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디자이너가 볼보로 간 이유…"미래차 성공은 다양한 경험의 결합"

[인터뷰] 제레미 오퍼 볼보 신임 디자인 총괄

카테크입력 :2023/06/21 09:32    수정: 2023/10/25 13:24

[밀라노(이탈리아)=김재성기자] 100주년을 앞둔 볼보자동차가 변화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산업이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술 중심 기업으로 전환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업 추세에 볼보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전통 자동차인(人)이 아닌 생소한 분야의 전문가가 볼보 디자인 총괄에 임명되면서다.

분명한 것은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는 단순히 사람을 운송하는 내연 기계에서 전동화된 움직이는 컴퓨팅 기기로 변화했다. 테슬라가 만든 이 새로운 전환은 전통 산업군에서 활약하던 장군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식견을 가진 전략가가 대세로 올랐다는 방증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더몰에서 국내 미디어와 만난 제레미 오퍼 볼보자동차 글로벌 디자인 총괄은 자신의 다양한 산업 경험이 자동차 산업과 관련이 크다며 “물리적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경험으로 향하는 관문’이라는 아이디어를 자동차 업계가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볼보자동차)

지난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더몰에서 국내 미디어와 만난 제레미 오퍼 볼보자동차 글로벌 디자인 총괄은 자신의 다양한 산업 경험이 자동차 산업과 관련이 크다며 “물리적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경험으로 향하는 관문’이라는 아이디어를 자동차 업계가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션’, ‘콰드 오디오’, ‘레보’. 이름만 들어도 귀가 뻥 뚫릴 것 같은 하이파이(HiFi) 오디오 브랜드의 이름이다. 이 브랜드들의 많은 제품을 디자인한 제레미 오퍼는 휴대폰부터 오디오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작업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가 자동차에 접점을 가졌던 순간은 전기차 스타트업에서부터 시작했다. 제레미 오퍼 총괄은 볼보에 합류하기 전 거쳤던 영국 전기차 스타트업 ‘어라이벌’(Arrival)에서 2016년부터 올해까지 최고 디자인 책임자를 역임했다.

영국 전기차 스타트업의 '어라이벌 밴' (사진=어라이벌)

어라이벌은 국내 기업인 현대자동차가 투자한 바 있는 영국 전기차 업체로 ‘영국의 테슬라’라는 별명도 얻은 바 있다. 볼보는 오는 2030년까지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전통 자동차 업체들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레미 오퍼 디자인 총괄이 경험했던 다양한 산업 사례들이 볼보에게 필요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제레미 오퍼는 전통적인 산업 디자이너이면서 전기차도 디자인한 경력자다. 그런 만큼 볼보의 색을 한층 돋보이게 해줄 것으로 예측된다. 비록 전통 자동차 디자이너 출신은 아니지만 산업디자인을 해온 그는 이번에 새롭게 내놓은 소형 전기 SUV 'EX30'을 외관과 성능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완성된 아름다움’이라고 평가했다.

제레미 오퍼는 “EX30은 볼보 디자인의 미래”라면서 “볼보에 내재된 문화인 인간 중심적인 접근 방식, 지속 가능성의 수준은 (내가) 디자인할 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볼보는 앞으로도 이러한 접근 방식을 취할 것이고 현재의 디자인 감성을 지키되 새로운 시대에 맞춰 나가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레미 오퍼 볼보자동차 디자인 총괄이 레보 재직 시절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진 슈퍼 커넥트 라디오 (사진=레보)

앞으로의 제레미 오퍼 디자인 총괄의 숙제는 전통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와 성공적인 스킨쉽이다. 그는 자기가 추구하는 협업 철학을 MIT 과학자들의 연구에 비유했다. 예술, 디자인, 과학, 엔지니어링이 결합하면 완벽한 제품과 서비스가 탄생한다고 발표한 바 있는 MIT 다이어그램을 사례로 들었다.

제레미 오퍼는 이를 볼보의 지향점이라고 정리하면서 “디자이너로서 말할 수 있는 점은 디자인은 민주적인 과정”이라며 “함께 일하는 팀에 힘을 실어주고, 모든 팀을 포용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리더로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자동차 산업이 현재 받아들이기 시작한 일부 새로운 기술과 경험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할 필요가 있다”며 “자동차 디자이너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모여 여러 역할을 맡는 민주적인 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볼보는 이탈리아 밀라노 소재 더 몰에서 전 세계 취재진과 관계자를 대상으로 볼보 EX30 공개 행사를 열었다. 이날 짐 로완 볼보자동차 최고경영자(CEO)는 “볼보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더 작은 패키지에 담았다”며 “다른 모델들처럼 안전하면서 인간,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설계된 탁월한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사진=김재성 기자)

변하지 않는 가치와 새로운 기술의 결합. 제레미 오퍼가 내세우는 볼보 디자인 철학이다. 그는 “볼보와 같은 역사를 가진 회사는 매우 적다”며 “항상 과거를 참조하고 과거의 일을 미래와 결합하는데, 우리가 차량을 만들고 차량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적 방식을 적용해 표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볼보는 여전히 이전 세대에서의 주요한 볼보의 특징을 유지하되, 이를 매우 현대적인 감성으로 풀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는 제레미 오퍼 디자인 총괄의 손목에 감겨 있던 시계가 눈에 띄었다. 전기차라는 최첨단의 디자인을 책임지는 그에게 생소했기 때문이다. 제레미 오퍼는 시계에 대해 “아버지가 21살 생일을 맞으셨을 때 받으신 시계”라며 “이는 헤리티지(유산), 역사, 가족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볼보가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제레미 오퍼 디자인 총괄은 볼보에 입사한 지 이제 5주차가 된 새내기다. 100주년을 앞두고 전동화 브랜드로서의 전환과 도약을 내세운 볼보의 디자인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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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볼보의 근무 경험에 대해 “100년의 차량 제조 역사와 스타트업이 혼합된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며 “저와 같이 자동차 산업 외에 다른 산업에서 일하다가 볼보에 합류하게 된 새로운 리더들의 새롭고 혁신적인 생각과 이전까지 해본 적 없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타트업과 유사하다”고 회사에 대한 평을 내렸다.

그는 그러면서 “스타트업의 문화와 볼보가 100년 동안 밟아온 과정과 역사가 결합되니 정말 마법 같은 일들이 시작되는 것 같다”고 소감을 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