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신임 회장에 얽어메인 끝 모를 사법 굴레

[정진호의 饗宴] 회장 취임 날 법정행..."삼상 앞에 놓인 현실 절박하다"

데스크 칼럼입력 :2022/10/27 16:47    수정: 2022/10/27 21:04

1987년 12월 1일 선대 이병철 회장에 이어 삼성 2대 회장으로 취임한 故 이건희 회장의 목표는 확고했다. 새로운 변화와 도전으로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사회는 민주화를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었고 부가가치가 낮은 노동집약에 치우친 산업화 역시 첨단산업 구조로 가기에는 미완의 단계였다. 회장 취임 이후 그는 해외로 향했다. 세계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지, 경쟁력이 어디쯤에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만드는 제품이 현지 소비자와 상점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일일히 점검했고 먼지가 쌓인채 창고에 가득한 삼성 제품을 본 그가 내린 결론은 '이러다 삼성전자가 망하겠구나'였다.

고(故)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신임 회장

이건희 회장은 결국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하게 된다. 수 십년 묵은 낡은 습성과 타성을 버리고 양보다 질 경영에 집중해야만 세계 일류 기업으로 성장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그렇지 못하면 망한다는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2020년 10월 타계하기 전까지 재임 33년 동안 반도체, 스마트폰, TV 사업을 세계 일등에 올려 놨다. 삼성전자는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고 지금 우리 국민과 수출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늘(27일) 이사회 의결을 통해 회장으로 승진했다. 과거 '앞으로 삼성그룹에는 회장이라는 타이틀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회장 직함을 받았다. 이사회는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이같이 의결했다"고 했다. 대내외적인 위기 속에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신임 회장이 승진 이후 첫번째로 향한 곳은 취임식도 해외 공장도 아니었다. 이 회장은 이날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모습을 드러냈다. 매주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회장 승진 날에도 법원으로 향한 것이다.

이 신임 회장은 지난 2021년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지 5년만인 지난 8월 8.15 특별 사면으로 복권됐다. 하지만 사법적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법원 주변에서는 부당합병 및 분식회계 재판은 이제 1심이 진행 중이고 검찰과 이 회장 측의 증인 채택부터 남아 있는 증인 심문까지 고려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재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심문을 기다리는 증인만 100여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전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진실이 무엇인지 찾기 어려운 재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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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임 회장은 재판 출석을 위해 해외 출장이나 주요 비즈니스 미팅 때마다 법원 휴정 기간에 일정을 맞추거나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기업 총수의 행보가 대외적으로 다 알려지는 셈이다.

이 회장은 이날 취임사를 갈음한 부친의 2주기 추도사에서 "(이건희)회장님의 치열했던 삶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며 "안타깝게도 지난 몇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글로벌 사업장을 두루 살펴 본 그는 삼상 앞에 놓인 현실에 대해 "절박하다"고 했다. 35년 전 선대 이건희 회장의 심정이 아닐 수 없다. '승어부(勝於父: 아버지를 뛰어넘는다는 뜻) 리더십'이 절실하다.