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주관해 상정하고 지난 2월 국가인공지능위원회가 심의해 채택한 '인공지능(AI) 데이터 확충 및 개방 확대방안'은 AI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본격적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인공지능위원회는 이 방안을 채택하면서 AI 기반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대응하고 AI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양질의 데이터를 보다 많이 확보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을 목표로 삼았다.
이 의안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AI 정책의 최상위 거버넌스 기구인 국가인공지능위원회가 AI 발전을 위해 데이터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과 정책 방향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다만 보다 중요한 과제는 이 방안의 취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행력 있는 후속 정책을 신속히 마련한 후 실제 집행으로 이어가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AI 모델이 실제로 어떻게 설계되고 학습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산업 현장과 기술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이론에만 머무는 논의는 오히려 과도한 규제나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이어져 혁신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
이번 의안은 AI가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활용할 때 정보주체의 '동의'만을 유일한 법적 근거로 삼지 않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는 동의를 받기 어려운 현실적인 제약과 형식적인 동의가 오히려 개인정보 보호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동의 외에도 정당한 이익, 공익 목적, 가명정보 활용 등 다양한 법적 근거를 합리적으로 마련하면 데이터 활용의 유연성을 높이고 AI 혁신의 기반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다. 결국 어떤 대안을 채택하고 그 기준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가 나아갈 AI 시대의 방향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계약의 필요성(제15조 제1항 제4호)'과 '정당한 이익(같은 항 제6호)'은 개인정보보호법상 동의에만 의존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법적 근거다. 지난해 12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공개한 개인정보 처리 통합 안내서에서도 이 두 근거의 적용 범위를 넓히려는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방향성은 데이터 활용의 현실성과 기술 발전의 속도를 함께 고려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AI 학습에는 필연적으로 대규모 데이터의 활용이 요구되며 이를 뒷받침하려면 기술적 맥락과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계약의 필요성'과 '정당한 이익'의 적극적인 해석과 적용은 앞으로의 AI 정책과 데이터 활용 논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AI 모델의 발전은 이제 단순한 IT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전반의 경쟁력과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이익과 직결된 과제가 됐다. 기업들은 경쟁력 있는 AI 기술을 학습하고 고도화하는 일을 생존 전략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일반 국민 역시 AI 기술을 통해 보다 나은 서비스를 누릴 기회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AI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국내 이용자에 기반한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우리의 언어, 지리, 문화적 맥락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술은 결과적으로 편향되거나 차별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는 AI가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오고 있는 지금 중대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결국 해답은 데이터 접근성의 획기적 확대에 있다.
이미 세계 각국은 데이터 주도권 확보를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유럽 개인정보보호이사회(EDPB)는 AI 학습을 위한 적법 근거로 '정당한 이익'을 명시했고 일본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통해 일정한 요건 하에서는 동의 없이도 AI 학습 데이터 활용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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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더 이상 논의를 미룰 수 없다. AI 시대에 걸맞은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할 때다. 데이터 활용과 개인정보 보호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조화를 이뤄야 할 정책 목표다. 이를 위한 정교한 설계가 절실하다.
이 중요한 전환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제도다. 기술을 직접 개발하고 데이터를 다루는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 규제는 결국 우리 스스로의 경쟁력을 제약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AI 강국을 향한 우리의 여정이 규제의 그늘 속에 가로막힐 수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