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국가에서의 SW입국, 다시 시작하는 'IT개혁론 2009'

전문가 칼럼입력 :2008/12/04 13:45    수정: 2009/01/07 15:17

김국현

지식 경제의 꽃 소프트웨어. 한국에서 이 꽃이 만개하지 못하는 원인 대다수는 얄궂게도 행정과 정책에 관련되어 있다. 얼마 전 또 다시 개발자를 일용 노무자로 등가 대입한 정책 '소프트웨어 기술자 신고제'가 화제였다.

이 제도가 최근 개정된 소프트웨어 산업 진흥법 시행령의 핵심이라 하니, 무언가 진흥을 하려 하면 할 수록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는 이의 입장에서는 힘이 빠지는 일들의 연속, 이 엇갈림 답답하기 그지 없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인식하지 못하는 산업 정책은 진흥 대신 좌절을 몰고 온다.

부동산 정책 짜듯 할양된 전파이권 덕에 현재의 모바일, 유비쿼터스 분야의 도전자들은 망개방/언번들링의 이슈와 격투해야 하며, 공안 논리와 행정 편의주의에서 파생된 공인인증체제는 웹의 숨통을 잡고 무의미한 기술적 논쟁만 무한 반복 양산했다.

그리고 여기에, SI업의 하도급 관행 역시 정책적 폐해임을 주장하는 듯 시대착오적 제도가 속속 제안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현실의 근시안적인 제도와 정책이 어떻게 미래와 이상을 방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글로벌한 사례로 꼽을 만 하다.

지금 우리 소프트웨어의 상황은 그저 북돋우며 진흥해 줄 상태가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휘하여 전세계적 혁신을 일으키기에도 모자란 우리의 시간과 열정이, 그 혁신을 일으키기 위한 사전 조건을 확충하는데 쓰여야만 하니 엉뚱하고 순진하게 진흥을 이야기할 여유가 없다.

우리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우울은 자신을 주인공이라 여겨 주는 곳에 속해 있지 않은 데서 시작한다.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물로 사업을 하는 곳에 속해 있거나, 결과물을 직접 사용하는 기업에 소속되어, 자기 자신의 업무를 즐겁게 만들어 가고, 필요할 때만 컨설턴트나 개발을 외주 주는 IT 강국과 같은 환경에 있지 못한 채, 실제 창조자임에도 불구 갑을병정의 다단계 하도급 지옥 속에서 피라미드의 하단부에 깔려 버린다. 여기에 약 올리듯 생색과 가치 있는 일은 중간에서 절취되는 작금의 현상,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진흥'이 아닌 '개혁'이다.

바꾸고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주위를 둘러 보면 현안투성이다. 두드러지는 것만도 세가지다.

1. 공인인증, WIPI와 같이 법과 행정에 의해 무조건 강제되고 있는 제도와 규제의 개혁.

2. IPTV, 무선망개방 등 네트워크 상에서의 언번들링 정책.

3. 왜곡된 SI 시장의 하도급 관행을 시정할 수 있는 산업 정책.

법과 제도와 행정과 정치가 침묵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의 혈관을 오랫동안 막아 왔던 사안들이다. 이미 현실을 통치하고 있는 입법, 행정, 사법은 미래, 현재, 과거의 3면에서 이상계나 환상계도 예외 없이 통제하고 있지만, 이 통제의 힘은 소프트웨어가 만들어 갈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UCC의 원조 유튜브가 한국에서 잉태되었다면 아마 대기업에 인수되는 대신 싹이 틀 무렵 저작권 개정안에 의해 꺾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이 땅에서 현실 경제를 혁신시킬 창업을 하려 한다면, 공인인증체제에 결제모듈에 키보드보안까지 갖추느라, 시작할 엄두를 내기 쉽지 않다.

아예 방향을 선회해 모바일로 진출하려 한다면, 망사업자를 알현해서 은총을 입어야 하니, 이 번에는 개발할 시간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귀찮거나 분쟁 소지가 있으면 아무리 혁신적인 기획이라도 아이디어 단계에서 접어 버릴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늘 세계 최초는 없고, 제도에 최적화된 국지적 재탕만 반복될 뿐이다.

민과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 정책 입안을 해야 하는 본업을 정치가는 방치하고, 이를 행정이 임의 집행하는 일이 태반이니, 현실에 안주하는 매너리즘에 빠진다. 진실과 비전은 정책에서 옅어져 간다. 현실이 부조리로 가득 차도 후일 상황에 맞게 정의가 집행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사법소극주의의 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란 뻔하다.

지금 한국 경제의 가장 안타까운 제약 조건은 6,70년대 한국을 견인해 고속 성장시킨 그 토건입국의 기업체질과 제조업 친화적 산업구조가 현재의 지식 정보화 시대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건설업에 의해 '진흥'될 수 있는 경제 규모와 단계가 있고, IT와 같은 지식산업에 의해 '개혁'해야 하는 경제 규모와 단계가 있지만, 이 기본적 상식은 국민과 공감되고 있지 않다. 맞아가며 달달 외워 올릴 수 있는 등수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어찌 보면 토건적 진흥이 기능했던 그들 시절의 발상,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성공체험에 근거한 의사결정을 하곤 하니까 말이다.

