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기술에 힘입어 보건의료 영역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 세계는 디지털 헬스케어(Digital Healthcare)를 통한 신종 감염병, 초고령화 시대, 지역 간 건강격차 해소 등 우리 앞에 놓인 적대적 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를 디지털 헬스케어 원년으로, 지디넷코리아는 ‘미래의료’ 연재를 통해 국내·외 디지털 헬스케어의 산업 동향과 가능성 및 역작용을 분석함으로써 가장 정확한 전망을 제시할 것이다. [편집자 주]
“비대면진료는 ‘네거티브 규제’로 가야한다.”
장지호(36)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회장의 말이다. 말인즉슨, 제한을 두지 않되 위험요소나 위법 사항에 대해서만 제제를 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짜여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대면진료의 제도화는 기정사실이다. 문제는 제도의 ‘모양’이다. 보건복지부는 서둘러 제도화를 마무리짓고 싶고,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비대면진료의 위험성을 우려한다. 아울러 기존 의료체계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할지 경계한다.
복지부에게 의료계는 향후 보건복지 정책 수립에 있어 협력이 꼭 필요한 파트너 상대다. 그에 비해 고작 19개의 스타트업이 모인 원산협의 지위란 아직 미미하다. 미래의료의 형태로 진화하는 정책 어젠다를 제시하고픈 정부는 원산협의 신선함과 젊음을 종종 인용하기도 하지만, 정작 주요한 협력 파트너로 이들을 대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원산협도 이를 알고 있다. 사실 이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보다 비대면진료와 약배달의 제도화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흐르고 있다. 복지부는 재진환자를 중심으로, 원산협은 초진환자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맞서는 대치 국면처럼 보인다. 불과 19개 스타트업이 모인 원산협이 복지부와 싸워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니 이들은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두고 복지부와 제발 대화를 나누자고 사정하고 있는 것이다.
장 회장은 “정부와의 소통 창구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며 “이용 대상에 제한을 두면 제도 그 자체가 규제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시나리오
Q. 비대면진료 및 약 배달 플랫폼의 책임과 의무란 무엇일까.
“비대면진료의 제도화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에 대해 협의회 내에서 토론을 상당히 진행해왔다. 가령, 신원 확인 등 플랫폼에 대한 규제 조항이 앞으로 생길 것이다. 환자들은 당뇨나 고혈압약 등을 석달에 한 번씩 받아야 한다. 비대면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을 때는 한달 간격으로 해 대면진료의 보완으로써 처방 기한에 제한을 두는 식이다.
이는 대면 진료를 유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처방 일수를 제한해 진료 횟수를 늘린다면 말이다. 플랫폼 역시 이러한 제안을 통해 의료계와 상생하는 안정적인 사업 모델을 안착시키고 싶은거다.”
Q. 정리하면 네거티브 규제(법률이나 정책으로 금지된 것이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규제)로 이어지도록 업계가 유도를 하겠다는 건가.
“협의회가 나서서 유도를 한다기 보다 비대면 진료 산업이 네거티브 규제로도 문제없이 작동한다는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다.”
Q. 비대면진료 제도화도 급선무이지만 규제만 더해지는 제도로 초기 형태가 만들어진다면 업계에서는 큰 일 아닌가.
“그렇다. 제도화가 어떻게 되느냐가 가장 큰 문제다. 제도에 따라 ‘본게임’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아예 게임의 시작조차 못할 수 있다.”
Q. 최상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현재처럼 한시적에서 상시적 비대면진료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네거티브 규제를 대입해 위법적이거나 위험한 부분만을 하지 않도록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 또 규제를 위반했을 때 명확한 책임을 지게하면 된다. 이것을 못할 이유가 없다. 지난 2년간 우리국민 1천300만명 이상이 3천500만건 이상의 비대면진료를 활용했다. 중대한 사고는 없었다. 대부분 경증이었고, 1차 의료기관 중심이었다. 데이터는 충분하다. 이미 해온 것을 못하게 한다? 납득이 어렵다.”
Q. 최악의 경우는?
“현재 보건당국은 비대면진료 대상을 한정 지으려는 것 같다. 비대면진료 서비스 이용자의 99%가 초진환자다.”
Q. 제도화 뚜껑을 열어보니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 비대면진료 대상을 재진환자, 만성질환자, 장애인으로만 규정지어놓으면 비대면진료 서비스는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한다.”
Q. 기업 입장에서 불이익이 너무 크다는 건가.
“사업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납득이 안된다. 대상을 한정지어 놓으면 비대면진료 서비스는 사실상 작동을 안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보건당국 입장에서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단 재진환자의 규정 자체가 복잡하다. 비대면진료를 시행하려는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의 재진 여부를 여러 단계를 거쳐 확인해야 한다. 누가 번거롭게 그걸 따지고 있겠나. 비대면진료 참여의 동기가 흐려진다. 제대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도화의 본 취지 자체가 무색해질 것이다.”
