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도 그들은 동굴에 산다

[2022 팔레스타인 보건인권 리포트] ➅마사퍼 야타 거주민 "집 철거만 5번, 이스라엘 파괴 피하려 6번째 동굴집 만들어"

헬스케어입력 :2022/11/02 18:19    수정: 2022/11/03 10:47

[마사퍼 야타(팔레스타인 서안지구)=김양균 기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West Bank) 헤브론(Hebron) 남부의 소규모 마을로 구성된 마사퍼 야타(Masafer Yatta) 거주민들은 이스라엘군의 사격지역 지정으로 주거지에서 강제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주거 복지의 침해 뿐만 아니라 목축으로 생계를 잇는 현지 팔레스타인인은 이동의 제한으로 생존에도 위협을 받고 있었다.

국제사회는 마사퍼 야타 내 인도주의 위기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농사와 목축업 등으로 살아가는 현지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군의 사격구역 918(Firing Zone 918) 공포 이후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기자는 지난 7일(현지시각)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현지를 방문해 실상을 취재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마사퍼 야타의 비극은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1월 이스라엘군은 마스퍼 야타 지역 절반 가량을 사격구역을 지정하고, 그곳에 살던 팔레스타인인 약 700명을 불법 거주자로 규정, 퇴거 명령을 내렸다. 파이어링존에 속하지 않은 마을을 포함하면 마스퍼 야타 내 15개 마을 1500명의 절반 가량이 불법 거주자 신세가 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은 “이스라엘 당국의 퇴거 명령은 사격 구역에 대한 제한이 해당 지역의 기존 거주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한 기존 이스라엘 군사 명령과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사격구역 인근의 소규모 마을 앳투와니(At Tuwani)의 지역 활동가인 하페즈 후레이니(52)는 최초 파이어링존 지정 이후 거주민들이 처했던 상황을 증언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사격구역 내 이스라엘 군인들과 군장비, 트럭, 불도저 등이 들이닥쳤다. 군인들은 거주민을 집밖으로 끌어낸 뒤 군용차량에 실어 도로 밖으로 데려갔다.

사진=김양균 기자

여러 마을에 있던 천막(거주 공간 및 창고, 휴게 시설 등으로 사용됨), 집, 동굴, 우물은 파괴됐다. 마사퍼 야타 내 소규모 마을들은 물과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오지다. 때문에 주민들은 식수와 생활용수는 우물에서, 전기는 집집마다 소규모 태양광 패널로 얻고 있었다. 파괴된 시설들은 모두 거주민들이 자력으로 가꾼 것들이었다.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언론에 호소하는 등 저항을 시작하자 이스라엘 현지 여론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도 이들의 사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당국의 입장도 바뀌기 시작했다. 하페즈는 “몇 달 후 압력을 받은 이스라엘 고등법원(HCJ)은 사람들이 다시 터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임시조치를 내렸지만, 올해 5월 4일 법원은 임시 조치가 끝나서 퇴거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OCHA에 따르면, 이스라엘 고등법원(HCJ)은 퇴거 명령이 부당하다며 터전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청원(일종의 퇴거 명령 가처분 성격)에 대해 최정 결정이 나올 때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퇴거 명령은 임시 중단된 상태로, 최종 법원 판결이 팔레스타인 거주민에게 불리하게 나올 경우, 재산 파괴의 위협과 퇴거명령이 언제라도 떨어질 수 있는 불안한 상황이 장기간 유지된 것뿐이었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 자벨의 6번째 동굴집

사방에 돌로 된 언덕이 있었다. 소규모 마을들은 언덕마다 모여 있었다. 사격구역 918(Firing Zone 918)이 지정된 마사퍼 야타 내 소규모 마을들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집 앞에 널어놓은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다. 포장이 되지 않은 길은 모래와 깨진 돌무더기를 달리다보니 늙은 말을 탄 소년 둘이 산길을 걷고 있고, 개 한 마리가 이들을 뒤따랐다.

도로 옆에는 사격구역의 지정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당초 푸른 색 페인트로 군사 구역임을 고지한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이를 주민들이 검정 페인트로 지워버리자 이스라엘군은 다시 붉은 페인트로 군사 구역임을 명시해 뒀다.

이곳에 있는 칼리에트 아싸바(khallet Athaba') 마을에는 총 104명이 살고 있었다. 41개의 집과 시설이 있고 우물이 14개가 있었다. 학교도 한 곳 있었지만 보건소는 없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 6월 16일 마을의 20개 시설에 대한 철거 명령을 내렸다.

사진=김양균 기자

주민들은 기둥을 박고 철조망을 둘러 이스라엘의 철거 명령에 반대했다. 철조망은 비탈길에 30여 미터만 세워져 있었는데 ‘마스퍼 야타를 구해주세요(#Save Masfer Yatta)’라고 쓰인 종이가 철조망마다 걸려 있었다. 장대로 박아둔 팔레스타인 국기도 여러 개 세워져 있었다. 천막도 한 개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이불과 커피, 의자 등이 있었다. 천막에는 아랍식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원래의 무늬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색이 바래있었다. 자벨 답하시(34)는 아들과 함께 기자 일행을 맞았다.

