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기술에 힘입어 보건의료 영역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 세계는 디지털 헬스케어(Digital Healthcare)를 통한 신종 감염병, 초고령화 시대, 지역 간 건강격차 해소 등 우리 앞에 놓인 적대적 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를 디지털 헬스케어 원년으로, 지디넷코리아는 ‘미래의료’ 연재를 통해 국내·외 디지털 헬스케어의 산업 동향과 가능성 및 역작용을 분석함으로써 가장 정확한 전망을 제시할 것이다. [편집자 주]
지난 2020년 가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적인 위기가 고조돼 있었다. 김윤 서울대의대 교수는 공식선상에서 당시 상용화되지 않은 상태의 코로나19 백신을 중저소득 국가에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김 교수는 선진국 중심의 백신 싹쓸이가 현실화될 수 있다며 우려했고, 이는 정말로 현실이 됐다.
팬데믹 상황에서 분쟁 지역이나 저개발 국가는 더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원래도 열악했던 보건의료 여건은 더 악화됐다. 국제시민단체 등은 인류애를 발휘해 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구호를 외쳤지만, 자국의 사정이 급한 국제사회에서 그런 구호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라거나 문명의 사악함 등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이나 국가가 본인의 안위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것은 본능에 따른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우리는 자국 이익 우선이라고 부른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모두가 그랬다.
코로나19로 인한 엄청난 사망자와 후유증은 여러 숙제를 남겼다. 무엇보다 국제사회는 백신 싹쓸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며, 이를 막을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중저소득 국가의 공중보건 증진과 감염병 예방. 기업의 의약품 및 진단기기 개발, 해외 판로 개척 및 수출. 일견 NGO와 산업계처럼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Research Investment for Global Health Technology Foundation, 이하 라이트재단)은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미션을 묶은 곳이다. 그들이 하려는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지속가능함’일 터다. 이 관점에서 라이트재단은 중저소득 국가와 제약바이오기업은 서로의 이해를 만족하는 방향으로 지원 사업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이훈상 라이트재단 전략기획이사는 “공공의 혜택과 기업 이익 사이의 접점”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경제적 니즈와 공공성 사이
라이트재단은 지난 2018년 보건복지부,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국내 바이오 기업 등 3자간 협력으로 설립된 첫 민관협력 비영리 재단이다. 개략적인 기금 출현 비중은 복지부가 50%, 빌&멜린다 재단과 국내 기업들이 각각 25% 가량이다.
재단은 중저소득 국가들에서 감염병이 초래하는 보건의료의 부담을 줄이거나 실제 활용 가능한 효과적 결과를 도출하는 프로젝트에 우선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관련해 올해 신규 연구비 지원 대상으로 7개 과제를 선정해 약 113억 원을 지원했다.
또 최근 한 과제당 최대 40억 원을 지원하는 감염성 질환 공모를 시작했다. 국내 최대 규모다. 특히 신설된 인력양성지원비는 중저소득국의 백신 및 바이오 제조 분야 종사자를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는 복지부가 세계보건기구(WHO)와 함께 중저소득국의 백신 및 생물학적 제재 제조 인력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GTH-B)’의 이니셔티브의 일환이다.
이런 방식으로 재단은 총 50개의 연구 과제를 선정해 지원했으며, 현재까지 지원한 총 금액은 약 630억 원 가량이다.
이훈상 전략기획이사는 “중저소득 국가의 감염병 대응 및 예방에 필요한 백신·치료제·진단기기·디지털헬스케어 등의 혁신 의료 분야에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혁신은 기업가 정신에서 나오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중저소득 국가에서 감염병 예방을 위해 필요한 백신·치료제·진단기기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특정 국가나 시민단체가 아니다. 바로 기업이다. 그런데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이 불투명하고, 현지 사정에 밝지 않아 쉽사리 진출을 결정하기 어렵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성도 고민된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만 하고 있는 사이에 유엔조달시장, 글로벌펀드,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유니세프 등은 국제적으로 확보된 기금을 대륙 차원에서 집행해오고 있다. 의료 제품 수요가 많은 중저소득 국가는 우리 기업 입장에서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적정 가격, 상온 보관, 현지 보건의료 인력이 없어도 정확한 검사가 가능한 장비 등을 현지 시장을 두드리면 우리기업의 시장 진출과 현지 공중보건에의 기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된다.
라이트재단은 우리 기업에 투자해 기업이 공공 조달 시장에 잘 도달하도록 예산 지원이나 현지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아프리카 보건부나 질병통제센터(CDC), 미국 및 유럽 대학, 국제 기금 기관과도 연결해준다.
이훈상 이사는 “유엔 조달시장에 들어가면 아프리카 대륙이 열린다. 우린 적정 가격과 품질을 통해 한국의 제품이 아프리카 등 중저소득 시장에 조달되도록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보건 연구개발에 있어 우리보다 일찍 관련 분야를 선점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니 중저소득 시장에 진출하려고 해도 현지의 필요와 환경이 무엇인지 파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게 돼야 현지 맞춤형 R&D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잘못된 판단은 기업의 존폐를 결정 짓기도 한다. 이훈상 이사는 재단이 이러한 ‘가이드’로써 역할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개발 지원뿐만 아니라 현지의 니즈와 유형이 무엇인지 기민하게 파악해서 우리 기업에 전달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면, 현지 국가와 밀접하게 협력할 때 개발이 한결 용이하지 않겠나.
제일약품의 항생제 연구개발도 이런 과정을 거쳐 진행 중이다.
아울러 재단은 디지털헬스케어 분야에 대한 현지 데이터 확보가 한창이다. 다만, 디지털헬스 지원 사업은 제품개발이 아닌 근거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대한 근거를 많이 확보하자는 목표가 세워진 배경은 디지털헬스케어 서비스가 현지 인프라와 의료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즉, 현지 환경을 수혜자 입장에서 이해하려면 근거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
관련해 디지털헬스에 대한 올해 근거생성연구비 지원사업 수행 기관 및 주제는 다음과 같다. ▲컴펠링 웍스 (우간다) ‘디지털 헬스 기술이 모성 및 아동 건강 서비스 전달에 미치는 영향 분석’ ▲이바단 대학교 (나이지리아) ‘지역 감염병 감시를 위한 디지털 도구의 적용 가능성 평가’ ▲루크 인터내셔널 (말라위) ‘코로나19 디지털 공중보건 프로그램 평가’ ▲국립보건연구원 ‘풍토병 및 유행병의 실험실 진단을 위한 디지털 헬스 솔루션의 평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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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모잠비크 연구에는 레쉬 자니(lesh Jani) 보건부 차관이 연구책임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 이사는 “디지털헬스케어가 현지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확실한 보건 증진 효과가 가능하기 위한 연구는 더 진행돼야 한다”며 “아직 유엔조달시장에 디지털헬스 사례가 없는 만큼, 장차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분야”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