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안팎에서 '누가 한국에서 반도체에 투자하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을 비롯한 경쟁국에서 파격적으로 세금을 깎아주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세액공제율이 8%로 결정났기 때문이다.
26일 국회에 따르면 일명 '반도체특별법(K칩스법)' 중 하나인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원안, 정부 제출)에 대한 수정안이 지난 23일 밤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획재정부는 반도체 대기업이 시설에 투자하는 금액의 8%를 세액공제하자는 안을 제출했다. 재정에 부담된다며 현행 6%에서 2%포인트만 높였다. 중견기업(8%)과 중소기업(16%) 세액공제율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장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정부의 조특법을 부결시켜달라”고 반대 토론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2030년까지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은 6%→20%, 중견기업은 8%→25%, 중소기업은 16%→30%로 대폭 상향하자는 안을 냈다. 여·야가 합의하지 못해 정부 의견이 반영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 특혜라며 10%만 해주자고 했다.
양 의원은 “정부는 기재위 의결 절차도 없이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 중 가장 중요한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을 8%로 완전히 후퇴시켰다”며 “투자분의 25%를 세액공제 해주는 미국 등 국제 표준에 역행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를 가장 원하는 곳은 중소·중견기업”이라며 “정부의 뒷걸음질은 반도체 기업에 한국 탈출 허가증을 발급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을 한국에서 쫓아내고 한국을 반도체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어내는 정책”이라며 “한국 반도체 산업 사망선고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미국이 파격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자 마이크론 120조원, 삼성전자 260조원, SK하이닉스 29조원 등 미국으로 대형 반도체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산업계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기업은 투자할 곳을 정할 때 세금을 우선 생각한다”며 “기업이 떠나면 국가 경쟁력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 부회장은 “미국에서 세금 깎고 보조금 주니 기업이 벌써 이탈하는 게 눈에 보인다”며 “정부는 세수가 중요하다지만 기업은 세금 적게 내는 곳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회 결정에 아쉽다는 성명을 내놨다. 전경련은 국회와 정부가 단기적인 세수 감소 효과에 매몰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첨단산업 시설 투자 세액공제 비율을 높이면 한국이 미래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고 산업과 기업이 성장해 지속적으로 세수를 늘릴 수 있다는 장기적인 관점을 피력했다.
미국은 자국에서 반도체 설비에 투자하는 기업에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대만 정부는 자국에 본사를 둔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15%에서 25%로 높이는 산업혁신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본은 구마모토에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Foundry·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려고 건립 비용의 절반을 대기로 했다. 중국은 고급 반도체 생산 공정에 법인세를 면제한다. 인도는 반도체 투자 비용의 30~50%를 지원한다.
대기업 세액공제율 8%가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다.
관련기사
- 반도체 시설투자에 8% 세액공제…국회 본회의 통과2022.12.24
- 전경련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 8% 아쉽다"2022.12.25
- 반도체법, 산자위 통과…K칩스법 '청신호'2022.12.15
- 국힘 반도체특위 "기업 투자 세액공제 30%까지 확대"2022.08.02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주 국회 본회의장에서 표결에 앞서 “조특법은 반도체 같은 국가전략기술 투자에 세제 지원을 확대한다”며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높인다”고 발표했다.
개정안에 찬성 의견을 낸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이 반도체 투자에 높은 세액공제율을 적용하는 것은 생산 비용이 매우 비싸기 때문”이라며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특수성도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