼(네트워크) 간 공정경쟁을 위해 동일계층-동일규제 원칙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수평적 규제체계로 전환이 대두된다. 개별 서비스에 대한 역무를 단일 전송서비스로 통합하고 시장분석에 기반한 사전규제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셋째, 와이브로 서비스 활성화 방안 수립이다. 국산 기술인 와이브로 활성화가 미흡하고 이와 관련한 단말/장비산업의 성장이 지체되고 있어 활성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와이브로 음성탑재를 통해 통신시장에 신규사업자 진입을 촉진시킬 수 있으며, 통신재판매(MVNO)를 활성화해 설비경쟁력이 없는 사업자에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All-IP 망개방 제도의 확립이다. 필수설비로 규정된 KT의 전주, 관로 등에 대해 경쟁사들의 동등접근이 미흡해 실질적인 설비접근 동등성 확립을 위해 필수설비에 대한 이용 및 제공절차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대체설비인 한국전력의 전주에 대해서도 안정적 제도를 마련할 방침이다. 다만 FTTH에 대해서는 신기술 도입 활성화와 대체망 고도화 필요성을 고려해 당분간 개방을 유예하도록 하고 있다.
다섯째, 무선망 개방 확대방안의 수립이다. 국내 무선(이동통신)시장의 폐쇄적 사업모델에 따라 소비자 선택권 및 활발한 비즈니스 전개가 제한되고 있는 상황.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선인터넷망을 개방하고, 무선인터넷에 대한 재판매(MVNO) 제도 의무화 검토 등 궁극적으로 '무선망 중립성'으로의 확대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융합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전파자원 이용제도 개선, 플랫폼 사업자(통신사 등)-콘텐츠 사업자 간 합리적인 수익배분 기준 마련, 유무선 융합서비스 활성화 정책 등의 중장기 정책을 제시했다.
■통신사, '지나친 규제가 되지 않기를…"
그러나 이러한 중장기 통신정책방향이 오히려 지나친 규제로 시장발전을 저하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융합서비스에 대한 수평규제체계 마련하겠다는 것은 결국 KT, SK텔레콤, LG통신계열 등 대형 통신사의 합병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통신업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정책방향이 국내시장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정책 의도는 좋을 지 몰라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일례로 와이브로 활성화의 경우, 기존 이동통신 시장과의 경합으로 오히려 사업자에게 부담을 주고 있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현재 KT가 와이브로를 주도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SK텔레콤 또한 무선인터넷 보완재 정도로만 활용할 것이며, 다른 통신사들은 와이브로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통신재판매(MVNO)를 통한 신규사업자 출범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시장규모가 작고 통신사의 산업 장악력이 월등한 국내 통신시장에서 신규사업자 진입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또 다른 통신업계의 관계자는 "MVNO가 성공한 나라는 전세계적으로도 찾아볼 수 없다. 경쟁 활성화를 위한 의도는 좋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정책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통신업계의 종사자들은 무엇보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 시장 발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우려라고 지적한다. 각 통신사가 현재의 위기상황을 인지하고 탈출구를 찾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친 규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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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신업체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노래방 기기 사업이 급격하게 발전한 가장 큰 이유는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라며 "통신규제 존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통신사의 투자계획과 진행상황까지 점검하는 등의 지나친 간섭은 산업발전에 좋다고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KT의 박대수 상무 또한 이날 통신정책방향 공청회에서 "사업자 입장에서 기본원칙은 전반적인 규제완화와 규제최소화 원칙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