Q. 의료 기본 원칙은 대면진료이니, 그 원칙을 깨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겠나.
“솔직히 재진환자 중심의 비대면진료는 현장과는 맞지 않은 제도다. 제도가 사실상 규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할 창구 자체가 거의 없다는 게 더 문제다. 전할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어떻게 의견을 좀 드려야 되는데 그럴 수 있는 루트가 많지는 않다. 보건당국은 6월이라고 제도화 시점을 특정했다. 그렇다면 산업계나 소비자의 입장을 제도화 과정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Q. 복지부나 의료계, 약계와 공식적인 소통 채널이 가동되고 있나.
“사실상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답답하다.”
Q. 산업계와 정부 간 대화도 중단된 상태인가.
“그렇다. 복지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게 좀 됐다. 코로나19 오미크론변이바이러스 유행 당시만 해도 복지부와 소통이 원활했다. 정말 많은 의견조율이 이뤄졌다. 당면한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의료 공백을 막는데 비대면진료와 약 배달이 큰 힘이 됐다고 정부는 여겼던 것 같다. 정작 제도화 속도를 타면서 산업계의 의견이 전달되거나 반영될 채널이 거의 없다.”
Q. 복지부는 비대면진료 플랫폼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업계와 나름대로 소통이 활발하지 않았나. 이젠 제도화 국면에 접어드니 소통이 막히고 있다는 건가.
“아쉬운 부분이다. 플랫폼 가이드라인을 끝으로 지속적인 소통 창구 운영 등은 전무한 실정이다.”
Q. 국내 사업이 제도로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대안으로 원산협은 회원사를 위한 글로벌 진출 지원을 고려하고 있나.
“국내 규제에 발목이 잡히면 글로벌 진출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의료와 ICT에 대해 강점을 갖고 있다. 안타깝다.”
복지부는 단계적(혹은 점진적) 제도화 과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것이다. 이 자체가 말이 되긴 한다. 아울러 부처 차원에서 이러한 선택은 ‘안전’한 방법일 것이다. 의료계와의 마찰도 피하고 비대면진료 허용의 물꼬를 틀었다는 성과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대면진료로 돈 벌지 말지도 전전긍긍
Q. 카카오헬스케어는 국내에서 비대면진료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하던데. 기업 입장에서 비대면진료가 돈이 되나.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인데 제도화 이전에 수익을 내는게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물론 기업은 돈을 벌어야 생존할 수 있고,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비대면진료가 주수익원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로톡을 생각해보자. 상담료가 8만원 가량이다. 반면, 우리는 건강보험에서 진료비 4천500원에서 얼만큼 수수료를 떼야 할지 고민스럽다. 현재 플랫폼 기업들은 수익 고민은 제쳐두고 있을 것이다.
다만 아픈 환자가 비대면진료 앱을 사용했을 때의 가치는 배달음식 앱을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약 배달에 8천원이 들었다 치자. 아파서 약이 필요할 때나 감염병에 걸렸을 때 약을 빨리 받는 게 중요하다.”
Q. 그 부분에서 반론이 좀 있다. 그 8천원은 과거에는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돈 아닌가. 편의성이 높아졌다고 해도 이게 전체 의료소비자 단위로 생각하면 적지않은 추가 의료지출 비용 아닌가.
“그렇지만 비대면진료 비율이 전체 진료 대비 미미하다. 건보재정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비용 증가는 하겠지만, 재정지출에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늘어나진 않을 것이다.”
Q. 비대면진료 전문병원이나 약 배달 전문 약국에 대한 우려가 많다.
“비대면 전문병원 아직 없지만, 준비하려는 곳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배달 전문 약국을 하려는 이들도 있다. 수요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일거다. 마치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가 들어서는 것처럼 말이다. 이윤 추구는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적어도 원산협 소속 플랫폼 기업들은 이들과 제휴 등을 하지 말자고 권고 하고 있다.
Q. 시장 변화에 따라 유연한 대응도 필요하지 않나. 결국 플랫폼 기업도 기업이니.
“그럼에도 당장은 제대로 된 제도 시작이 우선이라고 본다. 제도화 이후 시장 환경이 바뀌더라도 앞선 권고 기조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의료계와의 마찰을 피하자는 것도 있지만 향후 어떻게 살아남느냐에 대한 방향 설정과 결부지어 생각해야 한다. 사실 비대면진료 전문 병원이나 배달 전문 약국은 위법 소지도 있다. 플랫폼 기업은 법에 근거해 제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에 국내 의료 인프라는 나쁜 편이 아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인프라와 잘 협력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때문에 ‘문제적’ 병원이나 약국이 들어서지 않도록 산업계가 나서서 바람직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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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결국 큰 그림을 봐야한다?
“비대면진료 산업계가 무게를 둬야 하는 부분은 비대면 진료의 고도화다. 그로 인한 편의는 국민들이 체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게 원산협이 추구해야 하는 관점이다. 제휴 몇 군데 더 하려고 욕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