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삶의 이정표이자 동력이다. 꿈은 곧 미래의 삶이다. 꿈은 그래서 소중하다. 꿈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만큼 다채롭다. 스타트업이 꾸는 꿈도 그럴 것이다. 소중하고 다채롭다. ‘이균성의 스타트업 스토리’는 누군가의 꿈 이야기다. 꿈꾸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꿈꾸는 사람을 소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다. [편집자주]
“호주 바다처럼 우리 바닷속에도 숲을 만들고 싶어요”
어떤 경험은 한 인생의 행로를 바꿔놓는다. 원종화 포어시스 대표에겐 호주에서의 짧은 삶이 그렇다. 원 대표는 2010년대 중반 대우조선해양에서 근무하던 시절 서호주대학(UWA) 해저기초시스템연구센터(COFS) 초청 연구원으로 근무했었다. 근무했었다. 그때 바다가 새롭게 다가왔다. 바다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생생하게 느낀 것이다.
“호주 바다는 해양 생물이 온전히 존재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육지로 치자면 생태계가 잘 보존된 숲이었습니다. 사람한테 상처받지 않은 것이죠.”
더 큰 깨달음은 “바다가 원래 그러했다”는 사실이고, 문명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인간 사회가 하기에 따라 그 상태를 유지하는 곳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원 대표가 창업의 뜻을 세운 게 바로 이 지점이다. “바다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일에 기업의 방식으로 기여하고 싶다.”
■바다가 일상적이고 특이한 놀이터였던 청소년기
원 대표는 바다와 친숙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 바다는 일상적인 놀이터였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일곱 살 때 경상남도 거제시로 이사 갔다. 남해 바닷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바다와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을 만끽하며 자랐다.
원 대표는 그런데 바닷가 아이 중에서도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됐다. 바다에 거대한 구조물이 지어지는 걸 항상 눈여겨 본 경험이 그것이다. 이것은 원 대표 부친의 영향이 크다. 부친이 그곳에서 해양 플랜트 사업을 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해양 플랜트 현장을 자주 봤기 때문인지 거대한 구조물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학에서 토목환경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죠. 응용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들어간 곳도 대우조선해양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인생은 ‘바다와 거대한 구조물의 이야기’인 셈이네요.”
■부친이 보기에는 무모해 보이기만 한 창업
바다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생기고, 어린 시절부터 직장 생활까지 배운 거대한 구조물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창업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창업이 기업가인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와 그에 따른 기질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호주에서 생긴 뜻을 세우고 실행하는 방법은 그때로서는 창업 밖에 없었다.
창업의 뜻을 보이자 부친은 사업계획서를 요구했다. 세 번이나 퇴짜를 놓았다. 그러다 결국 허락을 하면서도 “이렇게 하다간 망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창업 7년차에 접어든 원 대표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를 더 되새긴다. 거친 세상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어찌 미래에 놓인 위험 요소들을 미리 다 알 수 있겠는가. 도전하다 막히면 그 문제를 풀고 다시 도전하고 그런 반복이 결국 기업가 삶 아닌가.
“부친께 보여드렸던 사업계획서를 지금도 가끔 다시 보는데 숭숭 뚫려 있는 구멍이 이제는 조금씩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때 계획서 속에 있던 아이템이 다섯 개인데 지금 그 중에서 4가지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해양 쓰레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다
원 대표가 포어시스를 창업한 것은 2017년이다. 회사 이름 포어시스(Foresys)는 ‘먼저’를 뜻하는 접두어 ‘fore’와 바다의 ‘sea’를 합쳐 ‘미래의 바다를 가꿔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 말은 돈키호테처럼 들렸다.
해양 쓰레기를 치우고 그 쓰레기 가운데 필요한 건 재활용한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부 환경운동가는 관심을 두었겠지만, 정부 정책을 바꾸고 그 일이 훌륭한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 뜻의 고상함에도 불구하고 부친이 “이렇게 하다간 망한다.”고 한 까닭도 그 때문이겠다.
시간은 그러나 헛되이 흐르지 않고 노력은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업과 함께 해양 쓰레기 문제의 중요성과 이의 해결방안을 외부에 널리 알리는 데도 주력했다. 80여건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60여건의 특허를 출원하고 등록했다. 국내외 학회 및 기관에서 해양쓰레기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모든 노력이 헛되지는 않아서 2020년 12월에는 ‘해양폐기물 및 해양오염퇴적물 관리법’이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해양으로 유입되는 하천 쓰레기를 차단해야 하는 일이 비로소 의무화된 것이다.
