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휘발유 도매가격 개정안이 시행령 입법 예고 후 6개월이 넘도록 표류 중이다. 당초 지난 24일로 예정된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도 사실상 다음달로 넘어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정부와 정유업계는 여전히 갈등을 빚는 양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9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해당 개정안은 현재 공개 중인 전국 평균 도매가를 광역시·도 단위로 세분화하고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도매가격을 공개하는 것이 골자다.
개정안은 지난 2월 24일 규개위에서 첫 심의를 진행했지만 정부와 업계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종료됐다. 이후 지난10일로 예정된 규개위 두 번째 심의가 지난 24일로 연기됐지만 이 마저도 또 연기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규개위쪽에서 휘발유 도매가 공개와 관련해 심도 있게 검토 할 수 있는 추가적인 자료 요청들이 있었다"고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국제유가 상승으로 유류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유류세 인하 조치를 취했지만 인하분이 석유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정유사간 경쟁을 유발해 가격을 안정화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정유사들은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을 통해 매주 국내 전체 판매량의 평균 판매가격만 공개하고 있다.
반면 정유업계는 개정안 취지와 달리 경쟁사의 가격정책 분석이 가능해져 오히려 경쟁제한이나 가격의 상향 동조화를 야기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핵심은 도매가 공개가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하는지 여부다. 실제 지난 2011년에도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지만 규개위에서 영업비밀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무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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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정유사들은 거래처별 물량에 따른 공급가 차이, 유통구조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공급가격을 결정한다. 이번 도매가 공개가 현실화 될 경우 마진, 유통구조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게 정유업계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규개위 두 번째 심의가 내달 중에 개최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시행령 개정안 심의가 한 차례밖에 개최되지 않았고 지난해부터 추진한 개정안이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여론이 커져 규개위 역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이유다. 시행령 개정안이 규개위를 통과하면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공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