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달은 행정전산망 사고와 관련해 정부가 1월말까지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와관련, 공군 항공소프트웨어지원소 연구소장과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산하 소프트웨어공학센터 전문위원 등을 지낸 이성남 전 소장이 10년이 넘은 고질 문제인 정부 공공 SW사업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지디넷코리아에 ▲SW 품질 관련 ▲SW대가 관련 ▲대기업 참여 제한 관련을 주제로 3회분 기고를 보내왔다. 이 전 소장은 오랜 기간 전투기 SW 개발 등 SW기술 전문성은 물론 방사청 M&S사업팀장, 항공기계약팀장, 획득기반과장을 지내 공공SW 발주와 수행에도 일가견이 있다. (편집자 주)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니 그 이전부터 매년 반복되는 정부 공공 SW사업 문제점은 정말 해결책이 없는 것일까?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잘 되고 있지 않다.
매년 반복되는 공공 SW 문제점은 무엇인가? 정부입장에서 보면 SW품질 문제, 업체입장에서 보면 대가(代價) 문제(사업대가, 추가 요구/변경 대가, 원격지개발 대가, 유지관리 대가), 대기업 참여제한 해제 문제 등이다.
이 문제 중 어디에 최우선을 두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까? 공공 SW사업 대부분이 국민대상 공공서비스 구축사업으로, 문제발생 시 국가 재난을 초래하기 때문에 SW품질 문제를 최우선 고려해야 한다.
올해도 공공 SW문제가 발생하자 어김없이 정부는 대기업 참여제한을 완화하겠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대기업이 개발한 SW는 품질이 우수하고,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내포돼 있다. 물론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문제발생 시 대처 능력이 뛰어날 수 있겠지만 문제예방 측면에서 보면 이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이 개발한 공공 SW는 문제가 없었는가? 구체적으로 품질문제 야기 업체와 사업명을 언급하기는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품질문제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가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되면 품질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필자가 공공 SW사업 문제점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품질문제의 직접적 원인은 개발기간이 짧고, 요구사항이 구체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착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으로 장기계속계약을 할 수 있게 했고, 요구사항 구체화를 위해 전문기관을 활용할 수 있게 했지만 시행령(규칙)에 구체화(의무 명시 등) 되지 않아 잘 시행되지 않고 있다.
SW품질 문제는 발주자가 요구사항을 개략적으로 작성해 제안요청서(RFP)를 공고한 다음 사업착수 후 구체화하겠다거나, 사업 기간 중 언제든 요구사항을 추가, 변경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한편 요구사항이 개략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발주자가 요구사항을 상세하게 안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못 만들기 때문이다. 발주자가 거대한 공공시스템의 요구사항을 상세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요구사항 상세화는 전문가 영역이다. 비용을 들여 만들어야 한다.
필자가 근무한 적이 있는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역시 2010년대 초반 품질 문제가 크게 대두된 적이 있다. 방사청은 사업관리자가 무기체계 요구사항을 상세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하고, 요구사항 상세화를 위한 별도의 용역사업을 추진해 수십,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상세 요구사항 자료(ORD : Operational Requirement document)를 RFP에 첨부해 공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렇게 명확한 요구사항에 의한 개발을 함으로써 개발기간 중 잦은 요구사항 변경에 따른 사업지연과 비용증가를 방지했고, 품질이 우수한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개발업체는 RFP에 상세히 명시된 요구사항을 보고 개발범위와 비용, 일정 등을 검토한 후 사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거의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
요구사항 상세화는 단순히 품질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요구사항 추가, 변경에 따른 대가 문제, 개발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 최근 국방부와 모 업체간 SW사업 분쟁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는데 역시 주 이슈는 추가, 변경에 관한 것이다. 사업착수 후 필요시 요구사항을 추가, 변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에 들어간 비용과 이에 따른 개발기간 연장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 문제다.
공공사업 발주자는 추가, 변경에 따른 책임문제와 국회를 통한 추가예산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추가, 변경이 기존 요구사항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업체가 요구사항 상세화 요구 시 사후 책임문제가 우려되거나, 전문적 지식이 부족할 땐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답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이로인해 사업이 지연되면 지체상금은 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억울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
SW품질을 높이려면 요구사항 구체화는 필수다. 또 하나는 법에 명시된 대로 SW인증 받은 업체를 우대(가점)해서 능력 있는 업체가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법에 명시됐을 뿐 잘 시행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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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방사청에서 근무했을때는 방위사업 제안서 평가시 ‘형상관리 및 품질관리 계획’(SW 프로세스 인증 등 4개 항목)에 2점을 배당해 SW 프로세스 인증(CMMI, SP, SPIECE) 받은 업체를 우대해 품질을 강화했다. 최근 방사청에서 발주한 7조원 사업의 1, 2 순위 차이가 0.059점인데, 이것을 고려하면 SW품질 강화를 위해 배당한 점수가 얼마나 큰 점수 인지 알 수 있다.
결론으로, 공공 SW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SW품질 제고를 위해 일정금액 이상 사업이나, 특별히 품질이 요구되는 사업은 반드시 별도사업을 통해 상세 요구사항을 만들어 RFP에 첨부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SW품질 인증업체를 우대(가점)할 수 있다는 것을 권고로 그치게 할 것이 아니라 시행령(규칙)에 의무 사항으로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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