'새마을 운동'의 강렬한 추억을 공유한 세대가, 고도 성장기에 "내 손으로 세상을 바꿔봤다!"는 그 좋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집대성하여, 뭐가 뭔지 이해는 가지 않지만 나대기 잘하는 IT 세대에게 훈수 두겠다는 것. 그 시절의 추억에 공감하는 중장년층의 리더십 그룹에 의해 조직화되는 이 사회의 틀은 그렇게 미래를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의 틀이 되어 가고 있다.

여하튼 실제로 세상을 바꿔 본 이들이 이제 겨우 세상을 바꿔 보려 겨우 일어 선 이들에게 한 수 가르치고 싶은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그 덕에 한국의 IT는 한 세기 전의 산업 철학을 필요 이상으로 복습하며 급격히 산업적 노화와 피로를 일으킨다.

소프트웨어의 잠재력은 바로 개발자 및 기술자의 개인 역량, 즉 현장의 개별적 두뇌다. 지금까지 성공한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중 개발자가 주인공이지 않은 기업이 어디에 있었나?

토건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인화를 중시하는 평준화의 조직론이 개인의 아이디어를 증폭해야 하는 지식 경제 사회에도 통용되리라 믿고 유도하는데 있다.

작업분임조 전원이 예측한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는 제조업, 집중 노동을 위해 팀워크가 유난히 강조되는 건설업에서는, 검증되지 않는 천재적 발상은 자숙해야 한다. 개인의 돌출 행동보다는 프로젝트의 결속을 다지는 것이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 것이 바로 그 시대의 프로젝트였다.

소프트웨어는 이제 더 이상 일개 산업 분야가 아니다. 소프트웨어가 필요 없는 산업이 없듯, 소프트웨어란 모든 산업의 미래를 만드는 도구이자 모든 산업을 위해 마련된 미래의 대안 공간이다. 소프트웨어에게는 경제, 문화, 사회를 포괄한 전 산업을 변화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디지털화와 네트워크는 작은 아이디어를 증폭해 세계의 형태를 바꾸는 힘을 줬다. 예컨대 웹(과 그 부수적 버블)은 그 믿음에 대한 증명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될 것만 같은 무모한 결단과 크레이지한 발상이 세계의 구조를 바꾼다. 이를 조장해 온 '우선 저질러 보고, 아니면 말고'의 자유로운 철학은 소프트웨어라는 실체가 되어, 상사의 눈치를 보고 인화단결 속에서 묻어 가는 편이 중요했던 과거의 사회 질서를 개혁해 간다.

그 것이 지식 경제 산업의 본질이다. 소프트웨어 업계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수시로 자기조직화한다. 작금의 클라우드 유행은 그 일례다. 초기 투자비용 없이도 글로벌 레벨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IT기업의 선배들은 후배를 위해 제공한다. 그 무모함이 자신들과 함께 계속되도록.

우수한 인재들이 SI업계에서 범재로 길들여져 하청 관리자의 역할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은 가슴 아프다. 그 곳에서 젊은 화석이 되어 가고 있는 부류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훌륭한 혁신가의 피를 지니고 있음에도, 그 자각을 일순의 안위를 위해 숨긴 채, 하도급을 관리하는 부품에 안분지족하고 결국 그 과정에서 스스로 IT 전체를 환멸한다. 그렇게 IT의 중심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쇠퇴 산업의 일원이 되어 간다. 이 쇠퇴 산업에서 어떻게 이들을 탈출시킬 수 있을 것인가?

미국과 북구 강소국들이 배출해 내고 있는 소프트웨어의 훌륭한 혁신들이 이 땅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능력부족이 아니라, 낡은 사회 구조가 비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할 산업 정책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어느덧 토건체제에 길들여진 인재들이 진정한 지식 경제 산업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현실을 개혁하는 일이다.

대중 스스로도 냉소적 댓글이나 쓰고 있는 것 이외에는, 결국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또 웹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것이 선거에서의 표를 의미하지는 않음을 기득권은 교활하게 잘 알고 있는 현 세태. 그들만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된 세계에 살아가는 실권자들에게 소프트웨어란 여전히 여유가 생기면 진흥해 줘야 할 하나의 업계에 불과하다.

모든 직업은 소중하다. 그러나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산업의 융성과 쇠퇴는 있는 법이고, 우리의 아이들이 했으면 하는 일이란 분명히 있는 일이다. 여러분의 자녀, 조카, 어린 소년 소녀들이 지금 태블릿을 손에 잡아야 할까, 삽과 벽돌을 집어야 할까? 적어도 내게 답은 명료하다.

삽과 괭이로 갈아 엎어야 하는 것은 이미 지난 세대가 다져 놓은 현실의 땅이 아니라, 지금 광활하게 펼쳐지고 있는 네트워크 너머의 불모지다. 그러나 이마저도 돌잔치에서 올려 놓던 마우스를 슬쩍 치워 버리는 나라에선 사치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