■해양 쓰레기 수거에서 폐기물 재활용까지
포어시스의 사업은 크게 ‘해양 쓰레기 수거’와 ‘수거 플라스틱 재생’ 사업으로 나뉜다. 전자는 주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발주 사업 형태로 진행되고, 후자는 해양 폐기물 재활용 재료(재생 플라스틱이나 재생 섬유) 수요 기업과 진행한다.
해양 쓰레기 수거 작업은 주로 육지의 하천에서 진행된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연간 발생량은 약 14만 5천 톤이다. 이중 65%가 육상에서 발생한다. 그 대부분이 하천에서 바다로 흘러간다.
차단시설은 의외로 간단치 않다. 계절별 강수량에 따른 하천의 수위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쓰레기의 하중과 유속 등을 고려하여 내구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에 대한 신뢰를 획득하지 못하면 주민 저항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차단시설이 물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범람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 대표는 “쓰레기 차단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해양 및 토목 공학에 대한 전문성으로 안전성과 신뢰도를 높인 게 포어시스 장점”이라고 말했다.
포어시스는 또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 이미지 인식 기술을 통해 수거되는 하천 쓰레기를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쓰레기 발생량을 예측하고 수거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폐기물 발생자(생산자)를 따져 그 기업에 처리 책임을 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갤럭시S23에 폐어망 소재 15톤이 재활용 된 이유
삼성전자는 최근 갤럭시S23을 출시하면서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삼성전자 박성선 MX사업부 기구개발팀장(부사장)은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3′에 친환경 소재를 확대 적용하면서 올 한해 동안 15톤(t) 이상의 폐어망을 수거하고 재활용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며 “2030년까지 제품에 쓰이는 플라스틱 부품 중 50%를, 2050년까지는 100%를 재활용 소재로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원 대표에 따르면 폐어망을 재활용 한 플라스틱은 최초의 플라스틱에 비해 2~3배 비싸다. 그런데도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이 이를 사용하는 까닭은 탄소배출량을 60~70%까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기업이라는 이미지 확립에도 당연히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분위기가 트렌드가 되고 새 시장이 열린다는 점이다.
■“경주에 해양 폐기물 재활용 공장을 짓고 있어요”
포어시스는 약 40억원을 투자해 경북 경주에 ‘해양 폐기물 전용 전처리 자원순환 플랜트’를 짓고 있다. 폐기물 재처리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태양광 발전과 수소전지 시스템 등까지 활용한 스마트공장이다. 고객이 재생 플라스틱을 쓰는 이유가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인 만큼 탄소배출량을 최소화한 것이다.
“처음에는 3천 톤 가량을 처리하는 규모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25년에는 1만5천 톤 규모로 확장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버려지는 폐어망이 보통 12만 톤 정도인데 이 공장에서만 10분의 1 가량이 새로 태어나게 되는 거죠.”
해양 폐기물은 육상 폐기물과 달리 염분과 이물질이 많아 재활용하기가 까다롭다. 해양 폐기물 가운데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려면 염분을 세척하고 탈수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포어시스는 이 과정에서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초음파만을 이용해 이물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포어소닉(Fore-Sonic)을 개발하였다.
■“사회가 원하는 변치 않는 가치를 제공하는 일”
창업을 할 때 반응은 가지가지였다. 응원하는 이도 있었지만 극히 적었고 아무 관심도 없거나 의아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적극적 비난도 있었다.
사실 사업하는 일은 매일매일 어렵다. 지금도 여기서 벌어 저기를 메우는 상황이다. 원 대표를 비롯한 핵심 구성원의 해양 엔지니어링 노하우를 기반으로 한 용역 사업을 통해 번 돈으로 해양 폐기물 전처리 사업을 조금씩 진전시켜나고 있다. 큰 투자를 받지 않고도 원하는 비즈니스를 7년째 밀고 나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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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는 것을 변치 않고 적절하게 서비스 하는 거, 그게 가장 어려운 일 같아요. 우리는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는 국내에서 우리가 처음 뛰어들었고 아직 경쟁자라고 할 기업도 없어요. 이제 시작되는 시장입니다. 할 일은 상당히 명확해졌고, 이미 우리가 잘 하는 것을 변치 않고 잘 해나가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말씀: 원종화 포어시스 대표가 다음 인터뷰 대상으로 추천한 사람은 친환경 패션 테크 기업 쿨베어스의 이민재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