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피구'라는 운동이 있다. 둘이 꼭 붙어 하는 놀이다. 강자가 앞장서 약자 대신 공을 맞아주고 잡아준다. 그래도 죽지 않는다. 약자가 공에 맞으면 판 밖으로 나간다. 공격은 약자만 할 수 있다. 지역마다 규칙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대개 이런 방식으로 진행한다.
최근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구도를 보면 한국 정부와 업계가 이렇게 짝지어야 할 것 같다. 미국 회사가 자국 중심의 반도체 산업 질서와 구도를 구축하겠다고 공을 들고 섰다. 미국 정부는 그 앞에서 방패는 물론 창까지 쥐었다.
경쟁국은 반도체를 단순히 하나의 산업이 아닌 국가 안보로 인식한다. 한국에서는 반도체가 수출의 5분의 1을 책임진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자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전체 수출이 줄었다. 무역수지는 1년 내내 적자다. '한국은 반도체 수출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 없이는 우리 수출 경제의 회복도 어렵다는 의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일 미국이 반도체지원법 세부 사항을 내놓은 직후 보조금을 받을 의향이 있는 기업이 미국 정부와 협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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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 진흥과 통상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부처다. 외교부는 경제외교 정책을 시행한다. 기업 경영에 불리함을 넘어 생존을 가르는 조항을 유예하자거나 손보자는 목소리를 대신 내줘야 한다. 입장을 전하는 역할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이 스스로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면 처음부터 정부가 뒤로 빠졌을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반도체 인센티브 독소 조항에 난감해 하고 있다.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고 보조금을 받으면 10년 동안 중국에 투자할 수 없다고 하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업계는 정부가 더 강한 자세로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정부는 수출을 키워 나라 경제를 살리겠다며 기업과 하나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반도체 국가 대항전에서야말로 짝을 이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