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컴퓨터는 미세한 에너지 차이를 정확히 측정해 입자를 제어하는 것이 핵심 기술입니다. 바로 표준연이 강점을 지닌 분야입니다."
이용호 한국표준연구원(KRISS) 양자컴퓨팅시스템연구단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고전 컴퓨터 CPU가 제조의 문제라면, 양자 컴퓨터는 측정이 제조 못지 않게 중요하다"라며 "표준연은 미세한 신호의 측정과 제어를 위한 양자인프라를 잘 갖췄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2019년 최초로 양자우위를 달성한 구글의 양자컴퓨터 '시커모어' 연구를 주도하는 존 마르티니스 구글 양자컴퓨터 연구책임자 겸 캘리포니아주립 산타바바라대학 교수도 미국의 표준연에 해당하는 국립표준기술연구원(NIST)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 50 큐비트급 양자 컴퓨터 개발 주관
표준연이 우리나라 50큐비트급 양자 컴퓨터 자체 개발 작업을 주도하는 이유다. 표준연은 정부가 지난해 6월 개발에 착수한 50큐비트급 초전도 방식 양자컴퓨터 구축 프로젝트의 주관 기관이다. 2026년까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50큐비트급 양자 컴퓨터를 개발한다는 목표다. 정부는 2026년까지 양자컴퓨팅 연구 인프라 구축에 490억원을 투입한다.
지난 3월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양자 국가기술전략센터로 공식 지정되어, 양자과학기술 전 분야에 걸쳐 양자과학기술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역할도 맡았다.
50큐비트 양자 컴퓨터 개발은 도전적 목표다. 큐비트 수가 늘어나면 계산 속도도 빨라진다. 이론적으로는 20큐비트 양자 컴퓨터에 비해 2의 30제곱 배 빨라진다.
하지만 이는 큐비트가 완벽한 상태임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는 불량 큐비트나 죽은 큐비트가 나올 수밖에 없다. 큐비트 숫자를 늘이면서 신뢰도도 높여야 한다. 큐비트는 외부 환경 변화에 극히 민감한데, 늘어난 큐비트를 오류를 최소화하며 조작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가 생긴다. 이 단장은 "외부 잡음이나 열 교란, 측정·제어의 불확실성 등에 따른 오류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라며 "이를 위해 소자 개선, 측정·제어 개선, 오류 보정과 완화 등의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대규모 양자 컴퓨팅 시스템 구축 첫걸음
양자 컴퓨터 개발은 개별 요소 기술뿐 아니라 이들을 모은 전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이다. 이 단장은 "50큐비트 양자 컴퓨터 개발을 위해선 그에 걸맞는 ▲소자 개발 ▲큐비트를 3차원으로 쌓는 기술 ▲많은 큐비트를 동시에 측정·제어하는 기술 ▲신호를 증폭하는 양자 증폭기 개발 ▲열 부하 저감을 위한 냉각 기술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라며 "이런 과제를 해결할 종합적 기술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표준연은 지금 20 큐비트급 양자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50큐비트급 양자 컴퓨터 개발이 더 큰 규모의 양자 컴퓨터로 나아가기 위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본다. 이 단장은 "일단 50 큐비트급 양자 컴퓨터를 개발하면 대형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라며 "이후 100 큐비트급 양자 컴퓨터 개발은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를 위해선 안정된 균일도를 확보하고, 웨이퍼 크기를 키우며 장비를 개발하는데 투자도 필요하다.
현재 표준연 연구동 지하에선 50 큐비트급 양자 컴퓨터 구축 작업이 한창이다. 제어 및 계측 장비와 냉각 시설들이 연결된 시스템 여러 대를 놓고 연구 중이었다. 또 성균관대와 UNIST, KISTI 등 협력기관들도 큐비트 칩 제작과 큐비트 3차원 집적,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작업을 맡아 하고 있다. 이 단장은 "프로젝트 완료 목표 시점까지 시간 여유가 별로 없는만큼 큐비트 칩과 측정·제어, 소프트웨어 등 핵심 분야에서 참여 기관 간 팀 플레이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상업적 관점에서 보면, 양자 컴퓨터를 해외 수입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라며 "하지만 양자 기술은 국방과 보안, 안보 등에 영향을 미칠 전략 기술이기에 선도국과 수준 차이가 나고 속도가 느리더라도 자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물자의 교역을 통제하는 바세나르 체제가 작동하는 가운데, 양자 컴퓨터나 이를 만들기 위한 장비부품 등도 수입이 불가능해지거나 수입하더라도 제한된 용도로만 사용해야 하는 등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연구 최종 목적은 활용"
그는 "미국은 특유의 생태계가 있어 민간 기업 위주로 양자 기술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유럽 등 다른 지역은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라며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3위 그룹 정도지만, 5년 뒤에는 2위 그룹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인력 양성도 필수이다. 이 단장은 "양자우위에 대한 구글 논문에 이름을 올린 저자만 80명이 넘는다"라며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조기축구 선수를 데리고 월드컵 16강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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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장은 표준연에서 주로 초정밀 양자 센서 등을 연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 의료기기 기업을 대상으로 기술료 10억원 이상 규모의 기술이전을 4건이나 성사시켰다. 뇌나 심장의 미세한 신호를 잡는 센서 기술을 실제 의료 기기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요소 기술을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경험을 쌓았다.
그는 "연구의 최종 목적은 활용"이라며 "연구자도 자신의 전문 분야만 파고드는 것을 넘어 기관의 설립 목적 등에 따라 종합적 안목으로 가치 있는 활용 분야를 만들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영향력 있는 학술지에 대한 논문 투고 외에도 기술 이전이나 특허 등의 가치를 인정하는 등 좋은 연구의 정의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