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家 이혼소송 불똥 튄 SK그룹, 경영권 리스크에 정경유착 딱지까지

1심 뒤집은 고법 "노소영에 1.3조원 재산분할"…최태원 측 "납득할 수 없다"

디지털경제입력 :2024/05/30 17:38    수정: 2024/05/31 16:12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지 재계의 이목이 쏠린다. 다만, 아직은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이 흔들리는 수준의 지주사 지분이 노 관장 측으로 넘어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서울고법 가사2부는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이혼 소송에서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천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22년 12월 1심 재판부가 판결한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 665억원에서 대폭 늘어난 것이다.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2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두 사람의 합계 재산을 약 4조원으로 본 재판부는 이런 판단을 토대로 재산분할 비율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로 정했다.

두 사람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1988년 9월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2015년 최 회장이 동거인과 혼외자의 존재를 공개한 뒤 이혼을 요구해 이른바 세기의 소송이 시작됐다. 1심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로 현금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 고법 "최태원 회장, 일부일처제 존중 안 했다"…SK "상고로 바로잡겠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노 관장이 SK그룹의 가치 증가나 경영활동의 기여가 있다고 판단했다. 가사와 자녀 양육을 전담하면서 원고의 모친 사망 이후에 실질적으로 지위 승계하는 등 대체재, 보완재 역할을 했다고 본 것이다.

노 관장은 항소심에서 부친의 정경유착 논란까지 불사하며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을 사돈인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의 보호막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경영활동에 도움을 줬다고 봤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측 법률대리인인 김기정 변호사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소영 관장 측 법률대리인은 이날 재판부 판결에 "아주 훌륭한 판결"이라며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에 대한 헌법적 가치를 깊게 고민해 준 판결"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부는 “최 회장은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재단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공개 활동을 지속해 마치 배우자 유사 지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며 “상당 기간 부정행위를 계속하며 헌법이 존중하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은 소송 과정에서 부정행위를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반성·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사정이 혼인 파탄으로 인한 손해배상 산정에 고려돼야 하므로 1심의 위자료는 너무 적고 증액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최태원 회장 변호인단은 판결에 납득할 수 없다며 상고를 예고했다. 정반대의 억측과 오해로 인해 기업과 구성원, 주주들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당했다는 주장이다.

변호인단은 입장문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처음부터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듯 그간 편향적이고 독단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며 "노 관장 측의 일방적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하나하나 공개한 것은 심각한 사실인정의 법리 오류며, 비공개 가사재판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런 증거도 없이 편견과 예단에 기반해 기업의 역사와 미래를 흔드는 판결에 동의할 수가 없다"며 "특히, 6공 비자금 유입과 각종 유무형의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으며,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루어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 재산분할 규모만 1.4조원 육박…현금 마련 어떻게?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역시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인정했다. 이날 분할 판정을 받은 재산 규모는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으로만 따졌을 때 총 주식 가치의 70%에 달한다. 다만 재판부는 최 회장이 가진 주식 자체를 분할하는 것이 아닌, 노 관장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최 회장은 1분기말 기준 SK 주식을 17.73% 보유하고 있다. 만약 주식을 팔아 현금을 마련한다면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는 수준이다. 실제로 SK그룹은 과거 헤지펀드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당한 적이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에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2024.05.28.(사진=뉴시스)

재계에서는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SK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다른 계열사 주식을 파는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 회장이 보유 중인 SK실트론 지분이 대표적이다. 최 회장은 2017년 SK가 LG로부터 실트론을 인수할 당시 29.4% 지분 인수에 참여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대법원에서 비슷한 판결을 낸다는 전제하에) SK 담보대출이 있고, 경영권이 무너지기 때문에 손을 못댈 것"이라며 "담보 대출 상당 부분이 실트론 인수할 때 쓴 돈인데, 결국 실트론을 매각하거나 담보로 또 대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크게 두 가지 치명타가 있다"며 "하나는 SK그룹이 정권에 도움을 받아 성장한 그룹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했는데 법원 이를 인정해 버린 것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그룹의 경영권이 흔들리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 경영권 분쟁 조짐에 주가는 급등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 있고, 당장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판결이 나온 것만으로도 SK 주가는 요동치고 있다. 이날 SK 주가는 약세로 출발했지만 2심 선고가 나온 오후 2시 50분을 전후해 급등하더니 15만 8천100원에 마감했다. 전일 대비 9.26% 오른 금액이다.

하지만 증권가는 이러한 주가 움직임이 단기적일지 지속될 지 조금 더 관망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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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식 시장에서는 오너 지배력이 약해지는 가능성만 있어도 경영권 프리미엄이 올라간다"며 "노소영 관장이 경영권을 가질 수 있다는 분위기 아니라 최 회장이 지분을 팔게 되면 경영권 지배력이 약해지는 부분이 있기에 경영권 프리미엄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경영권 프리미엄 가치가 올라갈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됐지만 얼마만큼 임팩트가 지속되는 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분석하면서도 "실제로 최태원 회장이 지분을 다 팔고 관두지 않는 이상 경영권이 흔들리는 시나리오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