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vs"다툼"…모호한 기준에 '웃는 연진이'

가해자 '선도' 중심서 피해학생 '회복'으로 바꿔야

생활입력 :2023/03/15 08:02

온라인이슈팀

"어떤 이유가 있었든 학교에서 폭력을 가했다면 무조건 사죄해야 한다."

"학폭도 좀 구분해서 비난하자, 약자를 집중적으로 장시간 괴롭히는게 학폭의 본질이다."

© News1 DB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안길호 PD의 학폭 논란을 놓고 여론이 갈리고 있다. 안씨는 결국 가해 사실을 인정하며 사과했지만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학폭 기준'이 모호하다며 보다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안 PD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학폭 기준의 불명확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1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학교 폭력'의 정의는 지난 2021년 3월부터 시행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예방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정의가 다소 포괄적으로 해석될 수 있어 실제로는 개별 사안에 따라 학폭 대상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 '학폭' 법적 인정 범위 다소 광범위…"교육은 생략하고 형법으로 대체"

지난해 8월까지 부산의 한 교육지원청에서 근무했던 학교폭력 담당 안분훈(32) 변호사는 "기준이 모호하면 학교 자치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학폭의 영역으로 다 끌고 들어올 수 있다"며 "학교가 실행해야 할 교육 활동을 생략하고 법으로 교육을 대체하려는 것이 야기되는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안 변호사는 <학폭폭력예방법> 제2조 1호가 피해학생 보호를 위해 적극 대응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면서도 추상적이고 광범위해 미숙한 학생들의 다툼조차 학폭으로 다스리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예방법>은 형사처벌과 별개로 학생이라는 신분을 대상으로 내리는 징계 기준이다. 제2조 1호(정의)에 따르면 '학교 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악취, 유인, 명예훼손, 모욕, 공갈, 강요, 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징계는 '교육목적'이 반영되기에 형법적으로는 무죄더라도 학폭위 안에서는 징계가 가능하고 또 아닌 경우도 존재한다. 경찰이나 법조인 입장에서는 내사 종결 처리할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학폭위에 신고되면 교육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교사와 학부모들은 사안을 더 심각하게 보는 경우가 많아 징계를 받는 경우가 많다.

안 변호사는 "법이 학교에 찾아오면서 교육은 사라지고 불신만 팽배해진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학폭위는 학폭을 판단하는 기준을 교육 현장의 시선에서 보는 경우가 많아 판단이 주관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 경우 일부 초등학생의 작은 다툼조차 학교 선생님의 훈육이나 지도는 생략하고 바로 학폭위로 넘기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또한 법률에 나열되지 않은 행위를 학폭으로 판정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학폭이 명백해 보이는 경우도 판정이 안될 수도 있는 모호함이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절도'라는 행위는 학폭예방법상 '학폭의 정의(제2조)'에 나오지 않지만 특정 학생을 괴롭힐 목적으로 그 학생의 물건을 절도했거나 다른 유형의 학교폭력에 연장선으로 절도가 이뤄진 경우 학폭으로 판단할 수 있다.

반면 막대기를 휘두르는 등의 행위는 폭행으로 볼 수 있어 보이지만 만약 '과실에 의한 행위'로 인정되면 대체적으로 학폭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다만 형법에 따라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면 학교 폭력으로 보는 경우가 있어 결국 가해자나 피해자 학생 모두 미필적 고의를 다투어 학교 폭력이 '맞고소'와 같은 법적 다툼으로 전개된다는 설명이다.

안 변호사는 이에 대해 "학폭위는 형법 전문가들이 모인 조직이 아니기에 해결이 어렵다"며 "교육적 선도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폭력예방법>이 결국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형법>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현상이 빈번히 나타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교사 출신으로 학폭 소송 경험이 많은 나현경 변호사(법무법인 오현)는 "처분에 따른 불이익 때문에 다투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학폭 가해자'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 "정신적 피해 입증 쉽지 않아"…피해 회복 중심의 프로그램 마련돼야

학폭 판단이 애매한 경우 학교폭력예방법 제3조에 명시된 '해석과 적용의 주의 의무'에 따라 학폭위 담당 선생님이 가해자, 피해자 등 주변인 조사에 들어간다. 안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반 학생들의 증언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학폭위 담당 선생님은 입증 책임은 없지만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서와 주변 학생들의 진술서 등 처분에 필요한 객관적 자료를 모아 심의위원회에 제출해야할 의무가 있다.

지난 2019년 서울행정법원에서 선고된 한 판결에 따르면 "학교 폭력은 그 유형으로 열거된 행위 뿐만 아니라 이에 해당되지 않아도 학생에 대해 신체·재산 또는 정신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로서 그 행위의 내용이나 정도가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에 대해 선도·교육이 필요하다고 평가할 만한 것이라면 학교 폭력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여기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정신적 피해'는 사실관계 정리를 위해 주변 학생들의 목격 진술이 관건이다. 안 변호사는 이에 대해 "특히 '은따(은근한 따돌림)'의 경우 피해 학생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받지만 조사만으로 증거가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 혐의가 성립이 안된다"며 "이런 경우 상황을 지켜본 주변 학생들은 절대 방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학교 교육은 결국 잘못한 가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선도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제는 피해 학생의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이 작동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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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학폭이 치명적인 이유는 동년배에게 당했다는 수치심이 크기 때문"이라며 "뼈가 부러지지 않고 외상이 보이지 않더라도 수치심이나 모멸감 이런 심리적인 상처는 더 오래 영향을 끼칠 수 있어 학폭의 심각성을 재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