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3년이라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 지난 9~11월 전국 각지에서 열린 ‘세계유산 미디어아트’가 K-콘텐츠 확산의 시금석이 됐다.
문화재청과 전국 8개 지역의 관련 지자체, 그 협업기관이 문화유산관광의 꽃으로 세계유산과 첨단기술이 융화한 산책형 야외 미디어아트를 제작, 운영했다. 이 사업의 가장 큰 의미는 문화재 고유성을 담아 저마다의 디지털 문화유산으로 구현해 사람을 위로하는 예술작품으로 다가갔다는 점이다. 또, 문화재를 새롭게 바라보는 디지털 경험을 제공했다는 것에 있다.
지역별 약 한 달간 실외에서 개최된 페스티벌 형식의 미디어아트는 코로나19의 위험환경인 밀접·밀집·밀폐를 차단하며 연출은 야외에 설치하는 개방형, 관람은 도보로 감상하는 분산형 방식으로 문화재 원형을 보존하며 누구나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진행됐다.
특히 침체한 관광산업 재개에 교두보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미디어아트 개최장소에 시민, 관광객의 방문이 이어지며 문화재 주변 상권의 체류형 야간관광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했다. 또, 코로나 종식 후의 외래 관광객 유치를 위한 사전 해외 홍보마케팅으로 각 지역 세계유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전 세계 한류 팬에게 온라인으로 연결해 방한 관광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세계유산 미디어아트’의 탄생
이 사업의 추진배경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20년이다. 당시 코로나19에 따른 환경 변화와 디지털 전환기를 맞아 문화유산 활용 프로그램도 개방된 공간에서 첨단기술로 문화재를 새롭게 누릴 수 있는 야외 관람형 콘텐츠의 개발 필요성이 대두했다.
미디어아트는 프로젝션맵핑,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인터랙티브 아트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여 선보이는 복합매체예술을 말한다. 문화재 가치를 확산하고 새롭게 즐기도록 할 아이템을 탐색하던 문화재청은 무한한 상상력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인 미디어아트에 그 가능성을 주목했다.
문화재청은 이미 2012년 경복궁 경회루, 덕수궁 중화전의 프로젝션맵핑을 계기로 2013~2014년 광화문 미디어파사드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이어 2015~2016년에는 경복궁 흥례문, 덕수궁 석조전으로 옮겨 보다 화려하고 입체적이며 내러티브가 있는 한 편의 미디어공연을 연출하여 그 쇼를 감상하려는 사람들의 발길로 수도 서울의 미디어아트 열풍을 이끌었다.
특히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프로젝션맵핑 기반 미디어파사드가 미디어아트쇼의 성공모델이 돼 전국의 지자체 공무원이 벤치마킹하는 대중화의 시발점이 됐다. 그로부터 각 지역에서도 ‘문화재 야행’ 사업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미디어아트가 시작돼 오늘날 문화유산과 도심에서 감상하게 되는 일상의 문화콘텐츠가 됐다.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문화재에 미디어·디지털·IT 기술을 접목하여 지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더욱 쉽게 알리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또한, 첨단기술을 세계유산에 융합하여 국민들에게 다변화된 문화재 향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계유산 미디어아트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세계유산을 재발견하도록 하고, 문화재 활용을 통해 문화재 인근 지역을 도시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역별 문화유산 거점 조성을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지자체 문화유산관광 진흥사업 지원이다. 궁극적으로는 지역경제‧관광산업 활성화의 모델로 구축하여 지속가능성이 있는 문화재 활용의 미래가치를 파급한다.
올해 전국 8개 지역에서 열린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관찰기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2021년 수원화성 등 5개 지역 개최를 시작으로 2차연도인 올해 전국 8개 지역에서 진행됐다. 지역별 유산의 특성에 맞게 디지털 워킹 투어, 미디어파사드, 실감형 콘텐츠, 인터랙티브 아트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운영됐으며, 야간 디지털 산책 형식의 페스티벌로 진행됐다. 수원화성과 백제역사유적지구(공주·부여·익산)가 지난해에 이어 2회를 맞았고, 고창 고인돌 유적, 양산 통도사, 함양 남계서원,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처음으로 개최됐다.
▲익산 미륵사지 =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하기 전, 전국 8개 지역의 첫 개최지로 익산 미륵사지가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페스타를 최응천 문화재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9월 3일 개막했다. 익산 미륵사지는 빈 공간의 무빙스크린(길이 60m, 높이 10m)과 동-서탑을 스크린으로 연결, 하나의 화면으로 확장한 130m 길이의 웅장한 초대형 미디어파사드를 연출했다.
