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만에 사라지는 ‘윤초’...세계 표준시 내년부터 바뀐다

국제도량형총회 2035년 폐지 계획 앞당겨, 지구 자전 빨라져 '1초 삭제' 가능성

과학입력 :2026/10/17 06:30

지구 자전 속도에 맞춰 세계 표준시를 조정해 온 ‘윤초(Leap Second)’ 제도가 54년 만에 폐지된다. 2035년까지 제도를 변경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지구 자전이 빨라지면서 시간을 1초 삭제해야 할 가능성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다. 이를 통해 컴퓨터와 통신망, 금융거래 시스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간 동기화 장애를 예방하겠다는 뜻이다.

국제도량형총회(CGPM)는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린 제28차 회의에서 윤초 조정을 중단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새로운 시간 체계는 2027년 5월20일부터 적용된다. 지구 자전을 기준으로 측정한 시간과 세계협정시(UTC)의 허용 오차를 기존 약 1초에서 최대 3600초(1시간)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윤초는 원자시계로 측정하는 시간과 실제 지구 자전에 따른 시간의 차이를 보정하는 제도다. 원자시계는 일정한 속도로 시간을 측정하지만, 지구 자전 속도는 달의 중력을 비롯해 지구 내부 움직임과 대기 변화 등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진다.

1972년 윤초 제도가 도입된 이후 총 27차례 시간이 1초씩 추가됐다. 마지막 조정은 2016년 12월31일 이뤄졌으며, 지금까지 시간을 1초 삭제한 사례는 없다.

윤초는 지구 자전 시간과 세계협정시(UTC)의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1초를 추가하거나 삭제하는 제도다. 일러스트_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빨라진 지구 자전, 사상 첫 '1초 삭제' 우려

최근 관측된 지구 자전 속도 변화가 이같은 결정으로 이어졌다. 지구는 장기적으로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경향을 보여 왔으나 최근에는 일시적으로 빨라지는 현상이 관측됐다. 이에 따라 기존처럼 시간을 추가하는 대신 1초를 삭제하는 '음의 윤초'가 필요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국제도량형국(BIPM)은 2035년까지 음의 윤초가 필요해질 확률을 약 30%로 추정했다. 문제는 음의 윤초가 실제로 적용된 전례가 없어 컴퓨터와 통신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존 윤초도 여러 차례 시스템 장애를 일으켰다. 2012년 윤초가 적용됐을 당시 레딧과 링크드인 등 인터넷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고 호주 콴타스항공의 항공편 운항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컴퓨터는 시간을 연속적으로 처리하도록 설계돼 있어 특정 시각에 1초가 추가되거나 삭제되면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아울러 이동통신망과 데이터센터, 금융거래 시스템은 여러 장비가 동일한 시각을 공유해야 한다. 시간 정보가 갑자기 바뀌거나 장비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윤초를 처리하면 데이터 처리 순서가 뒤바뀌거나 거래 기록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위성항법 시스템도 정밀한 시간 동기화가 필수적이다. 위성에서 전송하는 신호의 도달 시간을 바탕으로 위치를 계산하기 때문에 시간 기준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실제로 위성항법 시스템마다 윤초 처리 방식이 달라 이를 변환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시간 오차 1시간까지 허용, 수천 년간 조정 불필요할 수도

국제도량형총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 자전 기준 시간과 UTC의 허용 오차를 최대 1시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두 시간의 차이가 허용 범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윤초를 추가하거나 삭제하지 않는다.

시간을 한꺼번에 1시간 조정하는 '윤시간(Leap Hour)'을 즉시 도입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지구 자전 속도의 변화를 고려하면 두 시간의 차이가 1시간에 도달하기까지 수천 년이 걸릴 수 있어 사실상 장기간 별도의 시간 조정이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사회는 앞서 2022년 제27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2035년까지 윤초 조정 방식을 변경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음의 윤초 가능성이 커지고 디지털 인프라의 시간 동기화 문제가 중요해지면서 시행 시점을 앞당겼다.

네이처에 따르면 시간 주파수 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을 원자시계 기반의 연속적인 시간 체계로 전환하는 중요한 변화로 평가하고 있다. 영국 국립물리연구소(NPL) 역시 정밀한 시간 동기화에 의존하는 핵심 인프라의 장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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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일반인이 사용하는 시계나 국가별 표준시가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 표준시 역시 기존과 동일하게 UTC보다 9시간 빠른 체계를 유지한다.

이번 결정은 일상생활의 시간 표시보다는 통신망과 데이터센터, 금융거래, 위성항법 등 초정밀 시간 동기화가 필요한 디지털 인프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