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문 테러' 빨간 바지 의인 "처음엔 범인으로 몰렸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을 붙잡아 '빨간바지 의인'으로 불리고 있는 이윤준씨(48)는 설마 사람이 비행 중에 문을 열었을 것으로는 상상도 못했다고 밝혔다.

자신이 범인 이모씨(33)의 팔을 잡은 건 비행기 밖으로 떨어지려는 사람을 구하려는 의도였다며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문을 연 범인일 줄은, 또 탈출하려는 행동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26일 낮 제주발 대구행 아시아나 항공기가 대구공항 상공에서 착륙 준비를 하던 중 창문쪽에 앉아있던 이모(33·)씨가 갑자기 비상구 문을 여는 바람에 강한 바람이 기내로 들어왔다. 이씨 바로옆에 앉아 바람을 직접 맞아 힘들어하는 모습의 빨간바지 차림의 이윤준씨는 착륙과정에서 범인이 비행기 밖으로 뛰어내려는 것을 붙잡아 또다른 불상사를 맞았다. (유튜브 갈무리) © 뉴스1

범인을 제압한 건 공중이 아닌 비행기가 착륙해 활주로를 달리고 있을 때라고 했다.

행정안전부 산하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 제주본부 상임부회장인 이씨는 지난 26일 제주에서 대구로 향하던 아시아나 항공기에서 착륙 직전인 상공 213m에서 출입문을 연 범인의 팔을 끝까지 붙잡아 제압한 의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윤준씨는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얼떨떨하고 황당한 주말을 보냈다'고 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빨간 바지가 범인이라고 (인터넷 상에 나돌아) 황당했다"며 "전 그냥 승무원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그런 오해를 받았다. 그런데 자고 나니까 의인이 돼 있었다"고 어이없어했다.

이씨는 "평소 비행기 탈 때 편해서 빨간 바지와 크록스 신발을 신는다"며 "집으로 오는 길에 티웨이 항공에 근무하는 후배가 '인터넷에 형님 뒤통수가 나와 있다'고 하더라"며 그 말을 듣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유출된 동영상을 본 이들이 처음엔 빨간 바지 차림으로 의자를 붙잡고 있는 자신을 범인이라는 댓글을 단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26일 낮 12시45분쯤 일어난 문제의 상황에 대해 이씨는 "이어폰 끼고 음악 들었는데 갑자기 모자가 날아가고 헤드셋이 날아갔다"며 "하늘에 구름도 보이고 이거 뭐지? 이런 생각도 들고 바람이 엄청나 진짜 얼굴이 따가웠고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범인을 잡게 된 계기에 대해 "착륙하면서 바퀴가 탁 땅에 닿고 (비행기가 활주로를) 잘 달리던 상황인데 그때 갑자기 이 친구가 벨트를 풀더라, 제가 시선을 제 대각선쪽에 앉아 있는 승무원 쪽으로 돌리자 승무원이 '도와주세요'라고 이야기하더라"며 "뭔가 싶어서 보니까 그 친구가 비상구 쪽으로 매달려 고개를 숙이면서 나가려고 해 그냥 제 왼손으로 잡았다"고 했다.

대구공항 착륙 중 항공기 비상문을 개방한 혐의(항공보안법 위반)로 긴급체포된 30대 남성 A씨가 28일 오후 대구 수성구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News1 공정식 기자

이어 "왼손으로 잡고 당기고 하던 중 승무원 3명인가 4명이 같이 오셨고 그다음에 승객들이 또 와 거구의 친구를 끌어올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에 (나에겐) 그 사람은 범인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문이 열렸을 뿐,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문을 열려고 했겠는가"라며 범인이 문을 열었을 것으로는 "상상을 못 했다"고 했다.

즉 "정확히 얘기하면 (범인을 제압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한 것이었다"고 했다.

이씨는 "(그때 그사람은) 뭔가 째려보는 눈빛, 씨익 웃는 느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세상을 다 포기한 그런 느낌이었다"고 문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범인의 눈빛이 기억난다고 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