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오는 29일 취임 5주년을 맞는다. 2018년 회장 취임 이후 미래 사업 재편에 나선 그는 인공지능(AI), 배터리, 전장 등 미래 신성장 동력을 키우며 그룹의 주요 사업 포트폴리오의 변화와 새로운 도전을 본격화했다.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입사해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아온 그는 차장, 부장, 상무 등으로 고속 승진한 후 2018년 LG그룹 회장이 됐다. 고 구본무 선대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비교적 젊은 나이인 갓 마흔에 총수직에 오른 그가 가장 먼저 내세운 ‘고객 가치’였다.
구 회장은 지난 4년간 고객가치 경영을 최우선으로 강조해 왔다. 취임 후 첫 신년사에서 LG가 나아갈 방향으로 ‘고객’을 지목한 후 매년 ‘고객가치 경영’을 외쳐왔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구성원들을 ‘고객가치 크리에이터로 부르며 구성원 모두가 자신만의 고객가치를 찾아 실천해 나가자고 당부한 바 있다.
구 회장은 지난달 31일 열린 사장단협의회에서도 “예상보다 경기 회복이 지연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만 일희일비하지 말고 고객을 향한 변화를 만들어내면서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LG 관계자는 "구 대표가 5년 동안 지속적으로 고객가치 경영철학을 전파하자 구성원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구성원들은 사내 시스템의 개인 프로필이나, 이메일 서명에 개별적으로 정의한 나의 고객과 나만의 고객가치를 적고, 다른 구성원들이 내가 생각하는 고객이 누구인지, 내가 만드는 고객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달라진 조직 문화…세대교체 속도
구 회장 취임 후 조직문화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후 LG의 최고경영진 회의다. 임원들이 모여 보고를 하고 경영 메시지를 전달받는 과거 방식에서 탈피해, 회의 때마다 상황에 맞는 주제를 정하고 토론 중심의 회의를 진행한다. 또 필요에 따라서는 외부의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한다.
400명 이상의 임원이 분기마다 모였던 임원 세미나도 없앴다. 회의의 성격에 따라 50명 미만의 인원이 참가하고 필요하면 온라인 등을 활용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직접 의견을 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구 대표는 취임 후 젊은 인재들을 과감하게 발탁해 요직에 전진 배치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4대 그룹 상장사 최초 여성 CEO를 배출하기도 했다. 114명의 신임 상무중에서 1970년 이후 출생이 92%를 차지하는 등 젊은 총수에 발맞춰 임원진도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이 밖에도 LG그룹은 나이, 성별, 출신과 무관하게 글로벌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적극 영입 중이다. 그 결과 최근 5년간 합류한 임원급 외부 인재만 100여 명에 달한다.
■ 스마트폰 내려놓고 전장·배터리·AI 집중...매출도 시총도 늘었다
재계에 따르면 구 회장은 취임 후에 ‘회장’이라는 직위가 아닌 ‘대표’라는 직책으로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지주회사 대표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그는 계열사 현장 방문 때마다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제가 어떤 도움을 드리면 되는지 가감 없이 말씀해달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총수로서의 결단이 필요할 때는 과감해진다. 취임 후 모바일 사업 종료, LX 계열분리, LG에너지솔루션 기업공개(IPO), AI연구원 설립 등과 같은 굵직한 의사결정을 주도했다. 구 회장 취임 후 LG는 비핵심·부진 사업을 매각 또는 축소하고 OLED, 배터리, 자동차 전장 등 미래성장동력을 더욱 강화했다.
포트폴리오 고도화는 나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코로나19, 공급망 이슈,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도 LG의 실적은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LG 주요 계열사(7개 상장사)의 매출은 2019년 138조원에서 지난해 190조원으로 37.7% 늘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조6천억원에서 8조2천억원으로 77.4% 늘었다.
특히 배터리와 전장 사업의 성과가 두드러진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매출 25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기록하며 연간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올해 역시 연매출 25% 이상 확대를 목표로 순항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분야 수주 잔고는 지난해 말 기준 385조원에 달한다.
LG전자의 전장 부품 사업을 담당하는 VS사업부문은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연내 수주잔고가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LG전자의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도 100조원·10조원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모든 CEO들의 숙제인 '주가부양'에도 선방했다는 평가다. 2018년 6월 29일 기준 88조1천억원(우선주·LX그룹주 제외)에서 지난 12일 기준 257조5천억원으로 약 3배 늘었다.
■ 저평가 지주사 주가 끌어올릴까...M&A 기대감↑
2022년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 이후 LG그룹 시가 총액은 크게 올랐다. 하지만 지주사 LG만 놓고 봤을 때 여전히 저평가됐다는 목소리가 많다. 최근 영국 투자회사가 3대 주주로 이름을 올릴 때 9만3천원대로 주가가 급등했지만 얼마 지나서 다시 8만원대로 내려갔다. 26일 기준 주가 역시 8만원 후반대다.
AI 사업부 성장 가능성 등 주가 상승 모멘텀이 있음에도 주가가 오르지 않는 배경으로 금융투자업계는 'M&A(인수합병)'를 지목하고 있다. 핵심사업 경쟁력 강화와 주가부양을 위해 M&A 추진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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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기준 LG가 보유한 순현금은 1조6천억원이다. 지난 3월 자동차 전장부품, ABC(인공지능·바이오·클린테크)등 미래 분야에 향후 5년간 54조원 투자하겠다는 발표한 만큼 M&A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LG 관계자는 “이번 투자는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확고히 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선제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