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달콤함 이상의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초콜릿은 상온에서는 굳어 있지만 초콜릿의 성분 때문에 입안에 들어가면 살살 녹아 연인의 뇌로 하여금 달콤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메신저이다. 초콜릿의 성분은 제조과정에서 달라지며 코코아 버터와 카카오의 함량, 처리 온도에 따라 다양한 맛과 효능을 나타낸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윌리 웡카 초콜릿’은 전세계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히트 상품이지만 그 제조 과정은 20년간 베일에 가려져있다. 겨울 어느 날 초콜릿에 숨겨진 황금 티켓에 당첨된 5명의 어린이를 공장에 초대해 그 제조 비밀을 공개한다.
윌리 윙카 초콜릿 공장에서는 12만 리터의 초콜릿 폭포가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초콜릿을 휘저어 길이 55미터, 폭 12미터, 깊이 1미터의 강물로 흐르면서 초콜릿 제조기로 흡입된다. 보너스로 초콜릿 강가에는 꽈배기 사탕이 열리는 나무와 민트 설탕 풀이 자라고 있고 덤불 속에선 머쉬멜로우 체리크림이 익어간다.
■ UX는 창조적인 제조 프로세스
비현실적인 영화 속 얘기이지만 윌리웡카 초콜릿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환상적이고 창조적인 (크리에이티브한) 제조방법을 거쳐 만들어졌다.
실제로 오늘 날 우리가 먹는 초콜릿은 수세기를 거쳐온 발명된 다양한 제조법의 산물이다. 프랑스의 경우 초콜릿은 왕족과 귀족들의 전유물로 간주되어 초콜릿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최고의 맛을 내는 장인(Chocolatier, 쇼콜라티에)들은 그들 만의 비밀스런 제조 비법을 유지해오고 있다.
초콜릿은 ‘신들의 열매’라 불리는 카카오 나무의 열매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은 제조업자들 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될 수도 멜라민이 함유된 저질불량식품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바꿔 말하자면 이미 있는 재료나 소스를 이용하여 얼마나 창조적인 제조 프로세스를 거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느끼는 맛(UX)이 달라지며 제품의 성패가 갈라진다.
창조적인 제조 프로세스는 겉모양만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몇 개월 전에 국내 모 제과회사에서 출시한 주사위 모양의 껌이 있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A사의 껌을 씹어 보면 시원하고 개운하지만 B사의 껌을 씹으면 달기만 하고 단물도 금방 빠져 버린다.
그 껌의 UX를 말로 설명하자면 텁텁함과 허무함이랄까? 당연히 A사의 껌을 다시 씹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필자가 그 껌의 제조과정의 차이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제조과정에 따라 UX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1억 6천만대나 팔린 아이팟 출생의 비밀
IT와 SW업계에서 창조적인 제조 프로세스를 거쳐 탄생한 최고의 히트 상품을 꼽으라면 단연코 애플의 아이팟 MP3플레이어이다. 아이팟의 출생의 비밀은 드라마틱하다. 아이팟에는 전원버튼이 따로 없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이는 최고급 디자이너와 하이 테크놀로지 개발자가 금기의 벽을 깨고서 통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작품이다.
2001년 아이팟이 출시될 당시만 하더라도 삼성, 레인콤 등 굴지의 회사에서 먼저 MP3플레이어를 개발해 시장을 선도해 나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아이팟은 2001년 11월에 출시된 이래 전세계적으로 1억 6천만대나 팔렸다.
애플이 아이팟의 제조 프로세스는 다른 회사와 달랐다. 초창기 제조 프로세스는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GM과 포드사의 분업화와 표준화에 따른 제조 공정을 따른 것이었다. (지금 GM과 포드사는 파산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팟의 제조 프로세스는 ‘창조(Creativity)’ 그 자체이다.
경쟁사들이 MP3플레이어 외의 새로운 기능을 신제품에 추가한 반면 애플은 녹음이나 라디오 등 불필요한 기능을 없애 단순함을 살리는데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MP3플레이어의 본연의 기능은 음악을 쉽게 골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스크롤 휠’기능을 처음 도입했다.
