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Pirate)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깊은 철학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 Pirate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πεῖρα(peira)에서 비롯됐는데, 이 말은 ‘시련’, ‘도전’, ‘모험’을 뜻했다. 이후 ‘습격자’를 의미하는 πείρατες(peirates)로 변했고, 다시 라틴어 pirata, 프랑스어 pirate를 거쳐 오늘날의 해적이라는 개념으로 귀결됐다. 이 계보만 놓고 봐도 해적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세계를 시험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에 가깝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πεῖρα(peira)에 ‘안에/안으로’라는 뜻의 접두를 붙여 ἐμπειρία(empeiria), 곧 ‘경험’이라는 개념을 정식화했다. 그에게 경험은 감각과 기억의 반복을 통해 형성되는 구체적 인식 능력이었고, 기술이나 과학적 지식의 출발점이었다. 무엇보다 윤리학에서 실천적 지혜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경험이다.
경험은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행위를 거치며 축적되는 지식 자산이자, 상황별 세부 맥락을 읽고 올바른 수단을 선택하게 해 주는 힘이다. πεῖρα(peira)가 ‘시도’, ‘도전’을 뜻한다는 사실은, ἐμπειρία(empeiria)가 결국 행동을 통한 학습이라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해적(pirate)이라는 단어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세계를 시험하며 그 과정 자체를 경험으로 전환해 온 인간의 오래된 사유가 겹겹이 배어 있다.
이처럼 심오한 ‘경험’과 다소 거칠어 보이는 ‘해적’이 같은 어원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점은, 오늘날 스타트업 세계를 바라보는 흥미로운 렌즈가 된다. 누구든 맨땅에서 창업에 도전하고 시련 속에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축적해 간다면, ‘해적’이라는 단어가 결코 남의 이름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스타트업의 항해란, 항로가 검증된 바다를 순항하는 일이 아니라, 미지의 해역으로 배를 몰고 나가 물살과 암초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대 스타트업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적 창업자를 굳이 한 명만 꼽으라면 스티브 잡스를 들 수 있다. 1979년 그는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에서 윈도우 인터페이스의 원형을 과감히 ‘해적질’해서 애플의 LISA와 맥킨토시의 GUI로 탑재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맥락을 통째로 가져와 1984년 슈퍼볼 맥킨토시 광고를 만들었고, 스튜어트 브랜드의 Whole Earth Catalog 뒷표지에 적혀 있던 문장을 빌려와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의 결구 “Stay hungry, stay foolish”를 완성했다. 모두 남의 지식 자산에서 출발했지만, 그가 만들어 낸 결과물은 원작을 훨씬 넘어서는 가치와 파급력을 지녔다. 필자는 현대적 의미의 걸출한 지식 해적질을 일컫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고, ‘경험’(empeiria)과 ‘해적’(pirate) 단어를 결합해 “Empirateship(엠파이러트쉽, 신해적정신)”이라 부르면 어떨까 한다.
잡스는 해적이라는 메타포를 누구보다 능숙하게 활용했다. 그의 매킨토시 해적들은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협동을 중시하는 100명 정도의 소집단이었으며, 강렬한 목적 의식을 공유한 채 창의적 사고의 확장을 위해 불굴의 ‘반란’을 일으키는 조직이었다. 애플이 창립 40주년을 맞이하던 시기, 애플 캠퍼스에 해적 깃발(Jolly Roger)이 휘날렸던 일화는 유명하다. 잡스는 “해군에 들어가느니 해적이 되는 편이 낫다”라고 말하며, 잘 짜인 매뉴얼과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거대 조직보다, 규칙을 깨뜨리며 새로운 항로를 찾는 작은 해적선을 택하라고 주문했다.
해군은 갖춰진 시스템, 빼곡한 절차, 단정한 제복 뒤에 숨은 집단사고의 안락함을 상징한다. 반대로 해적선은 불확실성과 위험,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와 창의를 의미한다. 창의적인 젊은이라도 대기업의 안전한 항구에 정박하는 순간, 황금 수갑의 무게가 그의 상상력을 서서히 잠식한다. “해군이 아니라 해적이 되자!”는 맥킨토시 팀의 외침은 멋을 위한 구호가 아니라, 기존의 규칙을 깨부수고 낡은 항해도를 찢어버릴 용기를 요구하는 선언이었다. 이 해적정신은 오늘날 기업가정신의 핵심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 더 이상 지도만 보고 따라가는 창업자는 매력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으로 해도를 다시 그리는 Empirateship, 곧 ‘신(新)해적’의 길이다.
