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이 틈새(niche)로 남지 않고 주류 시장으로 성장하려면, VR만의 특징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가 한층 더 성숙해야 한다. 주변에 메타 퀘스트(Meta Quest), HTC 바이브(HTC VIVE),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R을 가진 사람이 있나요? 2023년 말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세요. 몇 명 쯤은 이러한 VR 헤드셋 키트를 구입했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겁니다.
딜로이트 글로벌은 2023년 한 해 글로벌 VR 시장 매출액이 70억 달러로, 2022년의 47억 달러에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중 90%는 헤드셋 키트에서 비롯될 것으로 예상한다. 2023년 한 해 평균 450달러 짜리 헤드셋 판매량은 14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나머지 10%는 게임과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등 VR 콘텐츠에서 창출될 것이다. 2023년 VR 헤드셋의 인스톨드 베이스(installed base)는 2200만 대에 달해, 2022년 중반에 비해 약 50%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승부는 차별화된 실감형 콘텐츠에서
딜로이트가 2016년에 처음으로 VR 시장 규모 전망치를 제시했을 때, 전망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합쳐 고작 1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2023년 매출액 70억 달러 전망치는 단 몇 년 만에 VR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프로세싱 파워, 스크린, 오디오 등 기술이 한층 발전하면서 VR 시장의 발전 속도도 빨라졌다. 2023년에는 더 높은 프레임 속도, 더 높아진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더욱 강력해진 공간음향 기술을 자랑하는 헤드셋이 출시, 한층 더 실감나는 몰입형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경량화와 환기 시스템 개선 등 인체공학에 기반한 발전도 기대된다.
그렇기는 해도 수량 측면에서 보자면 VR이 여타 디지털 기기를 따라잡기는 아직 역부족이다.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세계 사용자 수가 50억 명에 육박하고, PC와 태블릿, TV 사용자는 수 십억 명에 달한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 등장한 스마트 스피커도 2023년 말 인스톨드 베이스가 5억 개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VR은 2023년 인스톨드 베이스가 고작 2200만 대로 예상되기 때문에 당분간 틈새 시장으로 분류될 전망이다.
소셜 VR 게임, 차세대 스토리텔링, 원격 여행 및 교육, 기업 훈련 및 협업 등 몰입형 미디어에 대한 소비자와 기업의 만족도를 한층 높여 재사용으로 이어지게 하는 애플리케이션이 뒷받침돼야 VR 기기 시장도 한층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VR 애플리케이션이 참신함만을 내세우며 정작 규모의 축소와 확장은 용이하지 않고 다른 기기에서 더 잘 활용할 수 있다면, VR 기기는 여타 기기의 도입률을 결코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VR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2023년 한 해에는 VR이 최적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소비자 및 기업 애플리케이션을 파악하는 작업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대면 경험이나 다른 기기가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틈새를 VR이 채워주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활용사례는 몰입형 애플리케이션이다. 문자 입력과 같은 주기적이고 정밀한 통제가 필요하지 않고 대부분 사용자 손의 움직임, 더 나아가 눈과 몸의 움직임을 입력값으로 하기 때문에 VR을 도입하기에 적절하다.
게임 컨트롤러나 핸들 등의 움직임을 입력값으로 하는 게임도 마찬가지다. 또 VR 사용자들은 실제로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현실세계 물체나 사람에 부딪칠 위험이 있다. 따라서 VR은 공용 공간보다는 전용 공간에서의 경험에 더 적합하다. 헤드셋과 위치 추적 기기들은 사용자가 있는 실제 공간을 모델링하고 사용자 몸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배터리 지속시간이 길지 않고 헤드셋 장착에 따른 사용자 피로감도 상당하기 때문에 VR은 몇 시간 지속하는 작업보다는 한 시간이 넘지 않는 작업 및 경험에 더 적합하다. 일부 사용자는 헤드셋에서 발생하는 열로 인해 안구 건조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결국 하루 종일 VR 기기를 사용할 소비자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다시 강조하지만, 아직까지 VR은 다른 기기가 충족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용도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이나 PC처럼) 하루종일 작동할 필요가 없다.
소비자 영역에서 가장 유망한 VR 활용사례는 게임이다. 특히 1인칭 슈팅게임이나 레이싱 게임, 시뮬레이션 등 몰입형 장르는 VR을 도입하면 몰입도가 한층 높아지기 때문에 더욱 유망하다. 대형 TV 스크린이나 모니터로 게임을 즐기면 광활한 뷰를 즐길 수 있지만 결국 사각 프레임에 갇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VR은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소니(Sony)가 2023년 초 2세대 VR 헤드셋을 출시하고 이와 함께 약 20종의 완전 VR 또는 VR 옵션 게임이 출시되면, VR을 시도하는 게이머들이 증가할 것이다. 다만 VR 게임은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경우 아무리 첨단 VR 게임이라 해도 한 세션에 참여할 수 있는 게이머가 10명을 넘을 수 없다. 동시에 최대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콘솔이나 PC 기반 2D 게임과 비교된다. 따라서 멀티플레이어 VR 게임은 차세대 네트워크로 보강된 더욱 강력한 동시화(synchronization)가 필요하다.
