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은 인생의 후반부를 뜻하기도 하지만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 낮과 밤이 만나는 시간,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누군가는 가족의 안정을, 어떤 누군가는 평화를 꿈꾸고, 세상을 떠난 누군가는 남겨진 이들의 안녕을, 모두의 염원이 모여 기적이 이루어지는 곳. 고인돌로 기억되는 사람들의 염원은 반딧불의 형태가 되어 떠오르고, 모두의 염원이 한데 모여 영험한 존재가 되고, 이 영험한 존재는 이곳을 지키며 우리의 염원을 하늘에 전달합니다. 시간을 되돌려 잠에서 깨어난 고인돌과 함께 선사시대 고창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시기를 바랍니다.”(이동희 고창군 학예연구사)
세계문화유산 고인돌유적을 디지털 예술작품으로 표현한 ‘고창 고인돌유적 미디어아트’의 시놉시스다. 전북 고창군은 지난해 고인돌을 활용, 미디어아트를 최초로 제작하여 국내외 관광객에게 선보였다. ‘해가 지면 우리의 염원이 모여 기적이 이루어진다-황혼의 기적’을 주제로 고인돌박물관과 유적지 전체를 거대한 빛의 스크린으로 조성, 황홀한 야경을 선사했다.
2000년 유네스코(UNESCO)에 등재된 한국의 세계유산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 중 고창군은 지난해 10월 미디어아트 기법으로 고인돌을 관광객이 새롭게 경험하도록 했다. 문화재청 국비 공모사업에도 다시 선정돼 2년 연속으로 고인돌 미디어아트를 만난다.
이와 함께 고창군은 지난 2일 ‘2023 세계유산도시 고창 방문의 해’를 선포했다. 고창 고인돌유적, 고창갯벌 등의 풍부한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을 발판 삼아 글로벌 관광도시로 도약한다. 심덕섭 고창군수는 “세계유산도시 고창의 명성에 걸맞은 맞춤형 관광상품을 개발해 1000만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획이다.
그 내용을 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활용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시티투어’를 운영한다. 지역 대표축제들과 연계한 다양한 이벤트와 고창 여행주간 운영 등 ‘고창형 투어’다. 외교사절단, 여행업체, 소외계층 등을 대상으로 세계유산 팸투어를 운영하고, 사진영상공모전, 아이디어 공모 등으로 관광객의 관심을 유도하고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역에 오래 머물며 소비하는 관광으로의 변화도 모색한다. 방문객 호응이 컸던 고창농악 야간 상설공연의 무대가 곳곳으로 확대된다. 또 구시포 해수욕장 야간 버스킹, 운곡습지 반딧불 체험, 전통시장 야시장 등이 운영된다. 10월에는 50주년을 맞는 고창모양성제에 최첨단 문화기술(CT, Culture Technology)을 접목해 화려한 빛 축제를 연다고 한다.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에서는 미디어아트를 연다. 죽림리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동서 1.8km 야산 기슭에 440여 기의 고인돌이 소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10톤 미만에서 300톤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이 분포한다. 바둑판 모양의 남방식, 탁자 모양의 북방식, 천장돌만 있는 개석식 등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의 각종 형식을 갖추고 있어 고인돌의 발생과 성격을 아는 데 매우 중요하다.
세계 고인돌의 절반이 우리나라에 분포한다. 전 세계 고인돌은 약 6만기에 달하는 데 그중 3만여 기가 한반도에 있다. 국내 고인돌 중 전라북도에 분포된 고인돌은 2600여 기 이상이다. 그중 63% 이상인 1680여 기의 고인돌이 고창의 산허리를 장식하고 있다.
고인돌은 거대한 석조로 만들어진 3000년 전의 무덤과 장례 의식 기념물로 선사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나아가 사회구조, 정치체계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청동기말기부터 초기철기시대 당시의 기술과 사회현상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보존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올해 다시 만나게 될 고인돌유적 미디어아트는 고창 방문의 해 사업과 연계하여 진행된다. 이순주 고창군 세계문화유산팀장에 따르면 “고인돌유적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디지털 예술로 관광객이 경험하도록 하고, 방한관광의 핵심 콘텐츠로 전 세계인을 한국에 유치하는 페스티벌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는 최신의 첨단기술이 실감형 공연과 전시 연출과 융합해 ‘아트&테크놀로지’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냈다. 첨단유산으로 재탄생한 지역의 세계유산들도 마찬가지다. 미디어아트를 통해 문화재가 역사의 현장에서 동시대성을 담은 공감력 있는 예술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
문화재 활용이 곧 보존이다. 문화유산은 역사와 전통의 산물이며 우리의 뿌리를 찾아가는 디딤돌로 새로운 문화창조의 샘물이 되어 다양한 열매를 맺는다. 이제 문화재는 지역을 살리는 교두보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관광산업을 넘어 콘텐츠산업의 K-헤리티지(HERITAGE)로 그 가치가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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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미디어아트 프로덕션은 문화재의 장소성, 가치 특성을 담은 스토리 개발이 중요하다. 대중에게 문화재의 의미를 디지털 예술작품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스터플랜 설계가 탄탄해야 한다. 프리 프로덕션이 사업 추진의 50%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야만 문화재 ‘원형 보존’과 ‘가치 확산’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고창군은 ‘고창 방문의 해’ 홍보 확산을 위해 16일 서울 선포식을 진행한다. 지난달 12일 정부 차원에서도 ‘2023-2024 한국방문의 해’를 선포했다. 유구한 고창의 문화유산에 더해진 헤리티지 미디어아트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가고 싶은, 경험하고 싶은 고창의 관광매력이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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