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兆 혈세로 AI 반도체 육성하는데 TSMC 쓴다고?

정부 AI 반도체 육성책 놓고 업계 "삼성팹 사용해야" vs "기업 선택권" 엇갈려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3/06/22 10:25    수정: 2023/06/22 10:43

정부가 AI(인공지능) 반도체 스타트업에 국책 과제를 주고 기술 개발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놓고 업계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가의 세금이 사용되는 만큼 AI 반도체 기업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등 자국 기업의 기술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기업이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개발한 칩에 가장 최적화된 팹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AI 반도체 강국 도약 목표...R&D에 5년간 1조200억원 투입 

정부는 지난 2020년 10월 AI 반도체 강국 도약 목표를 선언하고 '인공지능 반도체 산업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해당 정책은 AI 반도체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팹리스 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한다는 목표다. 이에 따라 AI 반도체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차세대 지능형반도체 개발사업은 2020년부터 2029년까지 총 1조96억원이 투입되며, 여러 국책 과제가 마련돼 기업의 AI 반도체 기술 개발을 돕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6월 세부적인 '인공지능 반도체 산업 성장 지원대책'을 발표하며 지원금을 늘렸다. AI 반도체 첨단기술 연구개발(R&D)에 향후 5년간 1조200억원을 투입하고 미국 등 선도국과 공동연구를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과기부는 "2020년부터 AI 반도체 기술개발을 위한 대규모 재원을 확보하고 투자를 시작한 결과 국산 AI 반도체가 이제 출시되어 상용화 준비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으로는 퓨리오사AI, 리벨리온, 딥엑스, 사피온, 모빌린트 등이 대표적이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도 AI 반도체 연구에 활발하다. 이들 기업 및 기관(대학)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과제와 컨소시엄 구축을 통해 개발비를 지원받고 있으며 각각 삼성전자, TSMC 파운드리를 통해 칩을 양산한다.

"자국 기업에 사용하고 생태계 키워야" VS "성능 최적화가 우선"

일부 업계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은 AI 반도체 몇몇 기업이 자국이 아닌 대만의 TSMC 파운드리를 사용하는 것에 쓴 소리를 낸다.

반도체 업계 A관계자는 "정부의 AI 반도체 육성 사업은 크게 보면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할텐데, 정부로부터 개발비를 지원받아서 TSMC 팹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라며 "기업의 순수 자금으로 타국의 팹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정부 지원금은 국민들의 세금이라는 점에서 따져볼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생산라인(사진=삼성전자)

반도체 업계 B관계자는 "국내 AI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전체를 성장시켜야 한다"라며 "파운드리와 디자인하우스를 키우고, 거기에 걸맞은 사이즈의 팹리스 기업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업체 입장에서는 큰 돈을 투자해 칩을 만드는 것인데, 기술적으로 삼성전자의 공정이 맞지 않으면 다른 팹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혈세를 사용한다면 적어도 삼성 팹을 사용하고, 삼성도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선순환이 일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칩 성능 결과에 따라 AI 반도체 기업의 생존이 달린 문제인만큼 해당 칩이 최적화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현재 삼성전자의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서비스와 설계자산(IP)이 TSMC보다 다양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MPW는 한 장의 웨이퍼에 다양한 종류의 반도체를 만드는 서비스로, 팹리스 기업이 양산하기 전에 시제품을 생산하고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도체 업계 C관계자는 "AI 반도체는 첨단 공정과 IP가 요구되는 분야로 개발해서 양산하기까지 수천억 원이 투입된다"라며 "스타트업은 첫 번째 칩이 성공해야 계속 사업을 이어 나갈 수 있고,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에 칩 성능 최적화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칩 양산은 기업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업계 D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는 MPW 캐파가 부족해 일정을 잡을 수 없다"라며 "칩 개발은 타임스케줄에 맞춰서 해야 하는데 삼성 캐파가 없고 일정이 맞지 않으면 팹리스는 TSMC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팹리스 업계의 현실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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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 A사는 1세대 칩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생산했지만, 현재 개발 중인 2세대 칩은 TSMC 파운드리를 사용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우리 사업단은 삼성 파운드리, DSP, 팹리스를 연결해주면서 삼성전자 MPW 스케줄을 공유하는 등 국내 팹리스 기업에 가급적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사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삼성전자가 캐파가 부족하고, 팹리스 기업이 개발 스케줄 때문에 TSMC 팹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도 강제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