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공개 석상에서 처음으로 노소영 나트센터나비 관장과의 이혼소송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최 회장은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이혼소송 항소심 관련 기자 설명회에 참석해 "재산분할과 관련해 객관적이고 명백한 오류가 발견됐다"며 상고 이유를 밝혔다.
SK그룹은 그동안 오너의 개인적인 문제라며 이혼 소송과 관련해 공식 대응에 나서지 않았지만, 항소심 판결 이후 사안이 심각해진 만큼 경영진이 직접 나서는 모양새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1조3천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과 달리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이 태평양증권(현 SK증권) 인수에 흘러가는 등 SK그룹이 6공 특혜를 받아 성장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것이다.
최 회장은 지난 3일 항소심 판결 직후 열린 긴급 대책 회의에서 SK가 성장해 온 역사를 부정한 이번 판결에 유감을 표하며, SK 구성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진실을 바로잡겠다고 밝히며 상고 의지를 밝혔다.
■ 전날 밤까지 고민 후 직접 해명한 최태원 회장, 90도 고개 숙여 사과
이날 설명회는 원래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 위원장과 변호인단만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최 회장이 깜짝 등장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최 회장은 전날 밤까지 참석 여부를 고민하다가 직접 입장을 밝히고자 참석을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개인적인 일로 국민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허리를 90도 굽혀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SK 성장이 불법적인 비자금을 통해 이뤄졌다, SK 역사가 전부 부정당하고 '6공화국 후광으로 사업을 키웠다'는 판결 내용이 존재하고 있다"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저뿐만 아니라 SK그룹 모든 구성원 명예와 긍지가 실추되고 훼손됐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바로잡고자 상고를 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부연했다.
최 회장은 "부디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바라고, 이를 바로잡아주셨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이라며 "앞으로 이런 판결과 관계없이 제 맡은 바 소명인 경영 활동을 더 충실히 잘해서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최 회장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최 회장은 적대적 인수합병 우려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항소심 판결 이후 SK그룹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헤지펀드 위협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되며, 항소심 판결 이후 3거래일 연속 SK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최 회장 현금성 자산은 2천억∼3천억원 수준이므로, 항소심 판결에 따르려면 지분 매각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 회장 대부분의 자산은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 지분(지분율 17.73%)이다. 최 회장이 이혼 소송 해결을 위해 지분을 일부 양도하거나 매각해야 한다면, 최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 지분율은 20%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이날 이같은 우려에 다소 담담하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SK는 이것 말고도 수 많은 고비를 넘었다"며 "우리는 충분히 해결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적대적 인수합병이 되지 않게 예방은 해야 하지만, 그런 일이 생겨도 충분히 막을 역량이 존재한다고 본다"며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적대적 인수합병을 예방할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추가 질문에 이형희 SK수펙스위원회 위원장은 "아직은 그런 것을 얘기할 상황이나 시기가 아니다"며 "길게 보면서 회장님이 여러 전략을 고민하실 것"이라고 답하는 데 그쳤다.
■ 판결 18일 후 입장 밝힌 이유는?…"가짜뉴스 확산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SK그룹과 변호인단은 지난달 30일 항소심 선고 후 18일 만에 공식 입장을 밝히게 된 배경으로 '판결문 유출'을 지목하기도 했다.
변호인단은 "판결문이 무차별적으로 유출돼 게시되면서 아직 최종 판결 확정 전이고 다툼이 예정돼 시정될 것으로 보이는 잘못된 사실 관계가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기사화돼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일반인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너무 높아 부득이하게 최 회장 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형희 위원장도 항소심 판결 근거가 됐던 6공 후광설에 대해 '해묵은 가짜뉴스'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6공 기간 SK그룹 매출 성장률이 10대 그룹 중 9위라는 점을 이유로 들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이번 항소심 판결로 SK그룹 성장 역사와 가치가 크게 훼손된 만큼, 이혼 재판은 이제 회장 개인의 문제를 넘어 그룹 차원의 문제가 됐다"며 "6공의 유무형 지원으로 성장한 기업이라는 법원 판단만은 상고심에서 반드시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6공과의 관계가 이후 오랜 기간 회사 이미지와 사업 추진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상고심을 통해 회사의 명예를 다시 살리고 구성원의 자부심을 회복하겠다”고 강조했다.
■ "항소심 판결, 명백하고 치명적인 오류…상고로 바로잡을 것"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상고의 배경으로 항소심 재판부 판결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994년11월 최 회장 취득 당시 대한텔레콤 가치를 주당 8원,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5월 주당 100원, SK C&C가 상장한 2009년 11월 주당 3만5천650원으로 각각 계산했다.
하지만 최 회장 변호인단은 두 차례 액면분할을 고려하면 1998년 5월 당시 대한텔레콤 주식 가액은 주당 100원이 아니라 1천원이 맞다는 주장이다. 1994년부터 1998년 선대회장 별세까지, 이후부터 2009년 SK C&C 상장까지의 가치 증가분을 비교하면서 잘못된 결과치를 바탕으로 회사 성장에 대한 선대회장의 기여 부분을 12.5배로, 최 회장의 기여 부분을 355배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당초 재판부가 12.5배로 계산한 선대회장 기여분이 125배로 10배 늘고, 355배로 계산한 최 회장의 기여분이 35.5배로 10분의1배 줄어들면 사실상 ‘100배’ 왜곡이 발생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재산 분할 판단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숫자에 결함이 있는 만큼 ‘산식 오류→잘못된 기여 가치 산정→자수성가형 사업가 단정→SK 주식을 부부공동재산으로 판단→재산분할 비율 확정’으로 이어지는 논리 흐름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이같은 심각한 오류와 더불어, 6공 유무형 기여 논란 등 여러 이슈들에 대한 법리적 판단을 다시 받기 위해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태평양 증권 인수 자금이 6공 비자금이 아닌 당시 계열사서 차출된 비자금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재판부에 다소 서운함을 표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항소심 재판부가)피고와 원고 측에 다른 잣대를 들이댄 것에 서운함이 있다"며 "30년 전 만들어진 (비자금의)증거를 내라고 하는 것은 입증에 애로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SK그룹 측은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이 그룹 비자금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태평양증권 인수는 1991년 12월인데, 약속 어음이 발행된 시점은 1992년 12월이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으로 쓰였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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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항소심 판결을 뒤엎기 위해 이번 주 중으로 상고장을 제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