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정월대보름 풍년 기원 불놓기 축제로 시작한 제주들불축제가 폐지될 뻔한 위기에 처했다가 내년부터 새로운 방식의 축제로 재탄생할 전망이다. 제주시가 ‘숙의형 원탁회의’ 제도를 통해 지난 3개월간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마련했다.
필자는 여러 매체의 기사를 통해 제주들불축제 존폐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개인적으로 어쩌면 폐지될 수도 있겠다는 안타까움과 그간 쌓아온 제주들불축제의 관광경제 영향력이 머릿속에 교차했다.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유심히 지켜봤다. 다행히도 최종숙의결과는 희망의 불씨가 살아 있었다.
제주들불축제 숙의형 원탁회의 운영위원회는 9월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원탁회의는 도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숙의민주주의의 장”이었다면서 “정책 당국이 본 제도의 정착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라며, 제주들불축제 도민 숙의형 원탁회의 결과를 정책에 적극 반영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새로운 제주들불축제를 위한 시민사회와의 소통
발단은 ‘불’이 근간인 제주들불축제의 방식이 생태·환경에 문제를 초래한다는 시민사회의 우려가 누적돼 왔기 때문이었다. 이에 강병삼 제주시장은 위원회를 구성, 6월 22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5차례의 위원회 회의와 도민 숙의형 원탁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제주들불축제가 제주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지키며 ‘생태·환경·도민참여’의 가치를 중심으로 근본적 변화를 추구할 것이 권고됐다. 세부 내용을 보면, 첫째는 “기후위기 시대, 도민과 관광객의 탄소배출, 산불, 생명체 훼손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대안을 조속히 마련할 것”이다. 둘째는 “시대적 전환에 둔감할 수밖에 없었던 ‘관 주도 추진’, ‘보여주기식 축제 기획’에 대한 획기적 변화”를 주문했다.
위원회는 “오름불놓기가 메인 콘텐츠인 제주들불축제가 앞으로 생태적 가치를 중심으로 도민참여에 기반을 둔 제주시민이 함께하는 축제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제주들불축제는 그 기획과 운영에 있어서 “생태적 가치에 부합하는 전환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고, 축제 기획과 운영에 실질적 주민참여 방안 제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도민 인식도 조사(8.31.~9.5.) 결과, 들불축제 존폐에 대해서는 유지 의견 56.7%, 폐지 의견 31.6%, 유보 의견 11.7%로 집계됐다. 이를 바탕으로 9월 19일 원탁회의 토론을 거쳐 최종적 권고안이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그 방향성만 있지 구체적 대안은 제시되지 못한 실정이다.
필자는 제주들불축제를 다양한 목적으로 네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다. 첫 방문은 2012년 제15회로, 개인적 여행이었다. 이후 2018년 제21회에 관광을 겸한 견학으로 다시 찾았다. 2019년 제22회는 ‘제주들불축제 발전전략 포럼’의 총괄기획을 맡게 돼 업무로 참여하게 됐다.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극심했던 2021년 제23회에는 비대면으로 전환된 온라인 축제의 현장 취재차 방문했다. 경기도민이지만 나름 2012년부터 10여 년간 제주들불축제의 변화상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본 셈이다.
제1회 제주들불축제가 개최된 지 벌써 26년이 지났다. 방애불(들불)은 제주 선인들이 거친 환경을 극복하며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해 자연과 호흡을 같이 해 온 역사의 산물이다. 새봄이 찾아올 무렵 소와 말의 방목지에 불을 놓아 진드기 등 해충을 없애 가축에게 먹이기 좋은 풀을 얻었다. 불에 탄 재는 비옥한 땅을 만들어 농사를 일구는 등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이어왔다.
제주들불축제 존폐와 대안을 마련하고자 했던 숙의형 원탁회의는 지역의 주인인 주민들의 공론조사 과정을 통해 의견을 반영했다.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통한 합리적 정책 결정의 모델이 됐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제주들불축제 3.0 (1.0 목축문화 계승, 2.0 오름 불꽃쇼)
이제 제주시는 탄소중립을 실천하면서 자연과 공존하는 친환경의 새로운 축제 모델로 지속 가능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불놓기를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생태와 환경을 지키는 축제로 개최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제주 지역경제에 파급효과가 큰 국내 관광객과 외래 관광객에게 무슨 매력요소를 개발해 방문을 유도할 것인지 시급한 상황이다. 액션플랜이다.
필자는 ‘첨단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연출’을 권장한다. 미디어아트형 페스티벌이다. 시대적 흐름이다. 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불타는 장면을 3D 영상 착시효과, 입체음향과 아름다운 빛(야경)으로 관람객에게 몰입감과 압도감을 선사하는 방안이다. 그 장관은 오직 제주 새별오름에서만 가능한 연출이다. XR(확장현실)이면서 MR(혼합현실)이다.
과거,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던 ‘오름불놓기’가 화약을 이용한 불꽃쇼가 아니라 이제는 미디어파사드 기반의 초대형 미디어아트쇼로 변모하는 것이다. 화산 분출쇼의 아나모픽 프로젝션맵핑을 비롯해 시민들의 횃불행진, 달집태우기도 모두 미디어아트 기법으로 진행한다. 미디어횃불, 미디어달집으로. 참여자에게는 새로운 방식의 전통문화 체험이고 예술적 경험이다. 새별오름에 투사된 실시간 소원기원문은 관객 참여형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된다. 새별오름 자체가 관광객과 소통하는 매체, 전 세계인과 연결되는 온라인 플랫폼이 되리라 본다.
스크린이 된 새별오름은 단순히 영상만 보이는 게 아니라 대규모 출연진이 제주의 스토리를 융합 군무로 펼치는 라이브 미디어퍼포먼스와 불꽃을 대체한 군집 드론라이트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렇게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제주만의 웅장한 실경(實景) 미디어 페스타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제주들불축제는 화산섬 제주 생성의 근원인 불에서 유래한다. 불은 한라산을 낳고 368개의 오름을 길러냈으며 탐라 천년의 역사와 제주 사람들의 삶이 돼 왔다. 제주들불축제의 명칭처럼 불이 축제의 정체성이다. 이제는 꼭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디지털 기법을 적용한 실감형 콘텐츠로 풀어내면 된다. 관광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길 디지털들불로. 미디어작품이 된 불빛으로 축제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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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불을 놓지 않더라도 그것을 디지털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을 대한민국은 보유하고 있다.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력을 지닌 아티스트까지. IT 강국 코리아는 세계적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를 배출한 나라가 아니던가. 내년 개최가 새롭게 재탄생하는 제주들불축제 대혁신의 전환점이다. 호주 ‘비비드 시드니’, 프랑스 ‘리옹’ 등 세계적 빛축제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저들의 성공 요인은 기술로 끝나지 않고 기억에 남는, 다시 보고 싶은 예술작품으로 승화했기 때문이다.
진화를 위한 작금의 제주들불축제 혜안은 ‘디지털’에 있다. 전 세계 한류 팬이 관광객이 돼 경험하고 싶은 페스티벌로 도약하길 응원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