애플은 창조적인 디자인과 기술로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러한 애플의 제조 철학은 제품의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서비스까지 에도 반영이 되어 애플의 제품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고객과 제조사, 파트너사들이 다 함께 상생하는 하나의 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아이팟과 관련된 액세서리 종류만 해도 4,000종이 넘으며, 이와 연동되는 소프트웨어인 아이튠즈 서비스에서는 노래가 25억 곡, TV쇼 5천만편, 영화 130만편이 판매되었다.
■ UX 프로세스는 디자인팀과 개발팀의 협주
애플의 창조적인 프로세스는 최고급 디자인팀과 하이테크놀로지 개발팀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끌어 낼 수 있는 벽 없는 조직 문화,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해주는 프로세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일 애플이 일반적인 제조 프로세스, 제품 디자인이 끝나면 개발팀으로 넘겨주는, 분업방식을 따랐다면 아이팟은 디자인 또는 기능 어느 쪽에서든지 불협화음이 삐져 나와 소비자의 불만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아래의 그림은 필자의 집에서 사용하는 DVD플레이어의 리모콘이고 그 옆에는 애플아이팟의 버튼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 리모콘은 개발팀에서 기능을 충실히 구현하여 각 기능당 한 개씩 버튼을 모심듯 박아 놓은 듯한 인상이 든다.
그 리모콘의 UX는 필자가 쓴 UX이야기 1탄의 평가기준을 따르면 ‘착한 UI’와 ‘무성의한 UI’의 중간 단계 정도 된다. 필자가 쓰는 네비게이션 리모콘도 있는데 멀리 차 안에 있어 찍어 올리지 못했지만 DVD 리모콘 못지 않게 착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리모콘은 디자인은 괜찮으나 네비게이션을 쓰는 동안 필요한 기능들은 찾기 힘들거나 빠져있다. 이들 모두 개발이나 디자인에만 치우쳐 고객이 생각하는 가치를 UX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UX를 이끌어 내는 제조 프로세스는 디자인팀과 개발팀이 허물없이 치우침 없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조직 문화가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디자인팀에서 신제품의 두께를 1cm이하로 줄여 디자인하면 개발팀에서는 분명 볼멘 소리가 나올 것이다.
거꾸로 개발팀에서 신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넣기 위해 두께를 1cm 늘여달라고 하면 디자인팀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핑퐁하다 보면 제품의 UX는 산으로 가게 된다. 디자인팀과 개발팀의 협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조직 문화는 UX프로세스의 밑거름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쪽은 소프트웨어적인 협업은 UX프로세스를 위한 필수 요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특히 디자이너들이 많이 사용하는 어도비의 CS툴은 개발자와 디자이너 협업을 지원한다. 디자이너가 만든 이미지는 코드화해서 개발자의 툴에 넣을 수 있으며 디자이너는 개발자의 코드를 바꾸지 않더라도 이미지를 업데이트 할 수 있다.
■ 기술, 디자인 중심에서 UX중심 프로세스로
초콜릿을 먹기 좋게 만들려면 가열과 냉각을 반복하는 탬퍼링 프로세스를 거쳐야 한다. 초콜릿은 제조시 코코아 버터와 카카오의 함량, 처리 온도에 따라 다크 초콜릿, 밀크초콜릿, 화이트 초콜릿 등 다양한 맛의 초콜릿으로 탄생한다.
초콜릿이 제조 프로세스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듯이 제품 제조 프로세스가 UX중심으로 바뀌지 않으면 제 아무리 UX를 외쳐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이제는 뛰어난 기술이나 화려한 디자인만으로는 고객을 잡을 수 없는 시대이다. 기능, 디자인 모든 면에서 고객의 감성을 잡을 수 있는 UX중심의 프로세스로 접근해야 한다.
[필자 소개]
97년에 한양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자바개발자로 IT 무림에 입문한 11년 차 IT 맨으로, 자바크래프트닷넷, 자바스터디 운영자로 활동했으며 한국 자바개발자 협의회 (JCO, JavaCommunity.Org)의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연합의 공동 의장을 맡고 있으며, 매크로미디어 컨설턴트를 거쳐 한국어도비 시스템즈에서 RIA 아키텍트로 재직 중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