자벨은 일곱 식구의 가장이었는데, 최근 집이 파괴돼 텐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를 따라 천막에 들어가 보니 이불과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다. 자벨의 집은 지난 2018년부터 총 5번 철거됐다. 이전의 집터는 돌무더기만 남아있었다. 그는 우물을 열더니 그 안을 보여주었다. 성인 머리보다 조금 큰 우물 입구는 평소 철로 만든 뚜껑에 덮여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우물과 호스를 이어 생활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자벨의 6번째 집은 바위를 파 만든 하얀색 동굴이었다. 흰 철제 문 아래 계단을 걸어내려 가니 빛이 들어오지 않은 서너 평 가량의 동굴이 나왔다. 방은 하나였는데 성인 남성이 허리를 필 수 없는 정도였고, 벽과 천장은 울퉁불퉁했다. 의자로 사용하는 난간은 아직 마감이 끝나지 않아 앉아 있기 어려운 상태였다.

자벨은 “땅 위에 집을 지으면 자꾸 철거가 돼 부술 수 없도록 동굴을 팠다”고 했다. 6번째 집 마저 철거될 수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벨은 “이것은 내 집”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벨이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옆의 동굴에 있었다. 동굴 앞에는 세탁기와 건조대가 있었고, 나무도 몇 그루 세워져 있었다. 아직 집을 다 만든 것이 아니라 시멘트 포대와 모래가 바닥에 있었고, 옆에는 세탁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하얀색 운동화는 건조대 위에 놓여 있었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에 따르면, 5월 11일과 6월 1일 키르벳 알 파키에트(Khirbet Al Fakhiet, 12가구 거주)와 미르케즈(Mirkez, 12가구 거주) 마을의 집들이 철거됐다. 일부 거주민은 앞서 1년이 안 되는 동안 자신들의 세 번째 집이 파괴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스라엘 당국은 6월 7일에도 키르벳 앳 타반(Khirbet at Tabban, 7가구 거주)의 모든 주택과 생계 시설에 대한 철거 명령을 내렸다. 하페즈 후레이니는 “사격구역 내 거주민의 집에 대해 매주 2회~3회 가량의 철거가 진행 중”이라며 “철거 이후 이스라엘 당국은 추가 증축 및 보수 허가를 불허했다”고 말했다.

하페즈는 이스라엘의 사격구역 공포와 이에 따른 거주민 퇴거 명령을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로 여기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이스라엘 당국은 그린 라인(Green Line) 구역의 구획을 나누고 각 마을에 대해 구역을 지정, 공간을 나눠 2차선 순찰도로인 317번 도로를 깔아 지역을 찢어 놨다. 하페즈는 “도로는 분리장벽처럼 마을을 분리했다”고 했다.

그린 라인(Green Line)은 이스라엘의 1967년 이전 국경으로 주변국과의 군사분계선이다.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까지 이스라엘의 비공식적 국경이었지만, 1967년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모두 점령한 이후 그린라인 바깥 영토를 점령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게 나눠져 분리된 곳에는 유대정착촌(Israeli settlement)이 건설돼 확장되고 있다. 또 아웃포스트(Outpost, 전초기지)도 들어서고 있었다. 정착촌이 건설되지 않은 지역의 경우, 군사지역으로 지정해 팔레스타인 사람의 땅을 ‘땅따먹기’한다는 게 하페즈의 주장이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내기 위한 정책”이라고 답답해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서안지구 전역에 250개의 유대정착촌이 있으며 63만3천600명의 정착민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서안지구 곳곳에 위치한 아웃포스트는 이스라엘의 승인 없이 건설 된 불법 유대 정착지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웃포스트를 폐쇄하겠다고 여러 번 밝혔지만, 실제 폐쇄된 곳은 거의 없다. 현재 서안지구 전역에는 수백 개의 아웃포스트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대정착촌과 아웃포스트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방화나 경작지인 올리브 나무 훼손 등 물리적, 금전적, 정신적 폭력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해 나블루스 인근 부린마을(Burin village)에는 인근에 2곳의 정착촌과 1곳의 아웃포스트로 둘러싸여 있었고, 정착민의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현지 활동가는 올해 1천500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정착민들의 공격으로 유실됐다고 밝혔다.

하페즈도 인근의 마온(Maon) 정착촌 정착민들로부터 폭행을 당해 두 팔이 부러졌지만,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구속과 재판을 받았고, 보석금을 내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들은 얼굴을 가려서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하고, 온갖 폭력을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 받지 않는다”고 했다.

