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리커창 전 中 총리 누구? "한때 시진핑의 라이벌"

생활입력 :2023/10/27 13:11

온라인이슈팀

27일 별세한 리커창 전 중국 총리는 중화인민공화국 제7대 국무원 총리를 지냈던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였다. 1955년생이니 향년 68세다.

그는 한때 시진핑 현 주석과 후계 경쟁을 벌일 정도로 시 주석의 강력한 적수였으나 후계 경쟁에서 탈락, 국무원 총리에 머물러야 했다.

27일 사망한 리커창 전 중국 총리의 생전 모습.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중국 전 총리의 모습.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 주석 전인대에 참석한 모습.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백발의 주룽지 전 총리 © AFP=뉴스1 © News1 박형기 기자
류허 전 중국 경제 담당 부총리. 2020.05.27/뉴스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리커창 전 중국 총리가 지난 3월 전인대에서 업무보고를 마친 뒤 고별인사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총리 재임 시에도 ‘유령 총리’라고 불렸을 정도로 시 주석의 강력한 견제를 받았다.

◇ 55년 안후이성에서 출생, 76년 공산당 입당 : 그는 1955년 7월 안후이성 허페이시에서 태어났다. 1976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77년 학번으로 베이징 대학 법합과에 입학했으며, 재학중 베이징 대학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이하 공청단) 서기를 맡았다.

리커창은 이미 대학 시절부터 당 고위 간부들이 참여하는 공청단 행사를 주관하는 유명 인사로, 공청단파의 선두 주자였다.

이어 83년에는 공청단 서기국에 들어갔고, 92년에는 공청단 제1서기에 등극했다. 만 37세에 장관급 인사가 된 것이다. 일찍부터 후진타오 전 주석을 뒤이어 공청단 2인자 자리를 확고히 했다.

◇ 후진타오에 이어 공청단 2인자 : 그가 이토록 고속 승진할 수 있었던 것은 공청단 선배로, 덩샤오핑에 의해 차기 지도자로 낙점받은 후진타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98년 1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에 입성했고, 1999년 허난성 성장에 임명됐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당시로는 최연소 성장이었다.

이후 허난성 공산당 서기, 랴오닝성 공산당 서기 등을 거친 뒤 2007년 10월 공산당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2008년 경제 담당 부총리,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 한때 시진핑의 강력한 라이벌 : 원래 같은 공청단 출신인 후진타오의 후임으로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이 될 수 있었지만 공청단에 권력이 집중될 것을 우려한 상하이방의 격렬한 반대에 밀려 결국 태자당의 시진핑이 국가주석이 되고, 리커창은 총리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리커창의 공산당 총서기 등극만큼은 막으려는 상하이방의 적극적인 비토와 모두가 무난하다고 여겼던 시진핑을 중재안으로 제시한 중국 공산당의 재사 쩡칭훙의 기지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 시진핑 견제로 '유령 총리' : 총리 재직 시절에도 국가주석 시진핑의 권력 확대로, 전임 주룽지나 원자바오 총리에 비해서는 존재감이 현격하게 떨어졌다. 

원래 중국은 국가주석이 정치-외교, 총리가 경제를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한다. 실제 리커창 전 총리는 베이징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경제 전문가였다. 

그러나 시 주석이 권력을 독점하는 바람에 경제도 시 주석의 충복인 류허 전 경제 담당 부총리가 주도해 ‘유령 총리’라고 불렸다.

특히 그는 자유 시장 경제를 선호한 데 비해 시 주석은 당이 통제하는 경제를 강조해 갈등이 축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바지 총리 또는 유령 총리라고 불렸다. 명색이 국무원 총리가 수해 피해 현장에 방문했음에도 중국의 관영 매체에서 이를 보도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결국 올해 3월 전인대에서 고별인사를 함으로써 총리 직에서 공식 퇴임했다.

그가 퇴임 당시 고별인사를 하는 영상이 당국의 검열을 받아 삭제되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다. 시진핑 일인독재 아래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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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퇴임한 지 7개월 만에 영면에 든 것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권력이 약했던 '비운의 총리'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