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바라는 키워드 셋

[이균성의 溫技] 책임 투자 준법

데스크 칼럼입력 :2022/10/28 09:32    수정: 2022/10/28 14:2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7일 회장으로 취임했다. 2020년 10월 25일 고(故)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뒤 2년째 비워뒀던 자리다. 부회장이 된 게 2012년 12월이니 본인으로서는 10년만의 승진이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해가 1991년(공채 32기)이므로 회사 생활 31년만이다. 한 세대( 世代)를 보통 30년으로 치니, 입사 이후 한 세대가 흘러갔다. 회장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긴 세월 우여곡절도 많았다.

곡절 많은 과거는 일단 과거로 두자. 지금은 앞일만 생각하기에도 벅찬 시기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초대형 경기침체가 세계 경제를 억누르고 있다. 고환율 고금리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극에 달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며,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20~30년 지속된 세계화가 느슨해지고 신(新)냉전과 보호무역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 회장이 넘어가야 할 파고는 의외로 크고 거칠 수 있다. 경쟁기업만 상대하면 되는 상황이 아니다. 새로운 국제질서와 그에 따른 경제 환경에 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다행히 지금까지 큰 과오를 범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미래 성장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것 같지도 않다. 아직은 기로에 있다. 이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이 회장한테 책임, 투자, 준법 등 세 가지를 바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회장은 사실 이 세 가지를 잘 알고 있다. 그는 27일 취임사를 겸해 삼성 사내게시판에 올린 ‘소회와 각오’를 통해 첫 번째로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는 이 글에서 “(故 이건희) 회장님의 치열했던 삶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선대의 업적과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게 제 소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책임감은 단지 선대의 업적과 유산에 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삼성은 사회와 함께 해야 한다”며 “고객과 주주, 협력회사,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고 더불어 성장해야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나아가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디 그러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소비자인 국민이 기업에 바라는 게 그거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책임은 다른 게 아니다. 나타나야 할 때 숨지 않고 나타나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자세만 있으면 된다.

투자는 사실 이 회장의 최대 숙제다. 삼성의 미래는 결국 투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지난 몇 년 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며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할 때”라고 봤다. 무엇보다 인재와 기술에 대한 투자가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토를 달 필요도 없는 정확한 진단이고 훌륭한 대책이다. 그는 특히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며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고, 최고의 기술은 훌륭한 인재들이 만들어낸다”고 덧붙였다.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오고, 양성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인재와 기술은 사실 창업 이래 3대에 걸쳐 이어져오고 있는 삼성 경영철학의 2대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 회장도 잘 알겠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됐을 때 그의 석방과 사면 복권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한 마디로 투자였다. 삼성의 투자는 삼성은 물론이고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이 회장이 속히 경영에 복귀해야만 투자에 있어 실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한 주장과 논리가 빈 말이 아니었음을 이제 이 회장이 몸소 보여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 회장의 ‘소회와 각오’의 글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준법경영’이란 키워드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기업가치가 실적에 비해 글로벌 경쟁기업보다 디스카운트되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미국이 아닌 한국 시장에 상장됐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경영 승계, 환경, 노조 등의 문제와 연관된 사법리스크 탓이다.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키워드가 곧 ‘준법경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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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삼성은 사회와 함께 해야 한다”며 이를 에둘러 표현하긴 했다. 삼성전자가 준법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이 회장 승진 결정에 굳이 이사회 의결을 거친 것도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사회도 이 회장 승진 의결 이유 가운데 하나로 ‘책임 경영 강화’를 꼽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준법경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이 회장이 누구보다 잘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회장은 ‘소회와 각오’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비전을 이야기했다.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업,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기업, 세상에 없는 기술로 인류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기업. 이 회장은 그러면서 “제가 그 앞에 서겠습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승진이 삼성의 이 같은 미래 비전에 빛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 책임, 투자, 준법이 이 회장의 3대 키워드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