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소프트웨어 공급망을 지탱하던 오픈소스 생태계가 인력난과 지원 부족으로 심각한 지속가능성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는 역설적이게도 이 위기가 국내 기업에게는 글로벌 진출을 위한 새로운 '기회의 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그동안 약점으로 지목된 국내 기업의 낮은 인지도를 적극적인 오픈소스 기여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픈소스 생태계 중심축이 소프트웨어(SW)에서 '오픈소스 인공지능(AI)'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 만큼 AI 관련 승부수를 띄운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씽크프리, 인젠트, 큐브리드 등 국내 기업들도 오픈소스를 활용한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인력부족·비용난에 허덕이는 오픈소스, 대안마련 시급
지난달 쿠버네티스 SIG 네트워크와 보안 대응위원회(SRC)가 인력 부족을 이유로 '인그레스 엔진엑스(NGINX)' 지원을 중단하는 등 주요 오픈소스 기술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빅테크 기업도 의존하는 핵심 기술이 소수의 자원봉사자에 의해 위태롭게 지탱되고 있어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단순히 코드를 가져다 쓰는 것을 넘어, 인력을 투입해 핵심 프로젝트의 유지보수(메인테이너)를 수행하는 등 '지속가능성'을 제공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국내 기업에 대한 인지도를 확보하고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IBM 리서치의 제임스 보텀리 엔지니어는 "단순 기부보다 기업 소속 엔지니어를 파견해 직접 코드를 수정하는 '업스트림 기여'는 기업 기술력을 전 세계에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도 오픈소스 기여가 해외 진출의 실질적인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재환 AWS 파트너 세일즈 매니저는 "국내 기업이 우수한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해외 진출 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부족한 브랜드 인지도"라며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름을 알리는 것은 부족한 인지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오픈소스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기업이 주도적으로 거버넌스에 참여하면 기술적 종속을 피하고 장기적으로 클라우드 전환 비용 등을 절감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실례로 씽크프리는 내부 오피스 솔루션 핵심 엔진을 모듈화해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유럽은 특정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데이터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소스코드를 투명하게 검증할 수 있는 오픈소스를 공공 조달 시장의 필수 요건으로 삼는 등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도, 오픈소스로 글로벌 시장 진출… 성공 방정식 배워야
이미 중국과 인도는 이러한 '오픈소스 전략'을 발판 삼아 단순한 IT 아웃소싱 국가에서 글로벌 SW 강국으로 체질을 개선했다. 이들은 적극적인 오픈소스 기여를 통해 자국 브랜드에 씌워진 '디스카운트(편견)'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자사 기술을 글로벌 표준으로 등극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베끼기'나 '외부 데이터 무단 활용'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던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오픈소스 재단을 '신뢰 자본 확보'의 창구로 활용했다.
중국 데이터베이스 기업 핑캡(PingCAP)은 자체 개발한 DB 기술 'TiDB(타이DB)'의 소스코드 전부를 클라우드 네이티브 컴퓨팅 재단(CNCF)에 기증했다. 이 전략을 통해 타이DB는 '중국산 소프트웨어'라는 꼬리표를 떼고 'CNCF가 보증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권위를 획득했다.
이를 바탕으로 핑캡은 글로벌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역시 내부 핵심 미들웨어를 아파치(Apache) 재단 최상위 프로젝트로 승격시키며 기술적 신뢰도를 서구권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실리콘밸리의 핵심 인력 공급처 역할에 머물렀던 인도 또한 오픈소스를 통해 독자적인 글로벌 IT 기업을 배출하는 산실로 변모했다.
하수라(Hasura)와 포스트맨(Postman)은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대한 헌신적인 기여와 소통을 무기로 전 세계 개발자들 사이에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며 인도 대표 유니콘 기업으로 떠올랐다.
