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망을 뿌리부터 다시 살펴봐야 하는 이유

[이균성의 溫技] 누더기 시스템의 복원

데스크 칼럼입력 :2023/11/23 11:28    수정: 2023/11/24 06:02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업무는 정보시스템에 의존적이다. 시스템이 장애를 일으키면 대부분의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난리가 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정보시스템 운영 주체는 비난을 받는다. 이런 일은 끝없이 반복된다. 무장애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기술의 장애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정보시스템 운영 주체에 대한 비난은 그래서 그냥 화풀이에 불과할 수도 있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런 생각에 반대한다. 기술은 정확한 것이고 그래서 거의 완벽한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PC 운영체제인 윈도가 쉽사리 꼬이지 않는 게 대표적인 예다. 살짝 꼬인다 하더라도 금방 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정교한 데이터 지도’를 갖추는 것이다. 데이터 지도 설계 능력이 정보시스템의 안정성을 좌우한다.

행정전산망에서 발생한 오류로 중단된 민원시스템(이미지=정부24)

행정전산망이 먹통이 되기 한 달 전 우연찮게 문 교수를 만나 차를 한 잔 한 적이 있다. 그는 차 탁자보다 큰 종이 한 장을 펼쳐보였다. 여러 장의 종이를 이어붙인 것이다. 그것은 문 교수가 설계한 어떤 기업의 데이터 지도였다. 그 지도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은 없었지만 그런 지도가 없이는 데이터가 엉킬 수밖에 없겠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정부 시스템에 그런 지도가 없다는 게 그의 이야기였다.

그의 말이 예언이라도 된 듯 행정전산망이 먹통이 됐다. 정부는 그 원인을 네트워크 장비에서 찾았지만 문 교수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의심하는 듯하다. 네트워크 장비 문제라면 원인을 찾고 복구하는 시간이 훨씬 더 짧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복잡한 원인이 있을 수 있고 언제든 재발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전산망은 결국 오류를 일으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부에 데이터 지도가 없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한때 우리 전자정부 시스템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사실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그러나 ‘정교한’이란 수식어가 붙으면 달라질 수 있다. 데이터 지도는 있되, 정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난개발로 시스템이 통합적이지 못하고 누더기처럼 기워져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연결은 돼 있지만 통합적이 못하면 자주 꼬일 수밖에 없다고 할 수가 있다.

문 교수가 쓰는 ‘데이터’라는 말은 낱개의 정보와는 다른 말이다. 그는 데이터를 ‘한 개의 작업’으로 여기는 듯하다. 정부의 일은 수많은 작업이 통합적으로 연계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 작업은 수많은 정보(보통사람이 생각하는 데이터)가 흐르는 관(管)이다. 문 교수가 말하는 데이터 지도는 이 관들을 연결하는 설계도다. 그 설계가 정교해야 정보 처리가 막히거나 꼬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은 IT 기술만으로 충분치 않다. 업무 이해도도 높아야만 한다. 정확히는 업무의 흐름에 대한 정교한 이해가 먼저다. 기업 시스템보다 정부 시스템이 더 어려운 건 정부 부처 사이에 장벽이 있으면서도 연계돼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국가 CIO(최고정보기술책임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됐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정부 모든 업무를 누가 과연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대통령만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정부부처 하나하나의 작업을 다 따질 수는 없다. 그 하나하나의 작업을 따져 데이터 지도를 만들고 거기에 맞게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일이 국가 CIO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정부는 현재 52개 부처 약 1,400개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한다. 보통은 하나의 시스템도 알기 어렵지만 누군가는 그 1400개 시스템을 다 파악하고 들여다 볼 수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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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여개 시스템에 흐르는 정보를 파악하는 빅브라더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 1400여개 시스템의 연계성과 통합성이 제대로 돼 있는지 파악하고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알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순식간에 그런 인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때마다 바뀌는 정권에 상관없이 이 일을 전문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인재를 영입하고 키워야만 하는 것이다.

모든 시스템에 땜질은 가능하다. 멈췄던 시스템도 땜질로 살려낼 수는 있다. 하지만 시스템이 클수록 그 때마다 피해는 더 커진다. 정부 시스템은 모든 국민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웬만한 오류는 껐다 켜면 회복되는 윈도처럼 더 정교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1400개 시스템의 통합성이 강화돼야 한다. 지금이라도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렇잖으면 먹통이 돼도 원인조차 찾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