낮에는 자연환경과 문화재 경관을 유지하고 밤에는 피사체로 활용하여 헤리티지 미디어파사드의 압도적 스케일을 확보, 지난해 문제점으로 제기됐던 스크린 시야와 관람 몰입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또 라이브 미디어퍼포먼스와 XR(확장현실) 퍼포먼스로 실감성을 강화했다. 이를 위해 익산시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문화유산과의 전담 학예연구사를 중심으로 전문가 그룹 기획운영단(총괄계획가-예술감독-공연감독-기술감독)을 구성, 시행사와 함께 실시설계를 비롯하여 스토리 구성과 콘텐츠 제작, 시공-연출-감리까지 미디어아트 제작 전반을 이끌었다.
▲양산 통도사 = 태풍 피해 복구와 시설물 재설치로 미뤄졌던 양산 통도사는 9월 16일 개막했다. 디지털 미디어아트 맵핑, 빛 오브제, 디지털 민화 특별전으로 무풍한송로와 성보박물관 일대를 11개의 콘텐츠로 가득 채웠다. 미디어파사드는 화엄으로의 첫걸음에서부터 종착지까지의 여정을 반야용선도, 구룡지, 금강계단 등 통도사의 대표적인 보물과 창건 설화를 표현했다.
이외에도 자장매, 법륜, 만다라 패턴으로 다이내믹한 모션그래픽과 아름다운 길 무풍한송로에 인터랙티브, 만다라 레이어 스크린 등 화엄세계로 안내하는 ‘내 안의 부처를 찾는 여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 9월 16일 개막한 부여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은 완성도가 한층 높아졌다. 부여군이 올해는 주관기관 없이 총감독을 선임, 직접 운영하여 사전에 전체적 기본계획과 프리 프로덕션에 공을 들였다. 5팀의 미디어아티스트들과 협업해 1코스 ‘사비연’에서 부소산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디어파사드를 선보였고, 2코스 ‘사비혼’은 울창한 산림이 우거진 부소산성 산책로를 따라 체험할 수 있는 코스로 구성했다.
마지막 3코스 ‘사비경’에선 대형 돔 미디어영상관을 설치, 몰입감 있는 영상을 상영했다. 사비백제의 이야기가 짜임새 있게 연계된 3개의 테마코스를 통해 최첨단 디지털 미디어아트로 세계유산을 재해석했다.
▲공주 공산성 = 공산성 미디어아트는 9월 17일, 지난해에 이어 ‘백제연화Ⅱ’로 해상왕국 대백제의 위상을 첨단 디지털 기술로 화려하게 개막했다. 주관기관이 지난해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서 올해는 공주문화재단으로 변경됐다. 한류 원조 격인 백제에서 불었던 문화의 물결이 오늘날 신한류로 거듭나 전 세계로 뻗어가는 내용을 담았다.
웅진백제 당시 주변국들의 침략에 맞서 당당히 해상항로를 개척한 백제인들의 기상을 모티브로 한 미디어파사드를 웅장하게 펼쳤다. 또, 성안마을에 국제성과 독창성으로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가교 역할을 한 백제의 아름다움을 가든 레이저쇼, 조형물, 대형 LED패널로 연출했다.
▲수원화성 = 수도권 유일의 개최지인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쇼는 9월 23일 개막하여 10월 23일까지 한 달간 41만여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며 역대급으로 개최됐다. 화홍문 실경을 전방위적으로 활용한 첨단 다면 미디어아트쇼(유료 특별관람석 설치)를 비롯하여 화홍문과 남수문, 그 사이를 잇는 1.1km 구간의 문화재 인근 지역이 방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불 꺼졌던 골목 식당과 카페, 공방, 전통시장 등 주변 상권이 활기를 띠며 역사(문화재)·야경(관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해부터 수원시 관광과, 수원문화재단이 연출제작단(단장, 아트‧미디어‧디지털‧테크니컬 디렉터)과 함께 미디어퍼포먼스 무용단 1팀, 국내외 미디어아티스트 8팀, 수원천 기획작가 2팀, 공모전 선정 작가 6팀, 분야별 협력업체와 합력하여 추진했다. 미디어아트 사업에 있어,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구성과 제작, 설계와 연출, 예술가 협업 등 차별화된 제작시스템을 구축했다.
▲함양 남계서원 = 한국의 서원 9개 중 유일하게 진행된 함양 남계서원은 9월 30일 왕이 내려준 사액을 축하하는 봉안례 재연을 시작으로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개최기간 남계서원 풍영루에서 매일 저녁 미디어파사드 및 레이저 특수효과를 활용한 메인 미디어아트 공연을 펼쳤다. 서원 내부에도 미디어아트를 설치하고, 서원 교육의 가치를 전달하는 인터랙티브 안내책자 등 실감형 콘텐츠를 운영했으며, 남계서원 둘레길에는 다양한 조명과 음악, 영상을 통해 관람객들이 휴식 및 사색을 누릴 수 있도록 조성했다.
