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차세대 카이랄 소재 개발 길 열었다

화학과 서명은 교수 연구팀, 카이랄 초분자 형성 원리 규명

과학입력 :2022/02/16 13:59

왼손을 거울에 비추면 오른손과 모양이 같다. 하지만 왼손을 아무리 회전해봐도 오른손과 같은 모양으로 겹칠 수는 없다. 이렇게 모양은 같지만 서로 겹칠 수 없는 거울상이 존재하는 경우 카이랄성을 띤다고 한다. 화학이나 생물학에서는 분자 구조가 카이럴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카이랄성을 띤 거울성 이성질체는 의약품 개발 등에도 중요하다. 약효를 내는 성분의 거울성 이성질체는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분자의 카이랄성을 감지하는 센서가 필요한 이유다. 

카이랄성을 가진 분자의 예 (지료=위키피디아)

나아가 카이랄성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생명은 한 종류의 거울상 아미노산만 선택해 단일한 카이랄성을 띠게끔 진화했다. 처음에는 양쪽 거울상이 모두 있었을 텐데, 차츰 한쪽 비율이 높아진 과정은 생명의 진화 과정을 규명할 열쇠 중 하나다. 

이같은 카이랄의 탄생과 증폭 과정을 풀 실마리를 제공하는 연구가 나왔다. KAIST(총장 이광형)는 화학과 서명은 교수 연구팀이 분자 자기조립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통해 빛으로부터 초분자 나선 방향이 결정되는 원리를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 카이랄 탄생과 증폭 과정 규명 실마리 찾아

시계 방향 혹은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나아가는 빛인 원편광은 거울상 분자 쌍 중 한쪽 비율을 높게 만든 요인으로 거론된다. 거울상 분자가 원편광을 흡수하는 정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편, 초분자란 둘 이상의 작은 분자들이 모여 생성된 거대한 분자들의 집합을 말하며, 효소 등 기능성 생체 분자도 초분자로 볼 수 있다.

연구진은 빛에 반응해 스스로 조립되는 프로펠러 모양의 분자를 찾고, 분자와 빛에 담긴 카이랄 정보가 초분자 나선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각각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자기조립체에서 초분자 카이랄성이 발현되는 메커니즘 모식도 (자료=KAIST)

원편광 회전 방향과 분자 프로펠러 방향이 맞을 때에는 광화학 반응이 우세하게 일어나고, 이는 자기조립을 유도해 정해진 나선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쪽 거울상 분자가 더 많은 조건에서 원평광을 쬐어 나선 방향이 어느 쪽을 따라가는지 살핀 결과, 양자의 정보가 일치할 때 초분자 카이랄성이 증폭되고 반대일 때에는 상쇄되었다. 빛으로 분자 카이랄 정보를 눌러 나선 방향을 반전할 수 있음도 보였다. 

또 거울상 분자가 일정 비율 이상 축적되면 빛과 관계 없이 단일한 나선 방향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초분자 카이랄성이 증폭되고 상쇄되는 거동의 요약. 거울상 분자가 8% 임계점을 넘자 나선 방향이 고정됨을 볼 수 있다. (자료=KAIST)

카이랄성을 지닌 분자를 초분자 혹은 그 이상의 거시적 스케일로 조립해 각 단위에서 모두 카이랄성을 띠게 하는 멀티스케일 카이랄 구조체 기술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나 의약품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 차세대 먹거리 멀티스케일 카이랄 신소재 개발 기반 마련 

현재 원편광을 선택적으로 걸러내는 소재는 OLED나 3D 안경 등 디스플레이 분야에 널리 쓰인다. 원편광을 내는 재료도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초분자 나선 구조는 개개 분자에 비해 원편광을 훨씬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방출할 수 있다. 따라서 멀티스케일 카이랄 구조체를 구현하면 카이랄성을 극도로 증폭하는 소재를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멀티스케일 카이랄 구조체는 원하는 효과를 내는 한쪽 거울상만 만들어 내는 비대칭 합성에도 유용하다. 약물로 쓰이는 화합물에서는 반대 거울상 분자가 기형 유발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한쪽 카이랄성만 갖도록 합성하는 것이 필수다. 멀티스케일 카이랄 구조체는 비대칭 합성에서도 강력한 카이랄 환경을 제공, 입체 선택성이 높은 촉매를 제조하거나 거울상 분자를 효과적으로 검출하는 센서를 만드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빛에 담긴 비대칭성이 어떻게 분자 및 초분자 수준으로 전달되고 증폭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으며, 분자에 담긴 정보와 별개로 초분자 카이랄성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라며 "이번 연구를 발판으로 카이랄 광학 소재, 비대칭 촉매 등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멀티스케일 카이랄 신소재 개발로 연구를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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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화학과 서명은 교수(왼쪽)과 강준수 석박사통합과정생 (자료=KAIST)

KAIST 화학과 강준수 석박사통합과정 학생이 제1 저자로 연구를 주도하고, 화학과 김우연 교수, 임미희 교수, 윤동기 교수 연구팀이 협업한 이번 연구 결과는 학술지 '미국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게재됐다. 논문명은 Circularly Polarized Light Can Override and Amplify Asymmetry in Supramolecular Helices이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선정 선도연구센터인 KAIST 화학과 멀티스케일 카이랄 구조체 연구센터의 지원을 받아 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