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일명 문재인 케어를 두고 공방이 오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문케어를 폐기할 것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논쟁의 진위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제도가 정쟁의 대상으로 비화돼 전 정부와 현 정부의 대결 소재로 소비되는 형국이다.
지난 19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통령이 국무회의나 지난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말한 것은 건강보험에 남용과 자격도용 등 비정상적인 지출수요를 없애서 국민들에게 진짜 필요한 의료서비스지원에 돌리겠다는 말이었다”며 “국민이 낸 보험료로 꼭 필요한 의료적 수요를 충족하면서 제도가 지속가능하게 운영하는 것이 저희들(복지부)의 목표”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문재인 케어 비판 발언을 쏟아낸 것에 대해 관련 주무부처였던 복지부 수장으로써 입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는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의 발언은 이랬다.
“문재인 케어로 악화된 건강보험 정상화가 시급하다”,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의료 남용과 무임승차 방치로 대다수 국민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키고 건강보험 제도의 근간을 해칠 것” 등.
이 말은 즉각 후폭풍을 가져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 보복을 위해 아픈 국민의 치료비를 깎는다”고 비판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재정을 절감하겠다며 보장성을 축소하고 의료비를 인상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대다수 시민들과 환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민영의료보험과 민간병원만 살찌우겠다는 선언”이라고 반발했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은 “의료사각지대 지원에 대한 정책적 방향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며 “의료민영화가 최종 종착지가 아니냐”고 맹비난했다.
사실 대통령의 건보 관련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일 복지부가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 합리화 관련 발표를 두고도 윤 대통령은 “건강보험 개편의 첫발을 뗐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시절에도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윤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쪽은 현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대표 제도였던 문케어를 흠집 내려 한다고 말한다. 아니,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모든 제도는 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지속적인 개선이 요구된다. 현재 복지부가 밝힌 문케어 제도의 개선 방향은 의료 과잉 이용으로 인한 재정 누수를 예방한다는 차원이다. 복지부는 이밖에도 지출 효율화를 시작으로 전달체계 개선, 수가 개편, 투명성 제고 방안 등도 하겠다고 한다. 이는 과거 문케어 추진 당시에도 예상됐던 역작용 최소화 대책들이었다.
세간에 도는 ‘의료영리화’라든지 전 정부 흠집 내기 등의 불만을 불식하려면 복지부는 약속한 제도 개선을 제대로 추진하면 된다. 개선 진행 와중에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하면 다시 개선을 하며 유연하게 대처하면 된다. 정책과 제도는 그렇게 발전한다.
정작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대통령의 입이다. ‘포퓰리즘’이나 ‘정상화’, ‘국민혈세 낭비’ 등 거친 발언은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한다기 보다 전 정부 지우기로 비쳐진다. 대통령 스스로 제도가 정쟁의 소재로 비화되도록 불을 지르고 있다.
앞선 복지부 장관의 말처럼 언제까지 관료들이 대통령 발언의 속뜻까지 살피며 해명을 해야 하나. 지금 이 순간에도 복지부는 대통령의 말이 가져오고 있는 제도 혼란과 반발을 가라앉히기 위해 해명의 해명을 거듭하고 있다. 소모적이다.
제도 추진은 국민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 때론 정치가 요구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정쟁을 부채질하는 거친 말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