공포물 등 VR로 몰입형 경험이 극대화되는 장르도 VR 콘텐츠로 개발하기에 적절하고, 원격 여행 및 교육도 틈새 시장이 될 수 있다. 최근 확산되는 마음 챙김(mindfulness) 분야에도 VR을 도입할 수 있다. 사용자가 헤드셋을 쓰면 습기 없는 열대우림으로 이동할 수 있고, 추위를 느끼지 않고 북극광을 감상할 수 있다.
기업 영역에서 VR은 작업 시뮬레이션, 기업 및 산업용 시스템 시각화, 물리적 거리의 한계 극복 등의 활용사례로 쓰일 수 있다. 특히 2023년 기대되는 기업용 VR 활용사례는 대면회의를 대체하는 소규모 회의 부문이다. VR 회의에서는 2D 화상회의보다 더욱 자연스럽게 소통이 가능하므로 2D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2D 화상회의에서는 참가자가 비디오를 꺼놓고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등 참여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VR 아바타를 도입하면 회의 참여도도 개선할 수 있다.
VR의 몰입형 훈련 및 시뮬레이션은 대면 및 2D 화상 수업을 보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근로자들은 가상 인터페이스와 AI 모델을 활용해 훈련하고, 고객 응대 시뮬레이션을 하고, 긴급 대응 훈련을 할 수 있다. 그러한 시뮬레이션은 기계부터 공장 전체 또는 마을 하나를 통째로 3D 모델로 그대로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을 활용하면 더욱 실감나는 경험이 가능해진다. 또 사용자들이 디지털 모델을 직접 ‘만질 수 있고’ 조작할 수 있게 되면, 기업용 메타버스가 등장할 것이다. 이러한 메타버스에서는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한 근로자들이 가상공간에서 협업하며 3D 물체와 조립라인, 시스템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VR의 성장 잠재력
VR 기기의 활용, 특히 소비자들의 활용을 확대하려면 VR 콘텐츠의 품질과 양이 개선돼야 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커넥티드 TV 시장의 성장을 뒷받침한 것은 바로 수 백만 개의 애플리케이션이다. VR 시장이 성장하려면 전용 VR 애플리케이션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야 한다. 2022년 중반 기준 VR 애플리케이션은 많아봐야 3000개를 넘지 않는다. 게다가 오늘날 소비자용 VR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게임콘솔, PC 등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과 싸워야 한다. 따라서 VR 개발업체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혁신을 보여줘야 한다.
기업용 VR 부문에서는 당분간 활용사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각각의 기기가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통화와 문자 외에 가장 많이 사용된 기능은 이메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여기서 다른 종류의 무수히 많은 애플리케이션이 가지 뻗듯 생겨났다. VR도 같은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 기업들은 VR 애플리케이션 각각의 성공률을 면밀히 추적해 직원들이 몇 번 쓰고 외면하는 애플리케이션과 꾸준히 쓰는 애플리케이션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VR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자신의 시야를 통제하는 기구를 머리에 쓰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재밌고 흥미롭기보다 거부감과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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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기술 지원, 커넥티비티, 보안, 데이터 수집 및 활용 관련 컴플라이언스 지원 등 여타 기능을 강화해 중요한 VR 활용사례를 지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부 VR 헤드셋은 안구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생성되는 새로운 개인정보는 보호받아야 한다. 이처럼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VR 시장의 성장 동력은 충분하다. VR 헤드셋이 선사하는 생생한 경험은 저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중요한 것은 VR의 세상에 어떠한 내용을 담느냐다. 소비자와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활용도가 높아지고 범용화가 실현된다면, 사람들은 VR 헤드셋과 주변기기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고, 이를 활용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도 더 많이 소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VR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이 서로의 성장을 견인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이렇게 되면 VR은 틈새에 머무르지 않고 주류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다.
몇 해 전부터 가상현실 기술은 인공지능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의 대표 기술로 꾸준히 화두가 되었으나 기술 완성도와 접근성 등의 문제로 대중화가 부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현 시대의 뉴노멀이 되고 비대면 산업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상현실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현재 가상현실 기술의 필수 조건이라고 볼 수 있는 3D 모델링, VR 제작 툴, GPU 등 가상공간 구축에 필요한 기술적 여건이 향상된 것도 가상현실 산업의 잠재력과 활성화를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가상현실 기술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 및 협업 분야에 주목하고 있지만, 이외에도 부동산 중개∙마케팅, 건축, 엔지니어링, 엔터테인먼트, 의료, 교육, 훈련 영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도 속속 등장하고 있어 관련 기술 발전과 함께 활용 범위도 더욱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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