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의 카이랄 성질을 쉽고 정밀하게 측정·분석하는 방법을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카이랄이란 서로 거울상 대칭이지만 겹쳐지지는 않는 구조를 말한다. 왼손과 오른손은 거울에 비치면 같은 모습이지만, 실제론 왼손을 아무리 회전해봐도 오른손과 같은 모양으로 겹칠 수 없는 것과 같다.
분자 구조는 카이랄성을 띠는 경우가 많으며, 카이랄성의 독특한 기하 구조에서 비롯되는 화학 반응성과 구조 선택성은 다양한 생명 현상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친다. 카이랄 구조가 화학이나 생물학, 의약 등에서 많이 연구되는 이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서울대학교 남기태 교수, 고려대학교 이승우·박규환 교수 공동연구팀이 카이랄 나노 입자 기반 빛-물질 간 상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물리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생체 분자 및 그들의 카이랄성 분석에 성공적으로 응용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과기정통부 미래소재디스커버리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으며, 15일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분자의 카이랄성은 좌우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두 원편광을 흡수하는 정도 차이를 통해 분석할 수 있다. 생체 분자는 구조와 재료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빛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이랄성 분석을 위해선 고농도 시료를 오랜 시간 측정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수 나노미터 수준인 분자와 수백 나노미터 수준인 빛의 크기 차이로 인해 둘 사이 상호작용이 충분히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조사되는 빛, 즉 원편광과 분자 간 상호작용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았다. 남기태 교수 연구팀이 2018년 개발한 카이랄 금 나노 입자를 활용했다. 이 금 나노 입자는 카이랄 구조 덕분에 원편광을 쬐었을 때 단지 빛을 머금는데 그치지 않고 원편광에 대한 특이적 상호작용을 한다.
이번에 연구팀은 금 나노 입자를 2차원에 정밀하게 배열하면, 원편광을 받은 나노 입자 간 상호작용을 통해 공진 특성이 단일 입자를 넘어 표면 전반으로 확산됨을 새로 발견했다.
기판에 지름 100㎚, 깊이 300㎚ 구멍을 400㎚ 간격으로 뚫어 카이랄 금 나노 입자를 넣었다. 이어 기판 위에 조성은 같지만 카이랄성이 반대인 분자를 올려 빛을 쬐자 흡수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카이랄 금 나노 입자의 2차원 조립 구조를 통해 입사되는 원편광의 방향성과 에너지를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렇게 보존된 에너지는 아주 작은 카이랄 분자와도 크게 상호작용하며, 이 같은 상호작용은 입사되는 빛의 흡수도 차이로 발현됨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기존 광학계의 카이랄성 검출 한계를 뛰어넘는 카이랄성 민감도를 달성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단순 분자뿐 아니라 DNA 혼성화나 단백질 구조 변화에서 나타나는 카이랄성 변화도 이 방법으로 검출했다.
또 이런 흡수도 차이로 인한 카이랄 신호 증폭이 가시광 대역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 특별한 도구 없이 육안으로 분자의 카이랄성을 구분하는 카이랄성 센서 방법론을 제시했다.
카이랄 금 나노 입자 배열 기반의 초고민감도 분자 카이랄성 분석은 다양한 생체 분자, 화학 약품, 의약품의 카이랄성 분석에 이용될 수 있다. 생체 재료 합성 및 물질 분석이 중요한 분석학, 진단학, 약학 등 다양한 산업뿐만 아니라 화학, 생물학, 물리학 등 기초 학문 분야에도 파급이 크리란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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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태 서울대 교수는 "대한민국 연구진이 함께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라며 "새로운 소재 개발 등 후속 연구를 통해 초격차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업을 탄생시키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카이랄 금 나노 입자 격자의 광 특성과 분자 카이랄성 민감도에 대한 전자기학 시뮬레이션과 새로운 물리적 이론을 구축한 고려대 이승우, 박규환 교수는 "생체모방 재료공학과 전산나노광학의 창의적 융합을 통해 카이랄 분자 센싱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