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한글 현판 병행 설치두고 찬반 대립...'시대정신 반영' vs '문화유산 보존'

문체부, 최휘영 장관 제안 뒤 공개 토론회 열고 의견 수렴

생활/문화입력 :2026/03/31 16:07

문화체육관광부가 31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진행한 ‘한글 현판 추가 설치 의견 수렴을 위한 광화문 현판 토론회’에서 광화문 한글 현판 병행 설치 여부를 둘러싼 찬반 의견이 맞섰다.

이번 토론회는 최휘영 문체부 장관이 올해 초 국무회의에서 광화문에 훈민정음 해례본체 한글 현판 추가 설치를 제안한 뒤 진행된 국민 의견수렴 절차다.

토론회에서는 단순히 한글 현판 추가 여부에 대한 논의를 넘어 광화문을 오늘의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 공간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복원된 문화유산으로서 현상 변경을 최대한 경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개념이 충돌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발제에 나선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광화문 현판 문제를 문화유산 복원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정체성 문제로 끌어올렸다.

그는 "대한민국의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다는 일은 원형 보존의 범주를 넘어 더 크고 넓은 국가 정체성의 범주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현재 광화문 한자 현판 역시 절대적인 원형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2010년 복원 현판이 한동안 흰 바탕 검은 글씨로 달렸다가, 2018년 ‘경복궁 영건일기’ 기록이 확인된 뒤 2023년에야 검은 바탕 금색 글씨로 바뀐 과정을 거론하며, 지금의 현판 또한 확정적 진정성의 산물이라기보다 복원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본 것이다.

광화문 한자-한글 현판 병행 설치 여부를 둔 찬반 의견이 맞부딪히고 있다.

이건범 대표는 노트르담 성당 첨탑,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팡테옹, 팔레루아얄, 로마 카라칼라 대욕장 등 해외 사례도 언급하며 문화유산도 시대정신에 따라 새로운 원형과 공존의 방식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경복궁과 광화문 복원이 일제 훼손을 되돌리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시대정신 아래 진행됐다면, 지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인류 공영에 앞장서는 방향이 새로운 시대정신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글은 2004년 헌법재판소 결정이 적시한 것처럼 국가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이며, 갑오개혁 이후의 법적 정통성과 국민 주도의 문자혁명을 통해 축적된 역사적 정통성을 함께 갖췄다는 점이 이건범 대표가 주장한 논리다.

발제를 진행 중인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이어서 발제에 나선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정반대 시각을 제시했다.

그는 복원 궁궐이 집단 기억을 물질적으로 보완하는 장치라는 점을 강조하며 문화유산은 과거의 흔적이자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물질 증거이기에 현재의 효용과 상징을 이유로 이를 변형하는 것은 물질 증거를 조작하는 일이라고 봤다.

최종덕 소장은 "광화문의 진화는 경복궁과 함께 1910년으로 끝났다. 없었던 과거를 새로 만드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므로 과거가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스스로 증언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찬반 논리가 보다 세분화됐다.

김권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광화문을 단순한 복원 유적만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오늘의 광화문이 "경직된 역사의 현장이 아닌, 생동감 넘치는 문화의 용광로가 됐다"라며 "과거 국가의 위엄을 과시하던 광화문 공간은 이제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며 다양한 가치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화합의 장소로 발돋움했다"고 말했다.

김주원 한글학회장

김주원 한글학회장은 보다 분명하게 한글 현판 추가 설치 의견을 제시했다.

김 학회장은 "한글의 탄생지이자, 세계적인 언어 이론서 훈민정음해례본의 탄생지인 경복궁의 정문에 우리의 자랑인 훈민정음해례본 글꼴로 된 한글 현판 '광화문'을 추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자 당당한 요구다"라고 주장했다.

이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전통 건축의 중층성과 현대 국가유산 보존 원칙 사이의 충돌을 짚으며 신중론에 가까운 입장을 폈다.

그는 "현대 유산 관리의 대원칙은 원상 유지이며 어떠한 자의적 해석이나 현대적 창작의 가미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고 전제한 뒤, "2023년 고증을 거쳐 복원된 한자 현판을 수정하거나 변경하는 행위는 유산 보존의 정통성 측면에서 상당한 반발을 초래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광화문이 지닌 중층적 장소성은 간과할 수 없다며 "동일한 명칭의 현판을 상하로 나란히 게시하는 방식은 유례를 찾기 힘든 형식이다. 한자 현판 아래 한글 현판을 덧붙이는 것은 단순한 발음기호의 표기에 불과하며, 이는 오히려 한글의 주체적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석주 서일대 건축과 교수

홍석주 서일대 건축과 교수는 "현대에서 문화유산을 대하는 가치 기준은 명확하다.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는 매우 좋은 사례다"라고 짚었다. 과거의 건물과 몹시 다르게 만들어서 현대가 과거를 돋보이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어서 그는 "광화문 현판을 이중으로 쓰는 문제는 진정성을 강화하는 문제인가를 생각해야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은 관광·문화콘텐츠 관점에서 찬성 논리를 폈다.

관련기사

그는 "2026년 대한민국 관광이 마루지(랜드마크)를 찾았다. 광화문이다"라고 전제한 뒤, "오늘의 광화문은 전 세계 MZ세대가 열광하는 ‘한국 문화의 성지’로 급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광화문에 훈민정음 해례본체 한글 현판을 추가 설치하는 과업은 당위적 복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며 "대한민국 문화관광 콘텐츠의 화룡점정에 다름없을 소중한 작업이다"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