본래 음식 배달 앱 등을 개발하던 하청 업체였던 하수라는 내부용으로 쓰던 개발 도구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이 도구는 개발 편의성을 인정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4억회 이상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하수라는 단숨에 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했다.
포스트맨 역시 개발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무료 크롬 확장 프로그램에서 시작했다. 현재는 전 세계 2천500만 명 이상 개발자가 사용하고 포춘 500대 기업의 98%가 도입한 API 생태계 표준 기업로 성장했다.
이들은 개발자가 자발적으로 기술을 전파하고 사용하는 문화를 만듦으로써, 별도의 막대한 마케팅 비용 없이도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드는 '바텀업(Bottom-up)' 성공 신화를 쓴 것이다.
김재환 매니저 역시 이런 바텀업 성공 사례의 핵심 동력으로 오픈소스가 가진 마케팅 효과를 꼽았다. 기술력이 뛰어나도 시장에 알려지지 않으면 사장되는 현실에서 오픈소스 공개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글로벌 사용자 층을 확보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김 매니저는 "최근 주목받는 음성합성(TTS)이나 보이스 AI 스타트업이 독자 모델을 고집하다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오픈소스로 풀어버리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곤 한다"며 "코드를 공개하면 전 세계 사용자들이 피드백을 주고 평가를 남기며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상승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오픈소스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마케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오픈소스 기반 비즈니스 AI 모델을 채택해 시장에 먼저 이름을 알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사업 기회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이 최근 글로벌 AI 스타트업들의 주요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AI로 이동하는 오픈소스... '오픈 웨이트' 승부수 띄워야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오픈소스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기존 소프트웨어(SW) 분야보다, 이제 막 태동기에 진입한 '오픈소스 AI' 시장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장의 목소리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김재환 매니저는 "한국이 기존 오픈소스 SW 분야에서는 국제적인 기여가 부족했지만 AI 분야는 이제 막 판이 깔린 상황"이라며 "소스 코드를 넘어 학습된 '모델' 자체가 핵심 경쟁력이 되는 새로운 룰이 적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실행 전략으로 '오픈 웨이트(Open Weights)' 방식을 꼽는다. 이는 민감한 원천 학습 데이터는 공개하지 않더라도 모델의 가중치(Weights, 파라미터)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특히 특정 산업이나 기능에 특화된 '버티컬 AI'나 '소형언어모델(sLLM)'로 차별화하고, AI 모델을 비롯해 학습 데이터 처리, 미세조정 도구 등 'AI 개발 인프라' 관련 오픈소스를 공개함으로써 기술적 리더십을 증명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혔다.
더불어 기존에 공개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꾸준히 운영·관리해 주는 것 또한 신뢰 자본을 쌓는 확실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딥시크는 자체 개발한 고성능 코딩 특화 모델을 오픈소스로 전면 공개하면서 단숨에 전 세계 개발자 커뮤니티의 주목을 받았다.
비용 효율성과 높은 성능을 앞세운 딥시크의 모델은 공개 직후 허깅페이스 등 주요 플랫폼에서 다운로드 상위권을 휩쓸었고 이를 통해 '중국 AI'에 대한 편견을 깨고 글로벌 기술 표준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는 후발 주자라도 확실한 성능의 모델을 공개하면 단기간에 글로벌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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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 건국대 교수는 "현재 오픈소스 생태계의 중심축은 전통적인 소프트웨어에서 AI로 급격히 이동했다"며 "이미 거대 기업이 장악한 오픈소스 SW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새롭게 열린 오픈소스 AI 생태계는 국내 기업이 신속하게 진입해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진단했다.
김재환 매니저 역시 "인공지능은 모델만 공개해도 사용자들이 이를 가져다 미세 조정하며 발전시킬 수 있는 특성이 있다"며 "성능이 검증된 모델을 '오픈 웨이트'로 풀어버리면, 전 세계 개발자들이 이를 기반으로 파생 서비스를 만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글로벌 마케팅 효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