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자인 내가 여전히 '월드컵'에 관심 갖는 이유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월드컵과 IT 혁명, 그리고 축구

데스크 칼럼입력 :2022/12/06 16:49    수정: 2022/12/09 09:2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6일 열린 브라질과의 월드컵 16강전에서 1대4로 완패했다. 이 경기와 함께 길거리 응원을 비롯한 열광적인 응원은 끝을 고하게 됐다.

물론 요즘 축구팬들의 눈높이는 꽤 높다. 국가대항전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 클럽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선진 축구를 만끽하는 고급 축구팬들도 꽤 있다. 

하지만 대다수 팬들에겐 한국 대표팀의 탈락은 곧바로 월드컵 사랑의 끝을 의미한다.

나는 축구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새벽 4시에 열린 브라질과 16강전도 그냥 건너 뛰었다. 출근에 지장을 줄 정도로 새벽잠을 설치면서 축구를 볼 생각은 없었다. 동료들이 하는 가벼운 내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사진=FIFA)

한국 대표팀 탈락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월드컵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끝난 걸까?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새로운 관심이 스물스물 솟아난다. 내 속에 들어 있는 ‘얼치기 IT 기자 본성’이 살짝 꿈틀거리는 걸 느낀다.

■ 화제가 됐던 월드컵 공인구 충전 장면 

카타르 월드컵은 개최지 선정 단계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금품 수수 의혹을 비롯한 온갖 잡음으로 요란했다. 경기장 건설 때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까지 심각하게 부각됐다. 자세한 내용은 월드컵 개막에 맞춰 넷플릭스가 공개한 ‘피파 언커버드’란 다큐멘터리를 참고해보시라.

그렇다고 국제축구연맹(FIFA)의 비리나 카타르의 인권 문제를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그건 나 같은 얼치기 IT 기자의 몫이 아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번 월드컵이지만, IT 기술 혁신이란 측면에선 꽤 관심을 가질만하다고 판단했다. 그 얘기를 잠깐 하려고 한다. 

잡음 속에 개막된 이번 대회는 축구와 기술의 행복한 결합을 목격할 수 있었던 점에서 꽤 인상 깊었다. 개막 경기부터 반자동 오프사이드 기술(SAOT)이 위력을 발휘했다. 비디오 판독(VAR)과 골라인 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SAOT를 통해 축구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 더 눈길을 끈 것은 월드컵 공인구인 ‘알릴라’다. 아랍어로 ‘여행’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 올라온 사진. 월드컵 공인구 알릴라를 충전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얼마전 영국 데일리메일이 월드컵 공인구 충전 장면을 담은 사진을 소개해 화제가 됐다. 많은 사람들은 축구공을 충전한다는 게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경기 전 튜브로 바람을 넣는 모습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월드컵 공인구인 알릴라가 몰고 온 변화는 그만큼 컸다. 이젠 축구공 자체가 첨단 IT 상품이 됐다. 

아디다스가 만든 ‘알릴라’에는 관성측정센서가 탑재돼 있다. 이 센서는 초당 500회씩 공의 속도, 방향 같은 것들을 정밀 추적한다. 센서 무게는 14그램에 불과하다. 센서는 배터리로 작동하며, 6시간 정도 작동한다. 공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18일 정도 지속된다.

이 자료들은 VAR 판정의 기초가 된다. 공이 교체되면 백엔드 시스템이 자동으로 새로운 공의 데이터를 받게 된다. 이 작업에는 사람 손을 거치지 않는다.

새로운 건 관성측정센서 때문만은 아니다. 알릴라는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이다. FIFA는 “지금까지 나온 공인구 중 가장 빠르고 정확한 공이다”면서 “파격적인 혁신을 통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이런 혁신이 가능했을까?

■ 야구 바꿔놓은 메이저리그의 데이터 혁명…축구에선 어떤 결과?

외신들에 따르면 알릴라는 수성잉크와 접착제를 사용했다. 덕분에 속도는 더 빠르면서도 피부에 닿을 때는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또 20개 패널을 통해 공기역학을 향상 시키면서 흔들림을 줄였다.

덕분에 공의 비행 속도와 회전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카타르 월드컵은 개막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하지만 최소한 기술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진전을 이뤄낸 대회로 기억될 것 같다. 그 중심에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충전해서 쓰는 공인 ‘알릴라’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몇 년 전부터 경기장에 트랙맨을 비롯한 추적시스템을 설치했다. 그 결과 미세한 공의 움직임을 담은 데이터가 축적됐다. 이런 데이터 혁명 덕분에 정교한 수비 시프트가 일상화 됐다.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에는 키넥슨이 개발한 센서가 탑재돼 있다. (사진=키넥슨)

이런 흐름은 공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발사각 26~30도, 타구속도 98마일(약 158㎞) 이상 타구를 ‘배럴 타구’로 정의하게 됐다. 그 때부터 미국 프로야구에선 ‘뜬 공 혁명’이 본격화됐다.

이번 월드컵의 기술 혁명이 관심을 끄는 건 이런 점 때문이다. 밀리미터 단위까지 잡아내는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이 도입되면서 각 팀은 새로운 환경에 맞춘 축구를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더 기대되는 건 ‘데이터 혁명’이 몰고 올 변화다. 선수들과 공의 움직임을 정밀 측정한 데이터가 축적될 경우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축구를 보게 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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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번 대회의 기술 혁명은 축구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까?

얼치기 IT 기자인 내겐 기술 변화가 초래할 축구 트렌드 변화까지 읽어낼 능력은 없다. 다만 앞으로는 저 질문에 초점을 맞춰서 남은 기간 월드컵 경기를 즐길 생각이다. 딱히 승패에 맘 졸일 일도 없으니, 좀 더 편안하게 축구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건 ‘덤으로 얻은 축복'일 수도 있겠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