▲고창 고인돌 유적 = 한국의 세계유산 중 2000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중 고창이 10월 1일 처음으로 미디어아트를 개최했다. ‘해가 지면 우리의 염원이 모여 기적이 이루어진다 - 황혼의 기적’을 테마로 고인돌박물관과 유적지 전체가 거대한 빛의 스크린이 돼 프로젝션맵핑과 레이저, 음향효과를 활용해 신비롭고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창 고인돌박물관 앞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계산리고인돌(90톤)에는 시간을 돌리는 기적을 표현해 빛 수호신과의 만남을 연출했다.
고인돌다리를 건너 유적지까지 가는 길은 은하수와 반딧불 조명으로 산책로를 환하게 비추고, 그곳을 지나 만나게 되는 수백 개의 고인돌이 펼쳐져 있는 언덕에서 수백 톤의 돌을 나르며 부족의 영광과 하늘의 은혜를 바랐던 선사인들의 염원을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되살렸다.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 마지막으로 세계자연유산 미디어아트 「거문오름용암동굴게의 탄생」은 11월 12일 개막하여 이번 주 일요일인 12월 11일 폐막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만장굴 내 공개구간에서 대자연의 신비와 자연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이해·보전하기 위해 미디어맵핑 기술을 융합한 미디어쇼 연출과 관람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만장굴 4개의 공개구간에서 자연유산이 갖고 있는 자연·생태적 요소와 친환경적 미디어맵핑 기술이 융합돼 동굴 원형이 훼손되지 않는 도슨트 투어 형식으로 매일 낮 8회를 진행한다.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K-헤리티지를 넘어 K-미디어아트로
1999년,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 의해 채택된 ‘중요한 유적지에서의 관광관리를 위한 국제문화관광헌장’을 보면 문화유산은 종래 보존이나 효율적인 관리 상태 외에도 관광자원으로서의 활용이 강조된다. 2003년에는 유네스코가 ‘디지털 유산 보존에 관한 헌장’을 통해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디지털로 보존, 연구, 응용하고 콘텐츠로 보급하는 역할로서의 ‘디지털 헤리티지’ 정의를 구체화한 바 있다.
디지털 문화유산은 실감콘텐츠와 메타버스의 등장으로 콘텐츠를 실제적 느껴질 수 있도록 구현하거나 체험과정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XR(확장현실) 기술을 통해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디지털 문화유산으로 재탄생한 세계유산 미디어아트는 역사의 현장에서 동시대성을 담은 공감력 있는 콘텐츠로 대중과 소통한다. 인공지능(AI), 혼합현실(MR), 확장현실(XR) 등 우리는 메타버스 시대를 살고 있다. 문화예술 현장에서도 최신의 첨단기술이 실감형 공연·전시 연출을 위한 아트&테크놀로지로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문화재정책의 패러다임이 기존의 원형 보존 중심에서 이제는 향유를 위한 ‘가치 확산’까지 범위가 확장됐다. 문화유산이 지역의 활력을 높이는 재생과 회복의 징검다리가 돼 문화유산관광으로 지역경제의 불빛을 밝히고 있다. 미디어아트형 디지털 헤리티지인 세계유산 미디어아트의 존재 이유다.
2023년에는 새로운 지역 3곳이 진입했다. 경주역사유적지구 대릉원(신라 고분군)과 함안 말이산 고분군(아라가야 고분군), 강릉대도호부 관아(고려시대~조선시대 지방관아)에서 미디어아트를 만나볼 수 있다. 앞으로 대상 문화재 가치와 역사적 스토리, 최신의 첨단기술을 어떻게 융복합하여 지역의 관광산업을 선순환하도록 할지가 중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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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8~9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올해 결과를 평가하고 내년 계획을 함께 논의하는 문화재청 주관 ‘전국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지자체 통합워크숍’이 개최된다고 한다. 각 지역의 문화유산을 디지털캔버스로 미래의 빛을 펼친 전국 8개 지역의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담당 공무원, 협업기관, 감독단, 아티스트, 시행사, 협력업체 등 모든 관계자 여러분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전한다.
세계유산 미디어아트는 문화재를 문화재 자체로의 이미지만 갖고 있던 대중에게 그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느끼도록 하는 실감형 문화재 체험이다. 헤리티지 익스피리언스(Heritage Experience)다. K-헤리티지를 넘어 K-미디어아트가 이제 대한민국의 소프트파워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