이 지점에서 해적정신과 왜곡된 기업가정신을 한 번 나란히 놓고 볼 필요가 있다. 해적정신은 규칙을 무시하는 무모함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뚜렷한 가치와 공동체 규범이 존재한다. 자유는 ‘무제한 방종’이 아니라, 규칙을 과감히 재구성하며 미지의 바다로 나가는 용기다. 용기는 위험을 감수하며 보물을 향해 돌진하는 태도이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돛을 올리는 힘이다. 동료애는 모두가 투표하고 모두가 보물을 나누는 공정한 분배의 원칙으로 드러난다. 기발함은 즉석에서 배를 고치고 전략을 재구성하는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며, 저항정신은 왕의 법을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규약을 세우는 독립성이다.
반면 왜곡된 기업가정신은 겉으로는 창업정신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계산된 위험만 피하며 규정된 틀에만 머무른다. 회사의 규정과 시장의 규칙을 ‘절대선’으로 신격화하고, 동료를 함께 항해하는 선원이 아니라 교체 가능한 인력으로 취급한다. 그들의 ‘보물 분배’는 윗사람을 중심으로 계급적으로 나뉘며, 독창성은 기존 규정을 요령껏 우회하는 얄팍한 편법으로 축소된다. 신해적정신이 새로운 시장과 사업법칙을 새로 짜는 힘이라면, 왜곡된 기업가정신은 이미 그려진 지도 위에서 표지만 바꾸는 작업에 그친다.
Empirateship은 바로 이 해적정신에 경험의 철학을 더한 개념이다. 전통적인 기업가정신이 ‘혁신, 위험 감수, 주도성’이라는 삼박자를 강조해 왔다면, 오늘날의 해적 창업자들은 여기에 ‘자유, 용기, 동료애, 기발함, 저항정신’을 더해 자신만의 항해 방식을 만들어 간다. 그들에게 사업은 단순히 회사를 설립하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바다, 새로운 법칙’을 설계하는 일이다. 이들은 남이 만들어 둔 항로를 따르기보다, 스스로 나침반을 믿고 항해한다. 폭풍 속에서도 “우리는 한 배”라고 서로를 확인하며, 실패를 사업계획서의 흠집이 아니라 항해일지에 남은 전설의 한 페이지로 기록한다.
Empirateship 창업자는 그래서 ‘기업가’라기보다 ‘신대륙 개척자’에 가깝다. 낡은 지도를 불태우고, 새롭게 찍은 좌표로 세상의 경계를 다시 긋는다. 그들이 선호하는 조직은 위계가 아니라 선원들의 연합이다. 누구는 선장이고 누구는 갑판원이라는 구분 이전에, 모두가 항해사이고 모두가 책임 있는 의사결정자다. 혼자 거대한 군함을 만들기보다, 각자의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해적단을 구성해 더 큰 바다를 누비는 편을 택한다. 이들의 구호는 단순하다. “Raise your colors!”—깃발을 올리고, 자신의 색깔을 숨기지 않은 채 전면전에 나서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Empirateship의 정신을 짧은 선언문으로 정리해 보자. 안전한 항구를 떠나 미지의 바다로 나아가는 이들의 결의는 다음과 같이 서사적으로 응축될 수 있다.
We abandon the safe harbor behind us.
We chart a course into the unknown seas.
We move not by command, but by trust unshaken.
We navigate, not by rules, but by faith unwavering.
We are the crew, armed with the spirit of the Empirateship.
We are the architects of a world yet to be drawn.
(우리는 안전한 항구를 과감히 떠난다.
우리는 미지의 바다에 새로운 항로를 그려 넣는다.
우리는 명령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동료애로 움직인다.
우리는 규칙이 아니라, 확신으로 항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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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Empirateship 정신으로 무장한 선원이다.
우리는 아무도 그려보지 못한 세계의 설계자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