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반도체는 이제 사회와 산업의 생명수이자 권력입니다. 모든 것을 움직이고 연결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멈추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1960~1970년대 노동집약적인 우리 경제를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킨 반도체가 이제 기술 패권 경쟁과 4차 산업혁명 속에 새로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확장은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창간 22주년을 맞아 '반도체가 미래다' 시리즈를 3부에 걸쳐 연재합니다. 우리 수출 산업의 첨병을 넘어 경제 안보 자산으로 평가받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면밀히 짚어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1부: 세계는 반도체 전쟁
2부: 한국 반도체 신화는 계속된다
3부: 전문가에게 듣는다
최첨단 반도체 시장은 대만, 한국, 미국에 이어 최근 일본까지 가세하며 다각화됐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한국의 파운드리 경쟁력을 높이려면 국내 팹리스 기업을 함께 성장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더불어 최근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는 반도체뿐 아니라 아날로그 반도체에도 정부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또 기업과 학계가 연계해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15일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 2023 한국 간담회에서는 '대한민국 반도체의 현주소, 강점과 약점, 그리고 위기와 기회'라는 주제로 국내 반도체 산업을 진단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에는 이종우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상무, 김동균 SK하이닉스 펠로우, 류수정 사피온 대표, 최재혁 KAIST 교수, 제민규 KAIST 교수, 백지선 부산대학교 교수, 김지훈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민병욱 연세대학교 교수, 이정협 DGIST 교수,(사회자), 배준성 강원대학교 교수 등 반도체 전문가 10인이 참여했다.
파운드리·팹리스 동반성장 필요…정부, 아날로그 반도체도 지원해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70% 점유율로 최강이지만,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1~2% 점유율로 미흡한 수준이다. 지난 2분기 기준으로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점유율 2위(16%)지만, 1위 TSMC(53%)과 점유율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게다가 미국 인텔까지 파운드리 시장에 진출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종우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상무는 "국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파운드리 쪽에만 너무 집중된 것 같다. 파운드리 경쟁력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팹리스 시장이 함께 커져야 한다"며 "팹리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파운드리보다 저조한 것 같아 이 부분에 훨씬 더 관심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파운드리 공정 기술은 설계 능력과 결부돼서 피드백 받고, 설계에 필요한 인풋을 받으면서 굉장히 빨리 성장하는 구조"라며 "이를 위해서는 설계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일본은 뒤늦게 시스템반도체를 양성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가 나섰다. 지난 11월 토요타, 소니, 키오시아,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 8개사는 반도체 회사 '래피더스'를 설립해 2027년까지 2나노미터 공정의 칩을 양산한다는 목표다.
이 상무는 "일본이 '래피더스'를 설립한 것은 연합체를 만든 것"이라며 "직접 파운드리 산업에 뛰어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설계 회사들이 힘을 합쳐서 파운드리를 끌어오고,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움직임이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 정부도 시스템반도체에 많은 관심과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특정 분야에만 집중된다는 점이 아쉽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아날로그 반도체 등의 기술에 투자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재혁 KAIST 교수는 "정부의 펀딩(지원)이 트렌드 있는 반도체 분야에만 편중되고, 그 분야에만 개발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라며 "국내에서는 아날로그 반도체,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런 영향으로 ISSCC 학회의 아날로그 반도체 분야에서도 한국의 논문 패스가 줄어들고 있다"며 "새로운 기술이 아니더라도 밑단에서 핵심이 되는 칩에 대해서도 정부가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민병욱 연세대학교 교수는 "칩을 한 번 만드는 데 최소 1년이 걸리고, 테스트하려면 적어도 두세번은 만들어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만한 제품들이 나오기 때문에 반도체는 다른 산업 보다 리스크가 크다"며 "기술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의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만 TSMC가 본보기...기업·대학 연구 협력 강화 필요
파운드리와 팹리스의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대학과 기업간의 연구 연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만의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TSMC와 정부가 대학에 적극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최재혁 교수는 "대만은 대학과 팹리스, TSMC(파운드리)가 유기적으로 잘 연결돼 있어서 대학이 TSMC의 첨단 공정을 사용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학교 때부터 첨단 공정을 쓰던 사람들이 졸업해서 잘하고 있고, 새로운 팹리스 기업을 만들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지선 부산대학교 교수는 "대기업과 학교의 연계 연구들이 좀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라며 "현역(삼성전자)에 있다가 학계에 와서 보니, 대학이 기업과 협력하는 기회가 적은 것 같아서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를 들어 대학원에서 반도체를 연구한 후에 파운드리를 사용할 때, TSMC는 하나의 랩까지도 세심하게 케어하고 공정을 제공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런 케어까지 하지 않는 것 같다"며 "좋은 퀄리티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속해서 매니징하는 방식에서 격차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민규 KAIST 교수는 "TSMC와 미디어텍은 현재 대기업이지만 오래된 기업이 아니다. 이들은 초창기때부터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학교와 협력을 활발히 해왔고, 그러다 보니 설계 능력이 뛰어난 중소기업들 스타트업들이 많이 나타나고 성공한 것"이라며 "국내에서도 기업과 대학의 협력이 지금까지 있었지만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메모리 강점 살려야..."차별화된 AI 반도체 만들자"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메모리 강점을 살려서 차별화된 AI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김동균 SK하이닉스 펠로우는 "독과점 회사들을 상대로 한국 회사가 이기기는 쉽지는 않다"라며 "한국이 비메모리 분야에 진출하려면 학교 교육에서부터 산업계까지 중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펠로우는 "현재 비메모리 시장에서 한국의 강점은 NPU 시장"이라며 "메모리와 프로세스 융합의 지점인 NPU 분야가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NPU 분야를 더 활성화하고 나머지 베이직한 분야를 지속적으로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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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정 사피온 대표는 "한국은 반도체를 팔 수 있는 시장이 미국, 중국과 비교해 굉장히 작다"라며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회사 입장에서 큰 시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잘하고 있는 메모리와 AI 반도체를 융합시키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CIM(컴퓨팅인메모리) 기술이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국내에는 NPU(신경망처리장치) AI 반도체 기업 뿐 아니라 최근 DPU(자료처리장치) 등의 업체들이 생기고 있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서 이들 기업이 곧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다 보면 학교에서도 관련 분야의 교수들을 많이 채용해서 선순환 구조로 이익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