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의 투자 속도를 늦추고 있다. 초도 물량 양산을 위한 장비 발주는 마무리했으나, 곧바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추가 투자를 최근 내년 하반기로 미룬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양산 확대 시점이 미뤄진 만큼, 삼성전자는 기존보다 선단 공정의 생산능력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해당 논의가 현실화되면 테일러 공장의 첫 라인은 4나노미터(nm)보다 3나노에 집중될 전망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테일러시 신규 파운드리 공장에 대한 설비투자 방향을 변경했다.
테일러 공장은 고성능컴퓨팅(HPC), 인공지능(AI) 등 첨단 시스템반도체를 위한 생산기지다. 가장 먼저 건설되는 1단계(Phase 1) 라인은 주로 4나노를 양산할 예정이었다. 해당 라인의 총 생산능력은 300mm(12인치) 웨이퍼 투입 기준 월 2만5천장 가량으로 추산된다.
목표 양산 시점은 내년 말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부터 테일러 공장의 초도 물량 양산을 위한 장비를 발주하기 시작했다. 점진적으로 생산능력을 늘려나가기 위한 추가 투자도 계획 중이었다.
다만 실제 장비 도입 규모는 삼성전자가 당초 계획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가 발주한 4나노 공정용 장비 물량은 월 5천장 수준의 생산능력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본래였다면 어느 정도 추가 발주가 나왔어야 하지만, 삼성전자에서 내부 의사결정이 미뤄지면서 속도가 늦춰지고 있다"고 밝혔다.
연기된 장비 발주는 내년 3분기 즈음 이행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나아가 삼성전자는 해당 물량을 4나노가 아닌 3나노 공정용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가 논의됐던 추가 물량을 취소하는 대신 3나노 공정에 맞춰 다시 발주를 하는 방안을 협력사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며 "4나노로 초도 물량을 생산하지만, 본격적인 양산은 3나노로 진행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전략에는 시장 및 현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관측된다.
기존 삼성전자는 테일러 공장에 17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미국 내 건축비·인건비 등의 상승으로 부담이 심화됐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지난 3월 "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 건설 비용이 170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로 증가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한 현지의 환경 규제 승인 문제, 오랫동안 지속된 반도체 시장의 불황 등으로 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 투자 계획은 거듭 연기돼 왔다. 추가 장비의 도입이 빨라야 내년 3분기부터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테일러 공장의 실제 양산 확대는 사실상 2025년에 이뤄질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내부적으로 내년 경기 회복 가능성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어, 투자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지속해 나오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 전환을 추진하면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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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삼성전자는 내년 3나노 2세대를, 2025년에는 2나노 공정을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테일러가 본격 가동되는 시기에는 3나노 수율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고객사 수주 역시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3나노는 삼성전자의 최선단 파운드리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공정이기도 하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3나노에 세계 최초로 GAA(게이트-올-어라운드)를 적용한 바 있다. GAA는 반도체를 구성하는 트랜지스터에서 전류가 흐르는 채널 4개면을 모두 감싸는 기술로, 기존 대비 데이터 처리 속도 및 전력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