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살리려면 낙수효과가 아닌 직수효과 필요하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 "정부는 국민과 의사 갈라놓는 데 성공했지만 승리는 아닐 것"

헬스케어입력 :2024/03/04 05:00

“당장 필수의료 분야의 처우개선과 법적위험성을 줄여준다면 수개월 안에 수천명 이상의 전문의들이 본인의 전공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3일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 궐기대회’에서 발언을 통해 ”이번에 정부는 정부와의 대화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부질없는 것인지 명백하게 알려줬기에 우리 의사집단은 각성해 버렸다”며 “잘못된 정책과 제도 아래서 그래도 사명감을 갖고 일생을 의업에 바치기로 결정했었을 전공의들이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지 감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수련이라는 명목 하에 과도한 노동과 불합리한 제도를 눈감아왔던 선배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전공의 후배들에게 머리숙여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낙수효과가 아닌 직수효과, 즉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형민 회장은 “이 문제를 정부와 의료계가 싸울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모두 필수의료 살리기를 원하고 있기에 의견이 다르다면 좋은 것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라며 “필수의료 위기가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던 문제라면 원인이 지원과 개선으로 해결이 가능한데 의사가 부족해 생겼다는 것은 진단부터 틀린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려면 과밀화를 해결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면 되는데 지금껏 그걸 못한 것은 정부이다. 소아과 오픈런이 문제가 아니라 중증소아환자 인프라 붕괴가 문제인데 그것 또한 정부가 조장한 일이다”라며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지금껏 방관한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의료계는 필수의료를 지원하고 법적 위험성을 낮춰달라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엉뚱한 의대증원 카드를 들고 나왔다. 의견이 다르면 상의해서 더 좋은 방법을 선택하면 되는 일이지만 정부는 논의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라며 “이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일뿐 절대로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의료계를 파멸시키고 난 다음 차례 희생자는 국민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전공의들이 사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이미 정부가 준 빨간약을 먹고 의료계의 진실을 알아버렸다. 그들이 생각했던 의사로서의 삶이 부정당하고 가치가 훼손돼버린 지금 정부가 어떤 겁박으로 그들을 현장에 다시 데려다 놓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들의 희망과 의지는 사라져 버렸다”며 “지금껏 힘들지만 현장에 버텨왔던 이유는 장래의 희망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기대할 것이 없어졌기에 결국은 현장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전공의뿐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전임의, 봉직의, 개원의, 교수들의 사직 무리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회장은 “최소한 지금의 정부는 국민과 의사를 갈라놓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정부의 승리가 아닐 것이다. 이번 일로 무엇보다 소중한 환자-의사간의 믿음, 의사-정부간의 믿음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며 “이제는 더 이상 사명감으로 일하는 의사가 없어질 것이며 어떠한 의사단체도 정부와의 대화나 협의를 믿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편하고 질 좋은 의료를 받던 우리나라의 의료는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낙수효과가 아니라 직수효과가 필요하다. 당장 필수의료분야의 처우개선과 법적위험성을 줄여준다면 수개월 안에 수천명 이상의 전문의들이 본인의 전공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역설적이게도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경증환자의 응급실 이용이 줄며 응급의료체계가 개선되고 있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30년간 못 해왔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듯이 의료는 질의 문제이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우리는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금 현재도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응급실을 지키고 있는 것은 정부 정책에 동의한 것도 아니고 정부의 협박이 무서워서도 아니다. 우리가 응급환자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라며 “나는 지난 23년간 응급실에서 응급환자를 치료해 왔고 제일 잘하는 것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도 환자를 보는 것이다. 이 자리에 선 이유도 앞으로 20년간 더 응급실에서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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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어제 날짜로 응급실을 그만둔 한 전문의가 제게 문자를 보냈다. 지난 세월 응급실에서 밤새워가며 최선을 다해 일해왔지만 이젠 더 이상 환자나 보호자의 얼굴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며 “우리가 돈을 더 벌기를 원한 것도 아니고 편한 것을 바란 것도 아닌데 이기적인 의료카르텔로 몰아가는 정부와 악플러들이 너무나도 밉고 두려워져서 그만두게 됐다고, 그리고 밤새 울었다고 한다. 더 이상 필수의료 의사들을 욕보이고 조롱하지 말고, 그대로 가만히만 놔둬도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할 의사들을 욕하고 때리고 처벌해 필수의료 현장을 망가뜨리는 것은 정부라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주셔야 한다”고 호소했다.

3일 전국 의사 및 의사가족 4만여명이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등에 반대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한편 이날 궐기대회에는 주최측 추산 4만명의 의사 및 의사가족이 집결했다. 경찰 추산으로는 1만2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