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은 한국 사회에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를 강렬하게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바둑에서 AI가 승리하는 장면은 기술 발전이 산업과 사회 전반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알파고 대국 이후 10년이 흐른 지금, AI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생성형 AI 확산과 함께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AI 패권 경쟁이 본격화됐고, 컴퓨팅 인프라와 데이터, 반도체, 인재를 둘러싼 경쟁 역시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 역시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정책과 산업 전략을 정비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 상황이다.
지디넷코리아는 이번 3편의 기획 기사를 통해 ‘알파고 쇼크’ 이후 10년간 한국 AI 산업이 걸어온 흐름을 되짚어보고, 글로벌 AI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 마주한 기회와 과제를 살펴본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알파고 이후 국내 AI 산업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구조적 한계를 돌아보고, 두 번째 기사에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AI 정책과 국가 전략을 짚는다. 세 번째 기사에서는 미·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글로벌 AI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의 경쟁력과 향후 과제를 분석한다. [편집자 주]
한국은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바둑에서 AI가 승리하는 '알파고 쇼크'를 가장 가까이서 체감하며 AI 시대 개막을 목도했다. 하지만 그런 충격에 비해 준비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평이다.
알파고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AI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두드러지지 못했다.
당시 기업들은 앞다투어 AI 전담 부서를 신설했고 정부 부처들도 앞다퉈 관련 예산을 편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오랜 기간 기초 과학과 컴퓨터 공학에 투자해 온 선진국들의 행보와 달리, 전형적인 한국식 벼락치기에 가까웠다는 분석이다. AI 기술의 근간이 되는 알고리즘 설계나 원천 기술 개발보다는 가시적인 성과나 응용 서비스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한계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다"… 뼈아픈 AI 인재 부족
본격적인 AI 경쟁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맞닥뜨린 암초는 인재 부족'이었다. 구글,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천문학적인 연봉으로 전 세계의 A급 AI 석학들을 싹쓸이하는 동안, 국내 학계와 산업계는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렸다.
대학의 AI 관련 학과 정원은 규제에 묶여 유연하게 늘어나지 못했고, 그나마 배출된 우수 인력들마저 더 나은 연구 환경과 처우를 찾아 해외로 유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기술은 돈으로 살 수 있어도, 그 기술을 다룰 사람은 하루아침에 길러낼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는 시기였다.
위기감이 고조되자 정부도 본격적인 팔을 걷어붙였다. 2019년 12월, 정부는 'IT 강국을 넘어 AI 강국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범정부 차원의 '인공지능(AI)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AI 인프라 확충, 전 국민 AI 교육, 그리고 AI 윤리 기준 마련 등 다방면의 청사진이 제시되었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 AI 생태계 조성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세웠다는 점에서 한국 AI 정책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알파고 사태에서 배운 게 없다"는 쓰라린 성찰
AI에 대한 현장의 불만과 우려도 급증했다.
정부의 지원이 단기적인 실적 위주의 연구 과제에 편중되어 있어 10년~20년을 내다보는 혁신적인 원천 기술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었다. 또한 데이터 규제와 얽히고설킨 부처 간 칸막이는 AI 기업 발목을 잡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특히 산업 현장에서는 무늬만 'AI'를 외치는 어설픈 도입이 뼈아픈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당시 많은 기업이 자체적인 데이터 인프라 수준이나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이른바 '알파고 트렌드'에 휩쓸려 섣불리 기술을 도입하는 데 급급했다.
그 결과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을 쏟아붓고도 실제 업무 효율성 향상이나 수익 창출로는 이어지지 못하는 저조한 성과를 거두었고, 이는 곧 AI 기술의 실효성에 대한 현장의 회의감과 기업들의 짙은 불만으로 직결됐다.
여기에 AI가 머지않아 인간의 일자리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와 불안감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지면서 도입 초기부터 노동계와 현장 실무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이처럼 섣부른 기술 도입에 따른 실적 부진과 일자리 상실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맞물리면서 당시 도입된 AI 시스템은 조직 내 갈등만 유발한 채 실제 산업 현장 깊숙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겉돌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앞으로의 10년은 다르다"…알파고 쇼크 딛고 '진짜 성과' 내는 한국 AI
하지만 알파고 쇼크 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되고 있다. 챗GPT 등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전 세계적인 AI 패권 경쟁이 2차전에 돌입하면서, 과거의 뼈아픈 시행착오를 거름 삼아 이제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막연한 공포와 어설픈 도입으로 겉돌던 과거와 달리, 기술의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기업들 역시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업무 생산성 향상과 수익 창출에 AI를 본격적으로 접목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기술적 호기심을 넘어 AI가 산업 전반에서 눈에 띄는 실적과 성과를 증명해 내는 '진짜 AI 시대'가 마침내 막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충격과 혼란 속에서 출발했던 한국 AI 생태계가 오랜 담금질을 끝내고 글로벌 무대에서 본격적인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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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AI 전문 기업 대표는 "과거를 돌이켜보면 기술의 급격한 발전 속도를 제도적 지원과 성장 정책이 좀처럼 따라가지 못했고, 척박한 기업 환경 탓에 AI에 대한 현장의 부정적인 인식마저 팽배했다"며 "이로 인해 국내 AI 산업 생태계의 발전이 기대보다 지연된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지금은 산업 전 분야에 걸쳐 'AI 도입은 생존의 필수'라는 공감대가 확고히 자리 잡았고, 기술 자체도 기업의 실질적인 성장을 견인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며 "본격적인 실적 장세로 접어든 앞으로의 10년은 지난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폭발적인 도약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