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자궁이식 성공…임신 준비까지

삼성서울병원, 재이식 무릅쓰고 첫 성공 시켜…환자, 거부반응 없이 정상 기능 유지

헬스케어입력 :2023/11/17 11:57    수정: 2023/11/17 15:51

국내 최초 자궁이식 수술이 성공했다.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는 현재 시험관 아기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은 ‘MRKH(Mayer-Rokitansky-Küster-Hauser)’ 증후군을 가진 35세 여성에게 지난 1월 뇌사자의 자궁을 이식했다. 환자는 10개월째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안정적으로 이식 상태를 유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환자는 월경 주기가 규칙적으로, 이식된 자궁이 정상 기능을 보이고 있다.

박재범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이러한 연구 내용을 이날 대한이식학회 추계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사진=삼성서울병원

MRKH 증후군은 선천적으로 자궁과 질이 없거나 발달하지 않는 질환을 말한다. 여성 5천 명당 1명꼴로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청소년기 생리가 시작하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많은데, 난소 기능은 정상적이어서 호르몬 등의 영향이 없고, 배란도 가능하다. 이론적으로 자궁을 이식받으면 임신과 출산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해당 환자는 결혼 이후 임신을 결심하고 2021년 삼성서울병원에 내원했다. 당시 병원은 2019년부터 준비한 다학제 자궁이식팀이 관련 임상연구를 시작한 지 1년가량 됐을 때였다. 환자의 적극적인 의지에 자궁이식팀도 속도를 냈다.

국내 첫 사례인 만큼 법적 자문과 보건복지부 검토가 진행됐다.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사도 마쳤다. 또 해외에서 발표된 논문과 사례를 조사하며 이론적 배경은 물론 실제 이식 수술, 이식장기의 생존전략, 임신과 출산까지 모든 과정을 준비하고 계획을 세웠다.

우리 의료보험체계에서 새로운 수술의 시도는 ‘임상연구’라는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다. 이로서는 이식 수술에 요구되는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후원자들의 기부가 이어졌다. 특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작진도 함께 기부에 나섰다. 극중 채송화 교수의 모델이자 제작 자문을 맡았었던 자궁이식팀의 오수영 산부인과 교수와의 인연 덕분이었다.

첫 시도 실패…6개월만에 두 번째 기회 찾아와

어렵사리 재원이 마련됐지만 최초의 자궁이식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작년 7월 첫 생체 기증자의 자궁이 환자에게 이식됐지만, 이식 자궁에서 동맥과 정맥의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2주 만에 제거를 해야 했다.

1월 뇌사 기증자가 나타나 두 번째 이식수술이 실시됐다. 자궁이식팀은 앞선 실패를 교훈 삼아 기증자 자궁과 연결된 혈관 하나까지 다치지 않도록 정교한 수술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은 박재범•이교원 이식외과 교수, 박성해 이식외과 임상강사, 오수영•이유영•이동윤•김성은•노준호 산부인과 교수, 임소영 성형외과 교수, 김찬교 영상의학과 교수, 김민제 영상의학과 임상강사, 김현수 병리과 교수, 고재훈 감염내과 교수, 정선우 변호사, 최주영 간호사 등으로 구성됐다. (사진=삼성서울병원)

환자는 이식 후 29일 만에 생애 처음으로 월경을 경험한 것. 이는 자궁이 환자 몸에 안착했다는 신호였다. 이후 환자는 규칙적인 생리주기를 유지 중이다. 또 이식 후 여러 번 시행됐던 조직검사에서도 거부반응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환자와 자궁이식팀은 임신이라는 다음 도전을 준비 중이다. 자궁이식팀의 이동윤·김성은 산부인과 교수는 미리 환자의 난소로부터 채취한 난자와 남편의 정자로 수정한 배아를 이식한 자궁에서 착상을 유도하고 있다. 현재 임신 이후 무사히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제반 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관련해 병원은 2020년 세계에서 세 번째,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면역관용유도 신장이식을 받은 환자의 임신과 출산에 성공하는 등 장기이식 환자의 출산 노하우를 갖고 있다.

병원은 향후 또 다른 환자의 자궁이식을 준비 중이다. MRKH 환자 등 자궁 요인에 의한 불임으로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환자들에게 자녀 출산의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것으로 병원은 기대했다.

박재범 이식외과 교수는 “자궁이식은 국내 첫 사례이다 보니 모든 과정을 환자와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는 심정으로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면서 “현재는 자궁이 안착돼 환자가 그토록 바라는 아기를 맞이할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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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영 산부인과 교수도 “환자와 의료진뿐 아니라 연구에 아낌없이 지원해준 후원자들까지 많은 분들이 도움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어려운 선택을 한 환자와 이를 응원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자궁이식은 2000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시도됐다. 당시 환자는 이식 100일 만에 거부반응으로 이식한 자궁을 떼어내 안착에는 실패했다. 2014년 스웨덴에서 자궁이식과 더불어 출산까지 성공했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자궁이식 사례는 109건 가량이다. 그렇지만 재이식시도는 삼성서울병원의 이번 사례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