마사퍼 야파 내 사격구역으로 지정된 마을에 대한 이동 제한도 이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거주민 대부분은 양과 염소를 키우거나 농작물을 가꿔 생계를 잇는다. 물을 얻거나 가축을 키우려면 계속 이동을 해야 한다. 이스라엘군은 검문소(Checkpoint)를 통해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는 게 하페즈의 주장이었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은 지난 6월 21일 이스라엘군은 파이어링존에서의 군사훈련을 시작했고, 이후 훈련을 하지 않는 날에도 원거주민에 대한 이동 제한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페즈는 “사격구역 안에 사는 주민들은 일부 지역에 갔다가 불법 침입 명목으로 체포되는 일이 있다”며 “이는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의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어 자발적으로 떠나게 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 앳투와니의 수난이대

기자에게 마사퍼 야타(Masafer Yatta)의 사정을 증언한 하페즈 후레이니(52)는 올리브와 포도 등을 재배하는 농부이자 현지에서 매우 알려진 인권활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남부 헤브론의 대중저항조직(South Hebron Popular Resistance) 창립자로, 지난 2000년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 운동을 해왔다. 아들 사미 후레이니도 활동에 동참하면서 부자는 이스라엘 정부와 인근 유대 정착촌 마온(Maon) 정착민에게 눈엣가시가 됐다.

현재 키르베트 사루라(Khirbet Sarura)와 카루베(Kharoubeh) 마을은 거주지 및 시설이 파괴된 이후 거주민들이 모두 떠난 상태다. 때문에 현지 청년들은 떠난 이들의 복귀를 돕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유스 오브 써무드(Youth of Sumud)는 집터를 지키고 떠난 사람들의 복귀를 돕는다는 취지로 2017년 결성됐다. 동굴집을 수리하며 열성적인 활동을 하던 하페즈의 큰 아들은 2018년 인근 마을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사륜구동 오토바이가 다리를 뭉개고 지나가 허벅지 뼈가 완전히 부서졌던 것이다. 아들은 한 달가량 입원해 인공뼈를 이식받았다.

마사퍼 야타의 비극은 아들의 발과 아버지의 팔에 부상을 남겼다. 수난이대(受難二代)의 비극에도 성과는 있었다. 떠났던 한 가구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기자는 하페즈에게서 현지의 보건의료 실정도 일부 들을 수 있었다.

사진=김양균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앳투와니의 상황은 어땠나.

“코로나19 발생 전에는 국제 활동가들이 이곳에 와서 함께 연대를 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부 떠났다. 인근 정착촌의 정착민들은 더 많은 횡포를 부렸다. 이곳은 낙후된 지역이라 아무도(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여기 있는 사람들의 보건의료에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 마을인 앳투와니(At Tuwani)에서는 소수만 코로나19에 확산됐다. 코로나19 유행이 잠잠해지면서 전 세계에서 인권 활동가들도 돌아오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활동가들은 2004년부터 이 마을에 대한 연대활동을 해오고 있다.”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사람들의 치료는 어떻게 했나요,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마스크는 제때 구할 수 있었나.

“우리 마을에서 10명가량이 감염됐지만 알아서 회복했다. 자체적으로 코로나19 전파 차단 교육을 했고, 우리 스스로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구해와 나눴다.”

-앳투와니에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 있나.

“여기에는 작은 클리닉(보건소 수준)이 있는데, 일주일에 1일~2일 문을 연다. 큰 병에 걸리면 야타(Yatta)의 큰 병원으로 간다. 여기에서 (남동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앳투와니에는 320여명이 산다. 야타(Yattah)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헤브론에서 남서쪽으로 약 14킬로미터 떨어진 해발 820미터의 구릉지대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6만5천 명가량이다. 예루살렘응용연구소(ARIJ)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서는 국립 아부 핫산 알 카삼 병원(Abu Hasan Al Qasam governmental Hospital)과 민간 병원 3개소 등 총 4개의 의료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밖에도 진료과별 클리닉이 13개소, 약국이 21개소 가량 운영 되고 있다. 야타 지역을 포함해 인접한 지역의 환자들을 고려하면 의료기관의 수는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앳투와니에 있는 클리닉에서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의사인가, 간호사인가.

“클리닉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운영하는데, 두 명의 의사가 순환제로 근무한다. 간호사도 한 명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마스퍼 야타 지역 내 마을마다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나.

“앳투와니는 오랜 시간 이스라엘과 싸움을 한 마을인데다 규모가 있고 하니 클리닉이 있는 것이다. 클리닉이 운영되는 마을은 많지 않다.”

-지난 5월 4일 이스라엘 고등법원(HCJ)이 마스퍼 야타 내 팔레스타인 거주자 추방에 있어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판결한 이후 병원 방문은 이전보다 어려워졌나.

“판결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파이어링존에 속하는 마을들에 대해 이동제한 조치를 내리고, 거주민의 차량을 압류했다. 그래서 파이어링존에 속하는 마을의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은 차 대신 트랙터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은 트랙터도 타깃이 되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은 전반적으로 더 어렵고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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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투와니는 파이어링존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경계에 위치해 있다. 기자는 앳투와니 주민의 한 달 평균 수입이 어느 수준인지 하페즈에게 물어보았다.

“많으면 300달러(약 43만원)이다. 정착민의 공격으로 경제 사정이 나빠졌다. 과거에 양이나 염소를 300마리 가진 사람이 이젠 30마리~40마리밖에 못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