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네이터2'에는 미래의 반군 지도자가 될 어린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미래에서 온 로봇 T-1000이 등장한다. 액체과 고체 상태를 오가며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미국 카네기멜론공대와 홍콩 홍콩중문대학 연구자들이 T-1000의 극초기 형태가 될 지도 모르는 소프트로봇을 개발했다. 액체와 고체 상태로 원하는대로 바꿔가며 이동시킬 수 있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매터(Matter)'에 25일(현지시간) 공개됐다.
비결은 자성 입자다. 연구진은 녹는점이 29.8℃ 밖에 안 되는 갈륨 금속 안에 자성 입자를 넣었다. 주변 자기장이 변함에 따라 전자기 유도 현상에 의해 열이 발생해 고체 상태인 금속을 액체 상태로 바꿀 수 있다. 또 외부에서 자기장을 가해 내부에 자성 입자가 있는 로봇을 원하는대로 이동하게 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로봇에 '자기 활성 고체-액체 상변이 장치(magnetoactive solid-liquid phase transitional machine)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존의 상변이 로봇이 외부의 열을 이용해 고체와 액체 상태 사이를 오갔다면, 이 로봇은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한다. 또 기존 로봇에 비해 액체 상태에서도 점성이 약해 훨씬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기능을 실증하기 위해 이 금속으로 레고 인형 모양의 작은 로봇을 만들어 감옥과 같은 창살 안에 넣었다. 로봇에 자기장을 가하자 액체 상태로 변하며 창살 사이로 흘러나올 수 있었다. 창살 밖으로 빠져나온 후엔 열이 식으며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이 기술은 몸 안 특정 부위에 약물을 전달하거나, 다루기 어려운 정밀 회로에 납땜을 하는 등의 작업에 활용될 수 있으리란 기대다. 약물이 포함된 로봇을 체내 원하는 위치에서 녹여 약이 작용하게 하거나, 로봇이 몸 안에서 살짝 녹아 외부에서 들어온 이물질을 감싸게 한 후 다시 굳혀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도 있다. 회로 중 손이나 장비가 닿지 않는 부분에 액체 상태로 흘러가 필요한 위치에서 굳는 스마트 솔더링도 연구진은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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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은 이런 로봇이 가능하다는 점만 제시한 극히 초기 단계다. 사람 체온은 37℃ 안팎이기 때문에 이 로봇을 그대로 몸 안에 넣으면 항상 액체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다른 성분을 넣어 녹는점을 조정해야 한다. 자기장을 정말하게 조정해 로봇을 제어하는 것도 과제다.
연구진은 "로봇이 고체와 액체 상태를 오갈 수 있다면 보다 많은 기능을 수행하게 할 수 있다"라며 "이 기술을 의료나 엔지니어링 등에 실제 적용할 수 있도록 추가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