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누가 나그네의 옷을 벗겼을까?

일반입력 :2009/02/06 10:49

옥상훈

이솝 우화 '해님과 바람'

만약 여러 분에게 햇볕과 바람 중 한 가지를 택하여 나그네의 외투를 벗겨 보라면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이솝 우화 ‘해님과 바람’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햇볕을 집을 것이다.

이 우화에서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해 바람을 세게 불면 불수록 나그네는 안 벗으려고 옷깃을 여민다. 하지만 해님의 따스한 햇볕은 나그네로 하여금 외투를 벗게 만든다.

햇볕의 의미는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바람처럼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 보다는 햇볕처럼 그렇게 되도록 하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의 문제는 이솝 우화를 읽은 초등학생들도 아는 문제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보다 당장의 물리적 변화를 쫓아가게 된다.

촛불을 끄려면?

만약 촛불을 끄기 위해서 햇볕과 바람을 선택하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대부분 바람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촛불을 켠 이유가 어두워서라면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어둠을 밝히기 위해 다시 촛불을 켤 것이다.

그러나 햇볕이 밝게 비춰진다면 더 이상 촛불을 밝힐 필요가 없게 된다. 여기서 상황이 밤이나 낮이냐, 촛불이 몇 개냐, 촛불을 한 번 끄느냐 마느냐 등의 세세한 것 들까지 고려하자면 따져볼 경우의 수가 많으므로 논외로 하자. 중요한 것은 촛불을 끄게 만드는 환경적 요인이 ‘어둠’에 있다는 것을 구분해 내는 능력은 UX전문가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다.

카사노바는 UX 전문가?

환경적 요인을 연애학적 측면에서 보면 ‘무드’로 통한다. 그러한 무드를 잘 만드는 사람이 이성을 자연스럽게 리드한다. 연애에 서툰 사람은 이성의 손을 잡기 위해 물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어디서 만나야 할 지에 집중한다.

하지만 연애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먼저 이성과의 마음의 거리를 좁혀주는 무드를 만드는 포석을 한다. 자칭 카사노바로 통하는 사람이 쓴 ‘연애의 정석’이란 책에도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을 강조하며 그 노하우에 대해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UX전문가를 뽑는 면접관 이라면 첫 질문은 ‘이성 친구는 있습니까?’로 시작할 것이다. 그러한 몇 가지 질문들을 통해서 그 사람이 UX실무를 담당했을 때 사용자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능력과 사용자의 마음을 끌리게 만드는 전략을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을 엿보게 될 것이다.

UX의 전략적 접근

UX의 전략적 측면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사용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한 두 가지 요소이다.

1. 사용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무엇인가?

사용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적 요인으로는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이 있다. 마이너스 요인은 장애 요인이다. 이는 초기 UX기획 단계에서는 잘 드러나기보다는 평가 테스트 단계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다.

2. 사용자에게 어떻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인가?

이는 유저인터페이스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사용자가 실수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설계지침이며, 비즈니스적 측면에서 보면 고객을 손으로 잡아 강제로 끌고 오다시피 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찾아와 구매하도록 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인터넷 환경을 험난하게 만드는 것들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환경을 만드는 관점에서 장애 요인의 제거가 중요하지만 UX의 전략과 거꾸로 가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인터넷 전자상거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 쇼핑몰에서 결제 프로세스는 돈이 들어오는 구멍이지만 그 구멍을 통과하려면 여러 가지 장애물을 넘도록 되어있다.

포레스터 리서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자상거래 웹사이트에서 사용자의 27%는 지불단계에서 포기한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외국의 경우가 이 정도인데 우리 나라에서 조사를 했다면 주민등록번호 제공 단계, 공인인증서 설치 단계, 전자결제를 위해 설치 해야 하는 각종 프로그램들(액티브엑스 컨트롤) 설치 단계뿐만 아니라 이런 단계에서 비롯된 브라우저 편향성 문제 때문에 더욱 거르고 걸러 졌을 것이다.

외국의 쇼핑몰은 주민번호 없이 각종 프로그램 설치하지 않고서 대부분의 브라우저에서 상품 결제가 가능하다. 그래서 외국의 운영자나 사용자가 보면 참으로 어이없게 생각할 문제인데 우리나라는 당연하다는 것이 더 신기할 정도이다.

가게에서 물건 하나 사기 위해 주민번호를 알려주지 않음은 삼척동자도 알지만 인터넷에서는 왜 주민번호를 알려줘야 하는가? 이러한 장애물들을 다 걷어 내도 시원찮을 판국임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사용자가 치러야 할 대가는 고려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UX는 겸허함의 미덕

UX전략 수립 단계에서 소위 햇볕 전략을 구현하기 위해서 사용자의 환경과 환경에 따른 행동, 장애 요인 등을 파악하는 인터뷰를 하게 된다. 이때 인터뷰에 임하는 자세는 겸허해야 한다. UX전략은 UX컨설턴트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작은 습성과 행동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눈과 귀를 기울이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데이터를 삭제하는 행위를 예를 들어 보자. 사용자를 배려한답시고 데이터를 삭제 할 때 마다 일일이 ‘삭제하시겠습니까?’하고 물어 보는 경고 창을 띄우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사용자가 삭제해야 하는 데이터가 매우 많아 삭제하는 수만큼 나타나는 경고창이 매우 짜증스러워 질 것이다. 이는 실수로 삭제를 방지하는 것만 고려했지 실제로 몇 번이나 삭제를 하는 것 까지는 고려하지 않았음에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삭제하면 첫 팝업에서 ‘삭제하시겠습니까?’라는 경고창을 띄운다. 하지만 그 경고창 하단에 ‘다음부터 경고창을 띄우지 않음’이란 체크박스를 배치할 것이다. 그리고 데이터가 즉시 삭제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삭제된 데이터는 휴지통으로 이동하도록 한다.

하지만 개발공수는 분명히 많아진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경고창은 alert 함수 한 줄로 구현가능 하지만 여기에 체크박스를 배치하고 체크박스 설정을 ‘기억’하는 개발 공수는 몇 배 이상 들어가기 때문에 UX와 개발 공수 사이에서 저울질을 필요하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잘못 산정된 개발공수와 잦은 설계 변경은 개발자의 야근으로 이어짐을 잊지 않길 바란다.

덧붙임: 차량 범죄를 예방하는 환경 조성

최근 개발자 모임에서 본 어느 여자 SW 개발자는 밤늦게 야근하고 택시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그때 얘기는 못했지만 혹시나 모를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꼭 얘기해주고 싶은 것은 차 안에서 멍하게 있지 말고, 반드시 휴대전화를 꺼내어 가족이나 친구에게 자신이 몇 시에 어디서 가고 있다고 얘기를 하면서 가길 바란다.

너무 늦어 통화하기가 그러면 가짜로 통화하는 흉내라도 내길 바란다. 만약 그 사람이 흑심을 품더라도 승객이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핸드폰의 위치가 기록으로 남게 되고 통화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심리적 부담이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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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97년에 한양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자바개발자로 IT 무림에 입문한 12년 차 IT 맨으로, 자바크래프트닷넷, 자바스터디 운영자로 활동했으며 한국 자바개발자 협의회 (JCO, JavaCommunity.Org)의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연합의 공동 의장을 맡고 있으며, 매크로미디어 컨설턴트를 거쳐 한국어도비 시스템즈에서 RIA 아키텍트를 맡았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