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자원관리원(NIRS) 대전센터 화재로 국가 전산망 장애가 나흘째 이어지는 가운데, 배터리 업계가 숨을 죽이고 있다. 공공 서비스 기반이 흔들린 만큼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이 배터리 산업 전반 신뢰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29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정부24 등 수백 개 공공 서비스가 중단·지연되며 현장 행정도 혼선을 빚고 있다. 사고는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 구역에서 촉발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로 추정되며, 해당 UPS에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 배터리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관계 당국과 기관의 합동조사가 진행 중이며, 구체적 원인과 책임 소재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로써 데이터센터 업계의 ‘효율과 안전’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모습이다. 데이터센터에 UPS는 필수 설비다. 정전 발생 시 수 초 내 전원을 이어 주는 장치로, 평상시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상시 대기한다. 전기차·스마트폰처럼 일상적으로 충방전을 반복하는 용도가 아니라는 점이 특징이다.
다만 최근 대형이나 신축 데이터센터일수록 공간 효율, 수명, 총비용(TCO) 측면에서 유리한 리튬이온 배터리 채택이 늘고 있다. 그만큼 화재 발생 시 열폭주로 확산할 수 있는 특성에 대응해 설계·운영·소화 체계 표준 준수와 사전 관리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국내에선 2022년 카카오 등 대규모 서비스 장애를 일으킨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가 대표적 선례다. 당시에도 UPS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화재가 시작됐다. 이후 일부 사이트에서 리튬이온 대신 납축전지나 리튬인산철(LFP) 등으로 전환했다는 발언과 보도가 나오면서 업계 전반 설계·운영 기준 재점검으로 이어졌다. 이번 NIRS 사고로 이러한 움직임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주목된다.
UPS 배터리 선택의 기준은 ‘효율’과 ‘안전 체감’ 사이에서 갈린다. 납축전지는 리튬이온에 비해 에너지밀도와 수명이 떨어지지만, 열폭주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평가돼 보수적 운용 환경에서 선호된다. 반면 리튬이온 배터리는 랙 밀도와 수명, 유지보수 측면 강점이 커 인공지능(AI) 수요 확대로 전력·발열이 높아지는 대형 데이터센터에서 채택이 확대되는 추세다.
결국 관건은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임계값과 차단 로직, 화재 구획과 전용 소화·배기 설비 적합성, 교체 주기 준수 등 ‘현장 관리 역량’을 통해 리스크를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는 데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대중 인식이다. 지난해 8월 지하주차장 벤츠 차량 화재 등으로 전기차 포비아(혐오)가 확산됐다가 올해 들어 잠잠해지고, 과거 잇따른 화재로 위축됐던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우여곡절 끝에 회복세를 보이는 시점에 국가 데이터센터 화재라는 악재가 겹치며, 업계에서는 ‘리튬이온 배터리 혐오’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UPS 시스템사·운영기관 간 책임 구분을 명확히 하고, 공개 가능한 시험 데이터와 점검 결과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화재의 구체적 발화 원인, 배터리 화학계열과 설치·교체 이력, 운영·점검 체계의 적정성 등은 조사 결과로 확인될 사안이다. 다만 '설치 후 10년 이상 사용' 등 교체 시점·주기에 관한 문제가 드러난 만큼(일반 권장 범위 7~10년), 유사 설비를 가진 기관·기업에는 선제 점검과 보완 조치가 요구된다. 실제 현장에서는 노후 팩 선제 교체, BMS 로그 상시 점검, 배터리실 구획 강화와 합동훈련 등 기본 조치 체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업계 관계자는 “UPS는 다른 제품과 달리 상시 충방전을 반복하지 않아 배터리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다”며 “오랜 기간 별다른 문제가 없다가 특정 상황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제품 외 여러 요인 관리 문제 가능성도 열어 두고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국정자원관리원 화재 진짜 원인은?…경찰 전담팀 수사 본격화2025.09.28
- 국정자원 복구체제...551개 시스템 단계적 재가동 목표2025.09.28
-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배터리 화재…"데이터 피해 줄이려 물도 못뿌려"2025.09.27
- 국정자원 화재로 드러난 공공SW 부실…행안부 국감 '주목'2025.09.29
이어 “석유에 불을 붙이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덩어리인 배터리는 평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ESS는 UPS와 전혀 다른 사업임에도 불안 심리가 전이될 수 있어 업계에서도 조사 결과를 예의주시하며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