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전기요금과 함께 징수하는 KBS 수신료를 분리하는 행정 절차에 돌입했다. 대통령실의 권고 이후 일주일 만에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키로 한 것이다. 사회적 합의와 숙려가 필요하다는 야권은 강력 반발에 나섰다.
방통위는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과 향후 계획이 담긴 보고 안건을 논의했다.
KBS 수신료는 월 2천500원으로 텔레비전 수상기를 소지한 가구에 일률적으로 부과하고 있다. 약 40년 동안 수신료 인상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1994년부터 전기요금에 통합해 한국전력이 징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통해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징수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진행했다. 3월부터 한달 동안 진행된 토론에는 참여자 96.5%가 분리 징수에 찬성했다. 대통령실은 이 같은 결과에 따라 방통위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관계 법령 개정과 후속 조치 이행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김현 위원, KBS 수신료 논의 유보해야
전체회의 안건 상정 이전 비공개 간담회부터 반대 뜻을 밝혀온 김현 위원은 방통위의 정책 기조가 갑자기 바뀐 점을 따져 물었다.
김현 위원은 “방송법이 규정한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재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해 공영방송이 각종 상업 이익단체에 종속되는 것을 막고 중립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원칙”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는 물론 인수위 시절 수신료 이야기는 없었고, 2월 대통령 업무보고에도 없던 내용이 3월에 들어 대통령실이 분리 징수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방통위는 수신료 분리징수 이야기가 나오면 수용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며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의 분리징수 의견에 대해서도 수신료 납부 형평성을 위해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고 답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통령실의 권고를 보면 수신료 폐지 의견이 많았다고 하는데 (분리 징수를 위한 법령개정은) 여기부터 모순관계”라며 “2008년도 헌법재판소 판결문을 참고해 수신료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방통위란 조직의 합의성을 망각하고 2인 의견으로 하는 것을 심히 우려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논의해야 하는) 방통위원이 제대로 된 자료를 받지도 못하고 떠밀려 처리하는 것도 우려스럽다”며 “강제 징수 논란은 여야를 불문하고 많았지만, 그럼에도 방통위는 다양한 법적 검토와 학계 의견에 따라 휘둘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현 위원은 또 “향후 계획에 방통위가 어떻게 논의할지도 없다, 졸속 보고에 2명의 의결하는 졸속 심의로 진행된다”며 “KBS 재승인 과정에서 사업계획서를 받아 동의한 분이 이 자리에 2명이나 있는데 이렇게 운영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상인 위원, 국정과제 없었어도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어
윤석열 대통령 추천 몫으로 6기 방통위원 가운데 가장 먼저 선임된 이상인 위원은 KBS 수신료 분리 징수가 필요하다며 맞받아쳤다.
우선 방통위가 KBS 수신료 징수에 대한 정책 방향이 바뀌었다는 지적에 대해, 이상인 위원은 “정부가 교체되면 방통위 구성도 바뀌는 것이고 새로 구성된 상임위원 의견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 여론을 수렴한 것으로, 국정과제에 없다고 해도 상황변화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상인 위원은 또 “(KBS는) 정부가 자본금 전액을 출자한 법인으로 국민이 주인이다”며 “KBS는 수신료 인상을 여러 번 의결해 국회에 요청했는데 그때마다 국회와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수신료 인상이 한결같이 좌절된 이유는 방만한 경영과 자구노력 외면으로, 그런 비판은 방통위와 감사원에서 매번 지적한 사항”이라며 “2009년부터 2015년까지 KBS 이사로 지내면서 수신료 인상에 두 번을 찬성했는데 그 전제로 국민과 국회가 요구하는 지적사항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햇다.
이어, “하지만 10여년이 지나도 KBS는 이에 대한 개선 노력이 부족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며 “자사 이기주의에 더해 정치적 편향성에 쏠려 공정성 시비 논란을 일으켰는데, KBS는 무조건 비판하고 반대할 게 아니라 수신료 가치는 제대로 인식하는지 또는 책임을 다했는지 그리고 왜 이런 불신을 초래했는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은 이를 다수결에 따라 3명의 재적 인원 가운데 2명이 찬성해 원안대로 접수키로 했다.
이에 대해, 김현 위원은 “합의가 안 이뤄지면 숙려를 해야 하지 않냐”면서 “시행령 개정을 요구를 받았지만 방통위가 중립기구인 만큼 충분한 일정을 갖고 사무처가 보고하고 논의한 뒤 상정해도 된다”고 맞섰다.
하지만 다수결로 원안 접수를 하면서 김현 위원은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KBS 수신료로 정치권 논쟁 거세질 듯
대통령실의 권고와 방통위의 움직임에 따라 KBS 수신료 문제를 비롯해 야당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날 회의에 앞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조승래 의원과 장경태 의원은 정부과천정사를 찾아 김효재 직무대행을 만나 3인 체제의 방통위가 KBS 수신료 분리징수 안건을 논의하는 것은 월권이란 뜻을 전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과방위원들은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논의가 필요한 안건이라면 방통위 정상화 이후에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진행하면 된다”며 “무리한 방통위 운영은 KBS, MBC 방송 장악을 위한 방통위 사전 접수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효재 상임위원과 방통위는 새로운 정책 결정 논의를 당장 중단하라”며 “위법 부당한 월권으로 인한 사상 초유의 위원장 직무대행 탄핵 사태를 스스로 초래하지 않기를 엄중하게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안정상 수석전문위원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독임제 행정부처의 장관과 달리 방통위원장은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의 수장으로서,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다는 점에서 직무대행이 현상 변경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위원 5인 중 3명만 남아있는 비정상적인 위원회 구성 사항을 악용해 정파적 이해관계에 의해 독단적으로 위원회 의결사항을 처리하는 시도는 방통위 설립과 운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굳이 당장 시행령 개정을 강행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하루속히 KBS를 길들여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겠다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의도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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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과방위 국민의힘 의원들은 격하게 반응했다. 여당 과방위원들은 오후 성명을 내고 “수신료 정상화와 식물부처 정상화를 가로막는 민주당 과방위원은 국회의원직을 당장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법적으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직무대행을 하는 김효재 상임위원을 탄압하고 수신료 정상화 의결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어떻게든 가로막기 위한 항의 방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