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더 큰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더 빠른 현장이 필요하다

국가전략 핵심 지표 '몇 대 생산'서 '몇 대 현장 배치'로 바꿔야...'피지컬AI데이터 커먼즈' 만들어야

전문가 칼럼입력 :2026/07/12 12:16

정주용 그래비티벤처스 대표

골드만삭스가 지난 6월과 7월 잇달아 내놓은 두 건의 분석은 겉보기에 다른 주제를 다룬다. 하나는 한국의 휴머노이드 공급망, 다른 하나는 AI 투자 지형의 변화다. 이 두 주제를 하나로 엮으면 AI 경쟁의 규칙이 바뀌고 있고, 그 전환기에 좀처럼 오지 않을 거대한 기회의 창이  한국에 열렸다는 것이다.

먼저 규칙의 변화다. 골드만삭스는 기업 AI도입이 티핑포인트에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상위 5% 기업의 토큰 소비량이 중간값 기업의 세 배에 달하고 격차는 계속 벌어진다. AI의 무게중심이 모델을 만드는 '훈련'에서 모델을 실제로 쓰는 '추론'으로 이동하면서, 병목도 반도체에서 프로세서 간 통신으로, 데이터센터의 구리 배선에서 광섬유로 옮겨가고 있다. 훈련 컴퓨트의 시대에는 자본의 크기가 순위를 정했다. 추론과 배치의 시대에는 누가 실세계에서 사이클을 돌리는가가 순위를 정한다.

그 실세계의 정점에 휴머노이드가 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 기업이 2035년 글로벌 휴머노이드 생산의 30%를 직·간접적으로 담당하고, 한국 공급망을 통한 생산이 2030년 7만 4000대, 2035년 41만 2000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전동 파워스티어링과 제동 시스템에서 축적한 자동차 부품 역량이 로봇의 근육인 액추에이터로 이어졌고, 제조 현장의 그리퍼 경험은 로봇 하드웨어의 최난제인 정밀 핸드 기술로 이어졌다. 미국 휴머노이드 개발사들의 레이더에 한국 부품사들이 올라 있다는 대목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미국은 소프트웨어 최강국이지만 하드웨어 실행 파트너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낙관적 전망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휴머노이드의 진짜 병목은 모터도 반도체도 아닌 데이터다. 로봇이 현장에 깔릴수록 훈련 데이터가 쌓이고, 데이터가 쌓일수록 능력이 향상되고, 능력이 향상될수록 배치가 늘어난다. 이 자기강화 사이클에서 중국은 이미 앞서 나갔다. 2025년 기준 중국에 배치된 휴머노이드는 1만~1만 5000대다. 미국과 한국은 수백 대 수준이다. 부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데이터 플라이휠을 남의 나라에서 돌리면, 우리는 사이클의 수혜자는 될지언정 주인은 되지 못한다.

정주용 그래비티벤처스 대표

그래서 필자는 국가 전략의 핵심 지표를 바꾸자고 제안한다. '몇 대를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몇 대를 국내 현장에 배치하느냐'다. 정부가 2029년 연간 1000대 생산을 목표로 7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은 방향이 옳다. 그러나 사이클을 돌리기에는 규모가 부족하다. 제조업 밀집 지역을 휴머노이드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하고, 도입 기업에 세액공제와 리스 보조를 패키지로 묶어 배치 속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세계 최고의 산업용 로봇 밀도와 높은 기술 수용성이라는,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초기 조건을 이미 갖고 있다.

배치에서 나오는 데이터는 국가 자산으로 모아야 한다. 조작·작업 데이터를 개별 기업의 사일로에 가두면 국가 전체의 플라이휠은 돌지 않는다. 데이터를 표준화해 공유하는 기업에 연구개발 매칭과 컴퓨트 크레딧을 제공하는 '피지컬AI 데이터 커먼즈'를 만들자. 도메인 데이터를 확보한 특화 모델이 빅테크의 범용 모델을 능가하는 사례는 이미 관찰되고 있다. 제조 강국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제조 조작 데이터셋을 갖게 된다면, 이는 미국도 중국도 복제할 수 없는 자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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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플라이휠이 돌아갈 무대는 수도권이 아니다. 휴머노이드가 처음 투입될 곳은 판교의 오피스가 아니라 천안·아산·창원·울산의 첨단 제조 공장이다. 인력난이 가장 절박한 비수도권 산업 현장이야말로 배치 속도전의 최전선이고, 그곳에서 생성되는 데이터가 국가의 다음 경쟁력이 된다. 피지컬 AI는 태생적으로 현장의 산업이며, 현장은 지역에 있다. 이 전략은 산업 정책인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지역균형 정책이다.

노자는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데서 일어난다고 했다. 2035년 글로벌 생산 30%라는 골드만삭스 전망은 예언이 아니다. 조건부 시나리오다. 그 조건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지금 공장 한 곳에 로봇 한 대를 더 들여놓는 일에서 시작한다. AI 데이터센터가 경쟁의 입장권이라면, 현장의 배치와 데이터는 승부처다. 한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더 빠른 현장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