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촉발시킨 전기차 가격인하가 자동차 업계의 ‘치킨 게임’으로 확산될 지 주목된다. 완성차 기업들은 미국 전기차 시장이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이유로 ‘가격 조정’ 카드를 쥔 채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테슬라의 이런 행보를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가 지난달 전기차 가격을 인하하자 포드도 대응에 나섰다.
포드는 지난달 말 자사 전기차 가격을 최대 8.8% 인하했다. 이에 따라 포드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머스탱 마하-E는 트림별에 따라 최대 5천900달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포드 관계자는 “경쟁사에 대응하는 차원에 나섰다”고 밝혔다.
테슬라는 지난달 전 세계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가격을 최대 20%가량 내렸다가 이달 초부터 일부 모델 가격을 다시 인상했다. 가격 인하 이후 판매량이 급증하고 모델Y가 미국 재무부 규정 개정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테슬라 모델Y 롱레인지 가격은 종전보다 1천500달러(2%) 오른 5만4천990달러, 퍼포먼스는 1천달러(2.7%) 더한 5만7천990달러로 책정됐다. 앞서 모델Y는 지난달 가격이 최대 20% 내려갔으나 3주만에 일부 인상된 것이다.
이번 가격인하 정책으로 미국 내 전기차 3위 기업인 현대자동차와 기아도 가격 조정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테슬라와 포드의 가격 조정에 따라 모델Y와 머스탱 마하의 전기차 가격은 각각 약 5만5천달러, 5만4천달러로 내려 갔다. 최대 7천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면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현대차와 기아와 비슷해지는 것이다.
이에 반해 현대차와 기아는 현재 미국 IRA법 발효로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현대차 아이오닉5 롱레인지 모델은 약 4만5천500달러, 기아 EV6 롱레인지는 4만8천70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IRA 규정 개정으로 인해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은 모델Y와 함께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숨통이 트였지만 이와 함께 경쟁 모델인 캐딜락 리릭, 포드 머스탱 마하-E 등도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가격 인하 정책이 시장 전체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은 현재의 전기차 가격이 적정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폭스바겐과 현대차·기아도 가격 조정은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의 경우 동일한 차량의 가격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것”이라면서 “대부분 기업은 동일 차량의 가격은 그대로 두고 신차가 출시될 때 기술개발 비용, 원자재 비용 등을 추산해서 가격이 정해지는 방식이다”고 설명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J.D Power)는 전기차 가격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제이디파워 관계자는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이 커가면서 점유율 확보를 위해 가격 인하를 무기로 삼은 것”이라며 “가격 전쟁까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테슬라 가격 조정이 완성차 기업들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껏 테슬라의 품질에 비해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상황에서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소비자들이 품질에 대한 눈높이가 엄격해지면서 완성도 높은 차를 요구하는게 최근 시장 추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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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테슬라가 품질면에서 부담을 느껴 가격 할인에 들어갔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난 시간에 비해 가격 거품이 꺼져간다고 본다”면서 “테슬라 입장에서도 가격 인하 치킨게임으로 가게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30년에도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30~40%로 정도로 차량 3대 중 2대는 내연기관 차인데 영업이익이 20%에 달하는 테슬라라도 전기차만 판매하는 입장에서 이득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