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뒤처졌다" 인정한 일본…소버린 AI 투자 규모 세계 2위

204억 달러 규모 사업 추진…독자 모델·인프라 확보하고 제조·로봇에 적용

컴퓨팅입력 :2026/10/12 10:56    수정: 2026/10/12 11:21

인공지능(AI) 투자와 기술 개발에서 뒤처졌다고 인정한 일본이 제조업과 로봇을 앞세워 자체 AI 기술 확보에 나섰다.

12일 AI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자체 AI 모델 개발과 컴퓨팅 인프라 확충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제조업과 로봇에 AI를 접목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인구 감소에 따른 인력 부족에도 대응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확정한 첫 'AI 기본계획'에서 자국의 AI 투자와 개발이 주요 경제국은 물론 경제 규모가 작은 일부 국가보다도 뒤처져 있다고 진단했다. 해외와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으며 국민 생활과 기업 현장에서도 AI 활용이 충분히 확산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일본이 AI 기술 자립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며 자체 AI 모델 개발과 제조업·로봇 분야의 AI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챗GPT 활용)

이러한 움직임은 해외 AI 투자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글로벌 AI 투자사 에어스트리트캐피털이 최근 발표한 '2026년 AI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소버린 AI 사업에 공개된 투자 규모는 204억 달러(약 27조 2300억원)로 집계됐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아랍에미리트(UAE·335억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보고서가 인용한 미국 신안보센터(CNAS) 조사에서는 67개국에서 정부 지원 소버린 AI 사업 184개가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개된 사업 예산은 약 840억 달러(약 112조원)로 일본과 UAE가 전체의 약 64%를 차지했다.

제조업·로봇에 승부 건 일본…국산 AI 개발에 대규모 투자

일본 정부는 올해 7월 AI 기본계획을 개정하며 제조업과 로봇을 활용한 AI 개발을 강조했다. 일본 기업들이 오랫동안 축적한 제조 기술과 현장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키고, 이를 로봇과 산업설비에 적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상황도 고려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6월 발표한 AI 로보틱스 전략에서 2040년까지 제조업과 의료·돌봄 등 18개 분야에 AI 로봇 약 1000만 대를 보급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로봇에 사용할 자체 AI 모델 개발에도 대규모 예산을 배정했다. 경제산업성은 지난 6월 국산 멀티모달 기반모델 개발 사업을 시작하고 첫해 지원금으로 3873억엔(약 3조 2700억원)을 책정했다. 사업은 2030년도까지 5년간 진행된다.

멀티모달 기반모델은 글과 영상, 음성, 센서 데이터 등을 함께 처리하는 AI다. 이를 로봇에 적용하면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물건을 집거나 옮기는 등 작업에 필요한 동작을 판단할 수 있다. 일본은 제조 현장의 데이터를 활용해 로봇이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도록 개발하고 있다.

사업은 일본 AI 기업 노에트라와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가 맡았다. 노에트라에는 소프트뱅크와 소니, 혼다, NEC 등 44개 기업이 출자했다. 노에트라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반도체 '루빈' 2만 7500개를 활용하는 컴퓨팅 인프라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로봇 외 분야에서도 자체 AI 모델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생성형 AI 개발 지원 사업 '제니악'을 통해 기업에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지난 6월에는 4차 지원 사업에서 AI 기반모델 개발 과제 16개를 선정했다.

정부가 직접 AI를 사용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일본 디지털청은 지난 5월부터 정부 AI 시스템 '겐나이'를 시험 운영하고 있다. 중앙부처 공무원 약 10만 명이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고 향후 이용 대상을 약 18만 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엔 경쟁 상대이자 새로운 시장…AI 안전성도 사업 기회

일본의 AI 투자 확대는 한국과의 기술 경쟁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AI 3대 강국을 목표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사업(독파모)과 컴퓨팅 인프라 확충, 피지컬 AI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양국 모두 자체 AI 모델과 제조업의 AI 전환에 투자하고 있어 산업용 AI와 로봇 분야에서 경쟁 영역이 겹친다.

'2026년 AI 현황 보고서'에 담긴 국가별 소버린 AI 투자 규모. 일본은 204억 달러로 UAE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사진=State of AI Report 2026 캡처)

반면 일본의 AI 도입 확대는 한국 기업에 새로운 시장이 되고 있다. 국내 AI 기업들도 현지 고객 확보와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지난 5월 도쿄에서 개최한 'AI 프론티어 코리아 인 재팬 2026'에는 국내 AI 기업 42개사가 참가해 현지 기업들과 협력을 논의했다. 기업용 AI 플랫폼 기업 올거나이즈는 지난달 도쿄증권거래소 그로스 시장 상장 승인을 받았으며 오는 11월 4일 상장을 앞두고 있다.

AI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분야에서도 협력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본은 제조업에서 오랫동안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중시해 왔다. 로봇과 산업설비에 AI가 도입되면 잘못된 판단이 제품 불량이나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기술 검증도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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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AI 정책 담당자와 의견을 나눈 박지환 씽크포비엘 대표는 일본이 AI 개발과 안전성 검증, 산업 현장 보급을 하나의 과정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술을 빠르게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완성도를 높이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일본은 AI 기술과 안전성을 따로 보지 않고 개발부터 검증, 보급까지 전체 과정을 함께 살피고 있다"며 "제조업에서 품질을 중시해 온 만큼 AI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당한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한국 기업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